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하이브리드카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더 많은 반도체가 들어간다. <사진 : 블룸버그>

넓은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차를 찾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자동차 열쇠의 버튼을 누르면 차에서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LED(발광다이오드)등이 반짝인다. 차 근처에 다가가면 운전석 앞문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지 않아도 문이 열린다. 시동도 열쇠 대신 버튼을 누르면 걸린다. 긴 막대 형태의 사이드 브레이크 대신 버튼을 누르면 출발할 수 있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으면 경고음이 울린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입력된 주소로 집까지 가는 길을 안내한다. 조명과 차량 내 온도는 자동으로 제어된다. 주행 중 신호에 걸려 잠깐 정차했을 땐 엔진이 꺼져 휘발유를 아낄 수 있다. 도로 공사로 노면이 울퉁불퉁한 곳을 지나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승차감이 좋다. 집에 도착해 주차할 땐 내비게이션 화면이 꺼지고 후방 카메라가 작동해, 핸들 방향에 따라 후진 상황을 알 수 있다. 차가 벽 쪽으로 다가가면 경고음이 나오고 주차가 마무리된다.

이 모든 상황에 필수적인 자동차 전장 부품이 ‘반도체’다. 전장 기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차에 반도체는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첨단 전자 시스템으로 통제되는 현재의 자동차는 수많은 반도체에 의해 작동된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2012년 자동차 한 대당 평균 350달러(약 40만원)의 반도체가 사용됐다. 고급 차는 한 대당 1000달러(약 113만원)의 반도체가 쓰였다.


개발 오래 걸리지만 성공하면 안정적 수요 확보

자동차용 반도체는 차량 내·외부 온도·압력·속도 등 각종 정보를 측정하는 센서와 엔진, 변속기, 전자 장치 등을 조정하는 ECU(전자제어장치) 그리고 각종 장치를 움직이는 모터의 구동장치에 사용된다. 자동차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러(MCU), 센서 등 200여개의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다. 내연 엔진과 전기모터를 동시에 장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엔진과 모터를 주행 상황에 따라 작동시켜야 하므로 일반 차량에 비해 10배 많은 반도체 관련 부품이 필요하다.

자동차 반도체는 영하 40℃에서 영상 155℃의 온도 조건, 15년 이상의 수명, 0%에 가까운 불량률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IT 제품은 상온에서 신뢰성 테스트를 거치지만, 자동차용 반도체는 극한의 상황에서 약 42일 동안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인증을 받는다. 또 7~8년간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는 내구성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차량용 반도체는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해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품질을 인정받으면 오랫동안 제품에 적용될 수 있어, 안정적으로 수요를 확보해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완성차 업체마다 요구 사양이 달라 하나의 반도체를 여러 업체에 판매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고부가가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320억달러(약 36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2018년엔 366억달러(약 41조원), 2020년엔 433억달러(약 49조원)로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IHS는 차량용 반도체 중 ADAS(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 분야가 가장 성장률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까지 연평균 18.6%씩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ADAS는 전방추돌경보, 차선이탈경보, 차선유지, 자동긴급제동, 주차보조시스템 등으로 이뤄진 장치다.


퀄컴은 세계 1위 NXP 인수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체는 NXP(14.2%)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업체인 NXP는 2006년 필립스에서 분리됐다. 2위는 1999년 독일 지멘스에서 갈라져 나온 인피니온(10.4%)이고, 3위는 일본 정부와 NEC·히타치 등 기업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제조사 르네사스(10.3%)다. 이어 4위는 스위스의 ST마이크로(7.7%), 5위는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7.0%), 6위는 자동차 부품 업체 독일 보쉬(5.4%)다. 이 6개 기업이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지만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하지만 최근 성장 속도가 빠른 차량용 반도체에서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독일 아우디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모바일 반도체 ‘엑시노스’ 프로세서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엑시노스 프로세서는 2019년 아우디 신차에 탑재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차량용으로 비메모리 반도체를 독자 개발해 공급한 첫 번째 사례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인수전도 치열하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이스라엘의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에 인수했다. 모빌아이는 머신러닝에 기반한 차량용 카메라와 센서 등을 생산한다. ADAS의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한다. 퀄컴은 작년 10월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NXP를 390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회사는 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을 컨트롤하는 칩셋을 개발했다.

현대·기아차는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현대모비스, 현대케피코와 함께 2012년 ‘현대오트론’을 설립했다. 현대오트론은 전자제어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차량용 반도체 설계를 핵심 사업 영역으로 삼고 독자 개발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 직원이 반도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SK하이닉스>

plus point

SK하이닉스, 오토모티브팀 신설 자율차용 반도체 사업 확대

SK하이닉스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을 위해 고용량, 저전력 메모리 및 극한 환경에 특화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오토모티브팀을 신설했다.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와 자율주행을 지원하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확대하고, 급성장하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오토모티브팀은 차량용 반도체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업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의 차량용 반도체 관련 제품은 DDR3, DDR2, LPDDR4와 임베디드멀티미디어카드(eMMC)가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그래픽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와 협력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또 이탈리아의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인 마그네티 마렐리와 ADAS용 eMMC 공급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SK하이닉스의 전체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 물량 중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용으로 공급한 물량은 10%를 넘어섰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SK하이닉스에 2017년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입 원년이 될 것”이라며“앞으로 SK하이닉스가 생산한 차량용 반도체의 제품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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