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동남아시아 시장’이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별 국가 시장만 있을 뿐입니다.”

린다 위엔칭 림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동남아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한국 기업이 주의해야 할 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인구 구조, 풍부한 천연자원, 친기업적인 정부 성향 등에서는 공통점이 많지만, 시장을 단 하나의 단일 권역으로 해석해서는 실패하고 만다는 지적도 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노골화하는 가운데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동남아는 전체 인구 6억명, 국내총생산(GDP) 2조5000억달러의 거대 시장으로 통한다. 동남아 지역의 다국적 기업 및 지역 비즈니스, 정치·경제를 주로 연구해 ‘동남아 비즈니스 전문가’로 통하는 림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림 교수는 동남아시아 각국 정부와 기업 관계, 각국의 노사관계와 관련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15년과 2016년 미시간대 주관으로 인도네시아, 미얀마와 관련한 국제 포럼을 개최했다. 주요 저서로는 ‘동남아시아의 중국 사업과 지역 경제 개발(2012)’ ‘노동과 생산성 그리고 싱가포르의 개발 모델(2016)’ 등이 있다.


동남아시아가 최근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동남아시아는 원래 유망한 시장이었다. 인구도 많고, 자원도 풍부하다. 동남아 지역 전체 인구는 6억명으로 미국(3억2000명)의 두 배에 이른다. 지정학적으로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어 유리하기도 하다. 인구 통계학으로 봤을 때도 평균 연령이 젊은 축에 든다. 동남아 각국 정부들이 상대적으로 사업 친화적(비즈니스 프렌들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연평균 5~6%대의 양호한 경제성장률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에 진출한 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한 회사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라고 생각한다. 도요타는 동남아에 진출한 1세대 글로벌 기업으로 통한다. 인도네시아에서만 4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덕분에 정부와의 돈독한 관계, 규모의 경제, 좋은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 관계 구축과 같은 선착자로서의 이점을 누렸다. 도요타는 특히 일본 공급 업체와 함께 진출해, 사업 초기부터 품질 관리를 실시해 신뢰를 얻었다. 이 밖에 끼장(Kijang) 브랜드 같은 지역 특화 모델을 개발해 공략해 나간 것도 주효했다. 끼장은 도요타가 1977년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시장 공략을 위해 개발한 픽업트럭 브랜드로 현재는 끼장 이노바(Kijang Innova)라는 미니밴 브랜드로 진화했다. 끼장은 동남아 지역에서 30년 넘게 사랑받아온 장수 브랜드다.”

동남아 진출에 실패한 기업 사례는.
“시장 진입에 실패한 사례들을 보면 장기 계획 없이 진출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일찌감치 발을 뺀 경우가 많다. 약 40년 전 동남아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그 당시 이미 시장에 진출해 있는 일본과 유럽 완성차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현대차는 동남아 대신 국내 시장과 북미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꽤 빠른 시일에 철수했다. 자동차 산업이 신시장에 진출하려면 거시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중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즉,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진출한 시장의 개척자가 되는 것 그리고 과감한 투자가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제너럴모터스(GM)는 1956년 인도네시아에 상용차 조립공장을 설립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첫번째 완성차 업체였지만 투자는 예상만큼 성공적이지 않았고, 결국 도요타 등 일본 업체와의 경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GM은 2015년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철수 결정이 잘못됐다고 평가할 순 없다. 실제 GM은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아마 동남아보다 북미나 중국이 더 좋은 시장이니 그곳에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결정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필리핀 등 5개국의 투자 환경은.
“일괄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들 5개국은 유사점이 있다. 정부가 친시장적이란 점과 외국인 투자에 매우 개방적이란 점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것도 공통점이다. 물론 국가별로 자원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다. 게다가 5개국 모두 전 세계적으로 매력적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들 5개국 중앙은행의 거시경제 관리 수준도 우수하다. 정부 재정도 안정적이다.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물가 상승률의 움직임도 모두 안정적이다. 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대기업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동남아 경제는 중소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은 노동력이 풍부해 섬유·신발·전자제품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 경쟁력이 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나은 사회기반시설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글로벌 제조 공급망에 통합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5개국 가운데 가장 유망한 소비재 시장은.
“인도네시아가 가장 유망하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동남아 지역 최대(2016년 말 현재 약 2억6000만명)이지만, 1인당 소득 수준은 연 3000달러(약 342만원)로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이를 감안하면 인도네시아 시장의 성장 여력이 다른 나라들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층 비중이 높고 GDP에서 내수가 수출보다  비중이 큰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내수보다 크다. 하지만 소비재를 제외하고 유망한 노동집약적 수출 제조업 시장을 꼽으라면 베트남과 필리핀을 꼽을 수 있다. 사회기반시설과 부가가치 서비스 분야 투자에서는 미얀마, 첨단 기술 제조 분야는 말레이시아가 유망하다.”

동남아 시장에 진출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엄격하게 말해 ‘동남아 시장’은 없다. 개별 국가 시장이 있을 뿐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산업별 특성, 회사의 경영 전략, 각국 시장의 특수한 환경이다. 개별 시장을 이해하고, 분명한 전략을 세우고, 세밀한 실행 계획을 갖고, 사전 공부를 많이 한 후에 진출하는 것만이 답이다.”

동남아 인프라 개발에 투자할 때 유의할 사항은.
“인프라 신규 투자에 유망한 지역이라고 할 만한 곳은 미얀마와 동티모르뿐이다.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같은 곳의 인프라 건설은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고, 이미 중국이 많이 투자하고 있다. 다른 산업 부문과 비교할 때 인프라 투자는 장기적 관점, 자본시장과 토지 소유권 접근을 위한 정부와 관계 수립, 위험 감내, 환경 및 사회적 영향에 대한 관심, 일정 규모 이상의 설비 투자가 요구된다.”

2016년 출범을 선언한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진행 상황은. 
“AEC가 공식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AEC가 진행 초기 단계인 만큼 불완전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 린다 위엔칭 림(Linda Yuen-Ching Lim)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미시간대 동남아시아 연구센터 소장, 싱가포르국립대 연구원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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