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트 나야르 HCL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 <사진 : 블룸버그>

인도의 정보기술(IT) 컨설팅 및 솔루션 제공업체 HCL테크놀로지는 경제 전문지 ‘포천’이 뽑은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다. 이 회사의 경영 방식에 대해 하버드비즈니스스쿨뿐 아니라 세계적 경영 전략가인 게리 하멜(Gary Hamel) 등이 극찬했다. ‘포천’은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경영 전략”으로  HCL을 소개한 바 있다.

HCL의 혁신은 2005년 부임한 비니트 나야르(Vineet Nayar) 최고경영자(CEO)가 주도하고 있다. 당시 HCL의 성장률과 시장 점유율은 경쟁 업체에 비해 뒤처져 있었다. 나야르는 조직 내에서 가장 중요하고 주목해야 할 집단은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직원이 우선, 고객은 다음, 경영진은 맨 마지막”이라고 외치며 경영진이 직접 최전선 실무진을 지원하도록 했다. ‘직원 우선주의’를 실천한 것이다. 그 결과 부임 5년 만에 연 매출 7억달러(약 7900억원)의 회사를 연 매출 25억달러 회사로 바꿔 놓았다. HCL은 이후로도 빠른 성장을 지속해 지난해 연 매출 70억달러로 성장했다.

게리 하멜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에 개설한 ‘게리 하멜의 매니지먼트 2.0’ 블로그에서 “HCL이 급성장한 비밀은 나야르 CEO의 ‘피라미드 거꾸로 세우기식’ 경영 혁신에 있다”며 “CEO는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지휘하는 사람이나 무작정 비전을 제시하고 배를 몰아가는 선장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직원 만족이 곧 고객 만족”

나야르는 부임 직후  가장 먼저 직원들을 만나 회사의 문제를 가감없이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객과 최접점에 있는 일선 직원들이 회사의 성장 가치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는 톱다운(하향식)의 피라미드식 경영은 통제에 집착하는 경영진의 힘만 키우게 되는 것이다. HCL 직원 대부분이 젊은 세대라는 점에 주목한 나야르는 관료주의적인 피라미드 경영이 젊은 인재의 추진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했다. HCL에서 직원 우선주의 경영 원칙이 세워진 배경이다. 나야르는 “직원 만족이 곧 고객 만족”이라며 “고객들은 경영진과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일선 직원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경영 원칙은 작은 것에서부터 이행됐다. ‘유앤드아이(U&I)’라는 사내 온라인 포럼을 설치해 직원들이 어떤 질문이라도 거리낌없이 던지게 했고, 경영진과 간부들은 솔직하게 답변했다. 초기에는 직원들 사이에 거친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질문 내용을 검열하지 않고 그대로 게재하자 시간이 갈수록 직원들의 신뢰가 높아졌다. 직원들은 회사가 투명해지려고 노력하고 경영진이 책임질 자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U&I는 직원들의 불만을 알려주는 조기 경보 시스템 역할을 하게 됐다. 

나야르도 직접 사내 소통에 뛰어들었다. 2009년 U&I 사이트에 ‘나의 문제(My Problems)’ 코너를 개설해 자신이 고민 중인 주요 경영 이슈를 공개하고 직원들의 조언을 구했다. 경영진의 고민을 직원들과 공유함으로써 직원들이 책임감을 갖게 하자는 의도였다.


투명한 불만 제기 시스템

HCL은 더 나아가 직원들의 주인의식을 높이기 위해 ‘직원우선위원회’를 설치했다. 문화·오락·기술 등 비슷한 분야에 관심과 열정을 가진 직원들을 각종 위원회로 묶고, 리더를 선출했다. 현재 활동 중인 리더는 2500여명에 이른다. 위원회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전략적인 통찰들을 제시하면, 경영진은 곧바로 실행했다. 나야르는 “중요한 결정을 CEO 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뒤집고 싶었다”며 “회사 매출의 20%가 이들 위원회를 통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줄리언 버킨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HCL의 U&I 사이트는 CEO가 직원들과 소통하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CEO는 정기적으로 일선 직원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HCL 직원들의 문제 제기 창구인 ‘서비스 티켓’에 대해 직원을 모범적으로 관리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만약 HCL 직원이 업무 중 문제점을 발견하면 서비스 티켓이라고 불리는 안건을 사내 인트라넷에 제출해 담당자가 이를 해결하도록 한다. 이의를 제기한 직원만 티켓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담당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후 담당자의 해결책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HCL은 이렇게 직원에게 모든 문제를 회사가 반드시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줬다. 그러자 시행 이듬해부터 한 달에 3만 개나 되는 티켓이 발행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그렇게 제기된 문제를 꾸준히 개선한 결과 HCL은 인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뽑혔다.

하멜 교수는 “HCL의 직원 우선 혁신은 거창한 마스터플랜 없이도 새로운 경영 모델을 제시한 것”이라며 “CEO는 직원들의 능력과 아이디어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묻는 경영 설계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인도 컴퓨터 산업의 선구자 시브 나다르


시브 나다르 HCL테크놀로지 회장 <사진 : 블룸버그>

HCL테크놀로지의 창업주 시브 나다르(Shiv Nadar) 회장은 지난해 인도 부자 순위 4위를 기록했다. 나다르의 재산은 111억달러(약 13조원)다. 나다르 회장은 인도 컴퓨터 하드웨어 산업의 선구자로 꼽혔다. 그러다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유망하다는 판단하에 2000년 이후 IT 서비스 분야를 집중 공략했다. HCL은 이 분야에 성공적으로 안착, 지금은 인도 4위의 IT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나다르 회장은 교육 자선 사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 판사인 아버지의 여덟 자녀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난 나다르는 전근이 잦은 아버지를 따라 이사하느라 학교를 네 번이나 옮겼다. 그는 타밀나두주(州) 코임바토르 소재 PSG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당시만 해도 나다르는 현지 타밀어를 사용했다. 영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22세 이후다. 그는 자신이 “촌뜨기라 모든 게 어설프기 이를 데 없었다”며 “농어촌 출신 학생들은 도시 학생에게 뒤처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나다르 회장은 도시와 농촌의 교육 격차에 관심을 갖게 됐고, 시브 나다르 재단을 통해 빈민층 교육 지원을 위해 10억달러 이상을 지불했다. 나다르 회장은 “기업인을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도 농어촌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미래의 정치·사회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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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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