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트남에서 단일 품목으로 가장 많이 수출되는 아이템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다. 2009년 베트남에서 휴대전화 생산을 시작한 삼성전자는 전 세계 생산량의 40% 정도를 베트남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최근엔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까지 동반 진출하면서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이뤘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에서 TV·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이기도 하다.

#2. 2015년 11월 태국의 수도 방콕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시암스퀘어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 건물에 들어선 한국 디저트 업체 설빙의 ‘태국 1호점’에 들어가기 위해 손님들이 수백미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 같은 인기 속에 설빙은 올 3월까지 태국 내 매장을 14개로 늘렸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격화되면서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필리핀·캄보디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제조기지·소비시장으로서 중국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중국 진출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글로벌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업체인 시게이트테크놀로지는 지난 1월 중국 쑤저우 공장을 폐쇄한 반면 태국에는 4억7000만달러(약 5358억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13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소비시장으로서의 매력도 줄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약진으로 외국 업체들은 고전하고 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만 바라보다간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이 기회에 우리 산업 경쟁력을 키우면서 중국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구 증가, 도시화로 동남아 인프라 수요 급증

중국 리스크를 보완할 수 있는 동남아 시장의 강점은 급성장하고 있는 소비시장, 저렴한 인건비, 풍부한 천연자원 등이다. 세계 경제의 오랜 불황에도 동남아시아 신흥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동남아 주요 10개국을 포함한 아세안(ASEAN)은 2006년 6%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2009년 각각 4.7%, 2.7%로 하락하기도 했지만 2010년 7.9%로 급반등했다. 2013~2015년에는 각각 5%, 4.5%, 4.6%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세계 경제성장률이 평균 3%였음을 감안하면 동남아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오윤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대양주 팀장은 “동남아 시장은 저렴한 노동력과 동북아에 인접한 입지로 우리나라의 제조 및 소비재 관련 기업에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 등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분야는 동남아 인프라스트럭처 시장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4~5% 이상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온 동남아는 인구 증가, 도시화, 산업화로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30년까지 동남아 인프라 투자 규모는 3조1000억달러(약 3543조원)에 달한다. 매년 2100억달러(약 239조원)가 투자되는 셈이다.

동남아 각국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 건설뿐만 아니라 각국 내 인프라 구축 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각국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고속철 사업이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330㎞ 길이의 고속철 사업비는 120억달러(약 13조7000억원)에 달한다.

동남아 각국의 전력·교통 인프라 구축 사업도 활발하다. 자국의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낙후된 인프라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2020년까지 인프라 구축, 교육 및 보건의료·행정 분야에 728억달러(약 83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 중 절반이 스마트시티 건설 등에 쓰인다.


베트남 하노이의 쇼핑몰 모습 <사진 : 블룸버그>

인도네시아의 중장기 발전 계획의 핵심 역시 인프라다. 그중에서도 해양 분야 인프라 건설이 최우선 과제다. 인도네시아는 해양 인프라 분야에 2016년부터 5년 동안 574억달러(약 65조4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아세안 생산·물류 허브를 꿈꾸는 태국도 교통·통신·전력 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고 있다. 2020년까지 철도 복선화 사업, 방콕 메트로 프로젝트, 수완나폼 공항 2단계 공사에 750억달러(약 85조5000억원)를 투자한다. 베트남의 경우, 화력발전 중심의 발전 설비 용량 확대와 고압선 위주의 송전 인프라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캄보디아도 건설 부문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인프라 분야에 대한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와 기업이 같이 나선다면 동남아에서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 생산기지로서도 여전히 매력적인 동남아는 새로운 소비시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6억명이 넘는 인구 덕택에 내수시장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의 60%가 35세 이하인 젊은 시장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또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소비층도 등장하고 있다. 소비의 중심인 중산층 인구는 지난 10년간 2배 이상 늘었다. 동남아는 16억명에 달하는 이슬람 시장을 향한 관문이기도 하다. 오윤아 팀장은 “현재 한국의 동남아 수출과 투자는 현지 생산을 위한 중간재 수출과 제조업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소득 증가에 따른 중산층 성장과 도시화로 이에 대응하는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 소비재 기업의 동남아 중산층 시장 진출을 위한 테스트베드(시험대)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해외 고급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레이시아 산업 정책의 핵심인 이슬람 산업 육성도 눈여겨봐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젊은 이슬람 세대’의 등장이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 점이다.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20~65세이며, 인구의 27%는 15세 미만이다. 인도네시아의 젊은 세대는 인터넷에 강하고, 패션에 감각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전자상거래와 스타트업 붐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남아의 한류 이미지를 활용한 화장품·식품 등의 소비재와 유통시장 규모는 800억달러(약 91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동남아 한류의 핵심 거점이 바로 태국이다. 또 태국은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소비 구매력이 높아 한국 소비재 산업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3~5배 투자

동남아에 주목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전략적으로 진출해 기반을 다졌다. 한국의 아세안 투자 규모(41억7000만달러·약 4조7500억원)는 중국의 3분의 1, 일본의 5분의 1 수준으로 아직 미미한 편이다.

2015년 한 해 동안 일본이 아세안에 투자한 금액은 202억4400만달러(약 23조원)에 달한다. 일본은 현재 제조업을 필두로 금융업, 서비스업, 유통업 등 산업 전 분야가 동남아 시장에 진출해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앞세운 중국은 2015년 아세안에 146억달러(약 16조6000억원)를 투자했다.

2015년 말 아세안경제공동체(AEC)가 출범하면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이 시장을 주목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김수욱 교수는 “우리나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동남아 주요국에 생산기지를 세우고, 소비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중국·일본 등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 정부의 기민한 경제외교가 뒷받침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남아 시장의 시장 상황과 문화, 종교, 통상 여건은 각국별로 다르다. 소비시장과 소비 패턴도 제각각이다. 베트남은 남부와 북부의 소비 트렌드가 확연히 다르다.

일부 산업의 경우 일본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점과 인터넷 인프라 등이 여전히 부족한 점도 난제로 꼽힌다.

특히 국가별 특징을 파악해 산업별로 차별화된 진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글로벌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고, 토착기업도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하다. 박준홍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동남아 국가들은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수입 개방에 나서면서도 외국 기업의 생산 기지화도 적극 장려하므로 이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남아 시장만의 리스크에도 대비해야 한다. 최경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박사는 “동남아 각국 정부 관료의 부패와 만연해 있는 비효율성도 해외 기업의 직접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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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967년 8월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5개국이 결성한 지역협력기구. 이후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가 가입해 모두 10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태국 방콕의 아모레퍼시픽 매장에서 현지인들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 : 아모레퍼시픽>

plus point

동남아 진출 본격화하는 한국 기업
유통·식품·화장품·프랜차이즈 등 시장 개척 본격화

장시형 부장대우

한국 유통 기업들은 이미 시장 잠재력이 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시장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베트남에 1990년대부터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현재 백화점·대형마트·호텔·시네마 등 10여 개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의 랜드마크 롯데센터 하노이에는 롯데마트·백화점이 성업 중이다. CJ그룹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에 진출한 CJ오쇼핑, CJ CGV, CJ푸드빌은 현지 업계 1위 사업자로 부상할 정도다.

SK플래닛은 최근 국내 전자상거래 업계 최초로 태국 시장에 오픈마켓 ‘일레븐스트리트(11street)’를 열었다. SK플래닛은 2014년 인도네시아, 2015년 말레이시아에 각각 진출했다. 2013년 진출한 터키를 포함해 3개국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72.5% 성장했다.

이 밖에 GS홈쇼핑이 말레이시아에 진출하는 등 유통 업체들이 동남아 시장을 개척해 좋은 성과를 내며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식품 기업도 동남아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아워홈은 지난 5일 베트남의 3대 도시인 하이퐁에 위탁급식 사업을 위한 첫 현지 법인을 세웠다. 쌀이 주식인 식문화에다 중국보다 낮은 인건비,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해외 기업 유치 정책 등이 작용했다. 아워홈은 2020년까지 해외 사업 매출 15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CJ제일제당은 600억원을 투자해 베트남에 동남아 통합 전진 기지를 만들고 있다. 식품 가공 복합단지 등을 설립해 내년 상반기부터 현지 식문화를 반영한 동남아 만두를 생산할 계획이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권에 탄탄한 내수시장을 갖추고 있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화장품 업계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에 발을 디디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3년 베트남에 첫 매장을 낸 후 인도네시아·태국·싱가포르로 영역을 확대했다. 2012년 아세안 국가 290개 매장에서 16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지난해에는 360개 매장에서 1500억원을 벌었다.

국내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동남아를 해외 진출의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다. 2015년 태국에 진출한 빙수 전문 프랜차이즈인 설빙은 현재 총 14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햄버거 브랜드 맘스터치는 지난해 9월 베트남 호찌민에 1호점을 오픈했으며, 하노이 등 대도시에도 곧 문을 열 예정이다. 미스터피자로 유명한 MPK그룹도 지난해 5월 필리핀에 진출한 데 이어 태국 방콕에도 매장을 오픈했다.

일찍부터 동남아 할랄 시장을 개척한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할랄 1세대 기업으로 꼽히는 대상은 1973년 인도네시아 현지에 공장을 세워 할랄 식품만 연간 300억원어치를 판매하고 있다. 2013년부터 할랄 식품 사업을 시작한 풀무원은 생라면 브랜드 ‘자연은 맛있다’를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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