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소비재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 태국 방콕항 사이로 높은 빌딩들이 보인다. <사진 : 블룸버그>

뉴질랜드 최대 과일 수출 업체 ‘터너스앤드그로어스(T&G)’는 2년 전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확대했다. 태국을 비롯해 베트남·라오스·미얀마 등 동남아는 열대 과일 생산량이 많은 곳이지만, 아삭아삭하고 신선한 맛의 사과와 키위·포도 등 프리미엄 과일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특히 태국에서 사업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키위와 포도는 물론 T&G의 고급 브랜드 사과 판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거대 시장 중국에 가려 후순위로 밀렸던 동남아 시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가운데 많은 글로벌 기업이 태국에 진출해 성공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적 상황이 안정됐고, 수도 방콕을 중심으로 경제적 인프라가 비교적 잘 구축돼 있어 태국에 주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태국 고소득 가계의 소비 여력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소비재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도 기업들의 태국 진출 계획을 독려하는 요인이다. 태국 정부가 최근 ‘국가발전계획 태국 4.0’ 로드맵을 발표하며 경제 활성화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점도 긍정적이다. 태국 정부는 기초 IT 인프라와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를 추진해 경제 구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계획이다.


경제 성장 의지 확고한 태국 정부

1996년 태국 방콕에 진출한 일본 플라스틱 제조 업체 ‘교라쿠’는 이전보다 더 제품 다양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태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트렌드가 빠르고 복잡하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교라쿠가 2003년 투자해 설립한 플라스틱 패키지 업체 ‘마젠드막스’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급 제품 생산에 나섰고, 최근엔 음식점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태국 경제 규모(2015년 국내총생산)는 3952억달러(약 450조원)로, 동남아 지역 내 인도네시아에 이어 2위다. 최근 10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대로 다른 신흥국에 비하면 높지 않지만, 6800만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700만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커지면서 소비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T&G가 고급 브랜드 과일을 판매하고, 마젠드막스가 고급 플라스틱 제품을 선보인 것도 모두 태국 고소득 가구와 중산층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소비재·프랜차이즈, 편의점·할인마트를 포함하는 유통업,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인터넷·모바일 쇼핑 산업 등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100억달러 규모 시장으로 성장한 태국 건설업과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는 관광업 역시 유망 산업으로 꼽힌다. 특히 태국 정부는 교통·물류·인프라 확장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발전계획 태국 4.0 로드맵’이 발표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태국 정부가 발주하는 교통·통신·전력 등 대규모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가 늘어나면서 건설 장비와 자재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관련 글로벌 기업에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발전계획 태국 4.0 로드맵에는 스타트업을 활성화해 경제를 역동적으로 진화시키려는 노력도 포함됐다. 이미 시작된 태국 내 스타트업 열풍이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에는 가격 비교 쇼핑앱 ‘프라이스자’와 호텔 예약앱 ‘호텔퀵클리’, 태국 내 부동산 자산을 검색하는 ‘힙플랫’ 등 다양한 스타트업이 등장해 활동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여성 소비 확대 주목

태국 소비자의 스마트폰 사용이 늘어나고 여성과 젊은 세대의 경제 활동 참여도가 높아진 트렌드도 주목해야 한다. 1964년 일찌감치 태국 오토바이 시장에 진출한 ‘혼다’는 젊은 소비자를 겨냥한 마케팅을 활용해 태국 시장을 사로잡았다.

혼다는 2010년 영국 유명 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과 함께 ‘혼다 빅 팬 빅 펀(big fan big fun)’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젊은 소비자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함으로써 혼다는 1위 업체로 성장했다.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 등 한류가 광범위한 인기를 누리는 것 역시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이 높아진 영향이다.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고 이들이 소비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화장품과 의류, 팬시용품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태국 경제성장률은 3%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많은 글로벌 기업은 소비 여력이 있는 태국 중산층과 젊은 세대,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마케팅을 펼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태국이 동남아 대륙부 중심에 있기 때문에 아세안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태국을 핵심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젠드막스의 타카하시 노부유키 운영책임자는 “태국은 정치·사회 환경이 안정적이고 기업 활동에 필요한 인프라가 잘 건설돼 있어 사업 운영이 매우 편리하다”며 “마젠드막스는 태국을 아시아의 전략적 허브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급격한 정치 변화 유의해야”

이요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박사

현재는 태국 정치가 안정된 상황이지만 정치적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는 유의해야 한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2013년 잉락 친나왓 전 총리 정부가 추진한 11조원 규모의 종합물관리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2014년 들어선 군사 정부가 이를 전면 백지화했다.

정권 교체로 대규모 국책 사업이 하루아침에 변경된 것이다. 태국에 진출하려면 선거에 따라 급변하는 태국의 정치적 상황과 군부와 기업 간 갈등 관계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태국 정치는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2012년 태국의 경제성장률은 6%를 넘었지만, 반정부 시위 이후 정정 불안이 이어지며 2013년 2%대로 하락했다. 쿠데타가 발생한 2014년에는 0.7%까지 하락했다.

총선에서 항상 우위에 있는 친(親)탁신계와 이를 물리력으로 억압하는 군주 세력이 갈등하는 태국 특유의 정치 구도는 언제든 정치적 불안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태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왕실-군부-사법부로 이어지는 군주제 네트워크와 친탁신 세력의 갈등 등 태국 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2016년 태국의 노인 인구는 약 750만명으로 전체 11%를 차지하고 있는데, 2040년에는 노인 인구가 1700만명으로 증가해 2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율이 낮아 2018년부터 노동 인구는 감소할 전망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탓에 태국의 잠재성장률은 3%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급격한 고령화는 가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인 만큼 유의해야 한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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