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와 가격이 전례 없이 치솟으면서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이다.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인한 업계의 장기 호황을 ‘수퍼사이클’이라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최근 반도체가 수퍼사이클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시장분석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지난해 연 매출액은 3524억달러(약 398조원)에 달했으며, 올해는 전년 대비 12% 성장한 3951억달러(약 446조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4~5년을 주기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해 왔다. 1990년 이후 메모리 반도체 수퍼사이클은 크게 4번 정도다. 1990년대 중반(PC 사용 증가), 1990년대 말(Y2K 문제로 인한 인터넷 장비 교체), 2000년대 후반(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확산), 2010년대 중반(데이터 급증)에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부터 새롭게 진입한 수퍼사이클이 최대 2년 정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반도체 가격 조사기관인 디램익스체인지(DRAMeXchange)의 시장조사 디렉터인 아브릴 우는 “반도체 활황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데이터를 많이 저장하고, 빠르게 분석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사상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며 “이 수퍼사이클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초호황은 전 세계적인 반도체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가 요인이다. 반도체는 PC와 스마트폰은 물론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기기에 필수적인 부품이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가격도 급등했다. D램의 올 1분기 평균 판매단가는 3.82달러(약 4300원)로 지난해 1분기보다 45%나 급등했다. 각종 정보기술(IT) 기기의 저장장치로 쓰는 낸드플래시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상승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향후 1~2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시장 전망 역시 장밋빛이다. 올해 각 시장조사업체가 예상한 전 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는 3700억달러(약 418조원)에서 3900억달러(약 440조원)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올해 1000억달러(약 113조원)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10%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3사 과점 체제다. 이들 3개 기업이 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낸드플래시도 삼성전자를 비롯 일본 도시바,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SK하이닉스 등 5개 기업만 생산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쉽지 않아 공급량 증가가 제한적이고, 따라서 가격이 좀처럼 폭락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 호황의 이면에는 지난 10여년간 이어져온 혹독한 산업 재편도 한몫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이 혹독한 경쟁을 견뎌낸 기업들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그 과실을 지금 살아남은 기업이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 제조사 중 대표적인 수혜 기업은 삼성전자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에 힘입어 삼성전자 1분기 반도체 매출(약 136억달러)은 지난해보다 무려 46%나 급증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부문은 1분기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64%가량을 차지했다. 삼성전자 주가도 반도체 특수에 힘입어 지난 6개월간 무려 30% 정도 오르며, 최근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는 2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149억달러·예상치)이 지난 24년간 세계 1위를 지켜온 미국 인텔(144억달러·예상치)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IC인사이츠는 “올 하반기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삼성전자가 연간 기준으로도 인텔을 넘어설 것”이라며 “이는 반도체 업계 전체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 원조 기업으로 세계 반도체 산업을 이끌었던 인텔이 20년 늦게 출발한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IT 기기의 중심이 PC(개인용 컴퓨터)에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로 넘어간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올해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차량용 반도체 4년 새 15배 이상 증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올 하반기에도 계속 오를 전망이다. 반도체 시장이 이번엔 과거와 다르게 호황이 길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이는 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자율주행차 등의 기술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IC인사이츠는 올해 D램과 낸드 시장이 각각 39%와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자율주행차 등 자동차에 탑재되는 반도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2016년 46억개에서 자율주행이 본격화되는 2020년 714억개로 확대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는 엔진이나 제어장치, 구동장치 등 핵심 부품에 사용되기 때문에 PC나 스마트폰 등에 적용되는 반도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신뢰성과 내구성이 필요하다. 차량용 D램 가격은 일반 PC용 D램보다 2배 이상 가격이 비싸 수익성이 좋다.

자율주행차의 핵심기능인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탑재되는 낸드플래시의 용량도 급증할 전망이다. IHS마킷에 따르면 현재 ADAS에 쓰이는 낸드플래시 탑재량은 대당 8㎇ 수준이지만 2020년에는 128㎇로 늘어날 것이다.

빅데이터도 반도체 호황을 견인한다.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동시에 분석하기 위해선 빠른 처리 속도가 핵심이다. 빠른 속도를 기반으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체하며 저장장치의 주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는 핵심부품으로 낸드플래시를 사용한다. 빅데이터 시장은 2026년 922억달러로 2016년보다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AI를 기반으로 한 머신러닝 시장의 급성장도 반도체 수요 증가를 짐작케 하는 요인이다. 머신러닝이란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AI 시장은 2016년 80억달러(약 9조400억원)에서 2020년 470억달러(약 53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IT 업체들도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김양팽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산업뿐 아니라 기존의 PC,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며 “더 다양한 제품들에 반도체가 공급되기 때문에 시장은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분야에만 치중한 한국 반도체 산업

반도체 수퍼사이클로 국내 반도체 업체가 누리고 있는 호황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D램 시장은 1강(삼성전자)·2중(SK하이닉스, 마이크론) 구도가 굳어져 있어 업체별 점유율이나 순위 변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AI,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에 필수적인 시스템 반도체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에서만큼은 아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에서 독보적이지만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비투자 중 80%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집중돼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들어서야 자동차용 반도체에 적극적으로 손길을 뻗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초 독일 자동차 업체 아우디에 시스템 반도체 ‘엑시노스 프로세서’를 공급하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인텔·퀄컴·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이어 세계 4위다.

특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내년 이후 시장 변화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우호적 시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부문 매각과 중국 업체들의 끈질긴 추격은 여전히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인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부문은 SK하이닉스와 대만 홍하이그룹, 미국 웨스턴디지털 등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매각 가격이 2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인수전 결과에 따라 낸드플래시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1%로 1위이며, 도시바(17.4%), 웨스턴디지털(15.7%), 마이크론(12.3%), SK하이닉스(10.3%)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만약 웨스턴디지털이나 마이크론이 도시바를 인수하면 점유율이 30% 안팎으로 올라간다. 업계 1위인 삼성전자조차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의 거센 추격 경계해야

중국 정부가 2025년까지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하는 등 거센 추격을 계속하고 있는 부분도 한국 업체가 경계해야 할 점이다. 최근엔 국내 반도체 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되면서 기술 격차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3년인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는 2022년 1년으로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부터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메모리 생산을 시작해 공급량이 증가하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해외 반도체 회사를 수차례 인수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자 중국 내 업체들을 인수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240억달러(약 27조원) 규모의 웨이퍼 공장 투자를 계획 중이며 120억달러(약 13조6000억원)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메모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 반도체 시장은 2019년부터 하락세에 접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이 단기간에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태희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중국이 한국을 단기간에 따라잡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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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말 그대로 전기가 어떤 때는 통하고 어떤 때는 통하지 않는 물질이다. 업계에서 반도체는 집적회로(IC·Intergrated Circuits)를 말한다. 반도체는 크게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 반도체로 분류한다.

메모리 반도체(Memory Semiconductor)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에는 정보를 기록하고 기록해 둔 정보를 읽거나 수정할 수 있는 램(RAM)과 기록된 정보를 읽을 수만 있고 수정할 수는 없는 롬(ROM)이 있다. 정보 저장방식에 따라 램에는 D램과 S램 등이 있으며, 롬에는 플래시 메모리 등이 있다.
 
시스템 반도체(System Semiconductor) 논리와 연산, 제어 기능 등을 수행하는 반도체.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는 데이터를 연산하거나 처리하는 반도체다.

D램(Dynamic Random Access Memory) 용량이 크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컴퓨터의 주력 메모리로 사용되는 램이다. 램은 데이터를 기록하고 기록해 둔 데이터를 읽거나 수정할 수 있다. 전원이 차단될 경우 저장된 데이터가 소멸되며, 전원이 차단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저장된 데이터가 소멸되는 단점이 있다.
 
모바일 D램(Mobile D-RAM) 모바일 기기를 작동하는 데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 컴퓨터에 사용되는 D램과 같이 모바일 기기에 특화된 D램이다. 모바일 D램은 CPU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데이터를 주고 받으며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 공간 역할을 한다.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를 보존하는 특성을 가진 반도체다. 정보를 자유롭게 입출력할 수 있으며, 전력소모가 적고 고속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 주로 휴대형 기기에서 대용량 정보 저장 용도로 사용된다.
 
낸드플래시 메모리(NAND Flash Memory) 반도체의 셀이 직렬로 배열돼 있는 플래시 메모리의 한 종류. 플래시 메모리는 반도체 칩 내부의 전자회로 형태에 따라 직렬로 연결된 낸드플래시와 병렬로 연결된 노어플래시로 구분된다. 낸드플래시는 용량을 늘리기 쉽고 쓰기 속도가 빠른 반면 노어플래시는 읽기 속도가 빠르다.
 
3D V낸드플래시 메모리(3D Vertical NAND) 기존에 단층으로 배열된 셀을 3차원(3D) 수직으로 쌓아올린 낸드플래시 메모리. 기존 2D 낸드플래시에 최첨단 10나노급 공정이 도입되면서 이웃한 셀 간의 간격이 좁아져 간섭 현상이 심해졌는데,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됐다.



손정의 회장이 지난해 10월 25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ARM의 개발자 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plus point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ARM을 인수한 이유
“반도체가 IoT·AI 시대의 플랫폼”

지난해 7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영국 반도체 칩 설계업체 ARM을 무려 234억파운드(약 34조원)에 인수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5년 ARM 순이익의 7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손 회장이 ARM을 인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중국에서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기 훨씬 전인 2000년 알리바바에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의 투자가 실패한 적도 있지만 모두들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눈’에 놀랐다. 손 회장의 ARM 인수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 회장이 ARM을 인수한 것은 새로운 성장동력 모색 차원이기도 하지만 IoT·AI 시대의 플랫폼이 바로 반도체라고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ARM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 사용되는 칩의 회로 설계도를 제작하는 회사다. ARM이 설계도를 만들면 삼성전자나 퀄컴 등이 그 라이선스를 사와서 스마트폰 구동의 핵심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생산한다. 설계만 하고 칩은 제조하지 않아 팹리스(fabless) 업체로도 불린다.

전자제품에서 ARM의 설계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세계 스마트폰의 90%, 태블릿PC의 85%가 ARM의 설계를 바탕으로 만든 AP를 채택했다. 손 회장은 “반도체 칩이 있는 곳에 ARM이 있다”며 “ARM은 바로 플랫폼을 바탕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ARM은 차량제어, IoT 등에서도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사람이 접하는 모든 기기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려면 기기마다 반도체 칩이 들어가야 한다. ARM은 2015년 인텔의 약 40배가 되는 CPU(ARM의 라이선스를 받아 제조된 칩의 수)를 세상에 내놨다. IoT 시대가 도래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반도체 칩 제조사는 최근 30년 동안 1000억개의 칩을 판매해왔다. 손 회장은 “앞으로 20년 동안 스마트 기기의 빅뱅이 일어날 것이며, 반도체 칩 수요는 1조개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분야에 대한 기대도 크다. 손 회장은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이 반드시 온다”며 “이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찾은 것이 ARM 인수였다”고 말한다.

초지성은 딥러닝에 의해 진화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데이터를 전부 학습한다. 그 데이터가 바로 ARM의 CPU에서 나온다고 손 회장은 보고 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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