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미첼(George P. Mitchell)은 그리스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다. 1919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미첼은 17살 때부터 유전에서 일했다. 텍사스 유전지대에서 이름을 날린 미첼이지만 1998년 전만 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에너지 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조지 미첼을 안다. ‘셰일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늘 그의 이름 앞에 붙기 때문이다. 미첼은 지하 2~4㎞ 깊이의 퇴적암층에 갇혀 있는 셰일가스를 효과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수압파쇄법(프랙킹)’을 개발했다. 미첼 덕분에 지하 암반층에 갇혀 있던 셰일은 자유를 얻었고, 전 세계 에너지 산업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7월 ‘2차 셰일혁명(The second shale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2015년 4월 ‘미국의 셰일혁명(The US shale revolution)’이라는 기사를 낸 지 2년 만이다. FT는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저유가 정책으로 미국의 셰일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구조조정을 거친 끝에 이제는 미국의 셰일업체들이 중동의 산유국을 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opec의 ‘석유 무기화’ 끝낸 셰일혁명

미국의 셰일혁명은 단순히 국제유가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신호탄과 마찬가지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미국은 더 이상 중동 문제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주요 산유국이 모여 있는 중동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전 세계 경제의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같은 해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석유의 무기화’에 나섰다. OPEC 회원국들은 원유 감산과 가격 인상을 선언했고, 이 때문에 3개월 만에 국제원유 가격이 4배나 뛰었다. 중동 지역의 원유에 의존하던 많은 국가들이 물가 폭등, 경기 침체의 후폭풍을 앓았다. 1979년에는 2차 오일쇼크가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당시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5%를 담당하던 이란이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어려움을 겪었다. 중동 산유국의 결정에 전 세계 경제가 휘청댔다.

‘석유의 무기화’를 경험한 전 세계 국가들은 에너지원 다변화에 나섰다. 석유의존도가 높은 비산유국은 석유의 비중을 낮추고 석탄과 원자력, 가스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한국과 프랑스는 원전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나섰다. 1차 오일쇼크 전(1971년)에는 전 세계 에너지 믹스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21%에 달했지만, 20세기 막판에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2014년에는 전 세계 에너지 믹스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4%에 불과했다. 셰일혁명의 주역인 미국은 2014년 기준으로 에너지 믹스에서 가스와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27%, 1%다. 중동 산유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진 미국은 중동 지역의 분쟁에 거리를 둔 채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에 힘쓸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최우선 에너지계획’도 셰일혁명에서부터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텍사스주 이글포드 지역에서 작업자들이 셰일오일을 시추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세계 에너지 정책, 환경·안전으로 전환

유럽의 지식인들이 인류 미래에 대한 제언을 하기 위해 모인 ‘로마클럽(Club of Rome)’은 1972년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여러 위험요인을 꼽았는데, 그중 하나가 지구온난화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1985년 세계기상기구(WMO)와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은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선언했다. 환경 문제가 에너지 정책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1980년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전환기였다. 1979년 3월 미국에서는 스리마일(Three Mile) 섬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 인근의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미국의 원전 산업이 위축되는 계기였다. 1986년 4월에는 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터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고 6년간 수천 명의 작업자와 민간인이 죽었고, 방사능 후유증을 앓는 인근 지역 주민은 수십만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구온난화의 위협과 원전 사고의 위험은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이끌었다. 석유의 대안으로 떠오르던 원자력이 주춤하면서, 세계 각국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으로 출범한 ‘신기후체제’가 그 결과물이다.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인 1880년 대비 2100년 지구 온도 상승폭을 2도 미만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파리기후협약에 합의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내놓아야 했다.

사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제외하면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많지 않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늘어난 이유다. 독일은 전기세 부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원전을 없애고 강력한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원전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일찌감치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뛰어들었고, 그 덕분에 스웨덴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전체 에너지 생산의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가능성만큼이나 한계도 분명하다. 태양광, 풍력 같은 주요 신재생에너지는 발전 효율이 떨어진다. 리처드 뮬러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풍력과 태양광의 실제 발전량은 설비 총량의 10~30% 수준에 불과하다”며 “많은 사람이 신재생에너지를 종교처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환경을 생각하면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원자력의 온실가스 배출계수는 10에 불과하다. 1의 전력을 생산하면 온실가스 10g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석탄(991g)이나 천연가스(549g)는 물론이고, 태양광(57g)이나 풍력(14g) 같은 신재생에너지보다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 기술 발전으로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용량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원전이 아직까지는 신재생에너지보다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탈리아 북부의 토리노에 있는 치바소 복합발전소는 2013년 가동을 중단했다. 전력 수요량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소의 효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소방수로 나선 건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었다. GE는 치바소 발전소의 주요 설비와 기계에 1만 개의 센서를 설치해 효율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발전소의 가동과 중지에 걸리는 시간이 전보다 2.5배 빨라졌고, 발전 효율이 높아진 치바소 발전소는 2015년 가동을 재개했다.



인도 니머치에 있는 웰스펀 에너지의 태양광 발전단지 모습. <사진 : 블룸버그>

에너지 미래 여는 ICT 혁신

치바소 발전소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에너지 산업의 혁신을 이끌어낸 하나의 사례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되는 ICT 분야의 혁신이 에너지 산업의 효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불안정성이 가장 큰 약점인 신재생에너지도 ICT 혁신의 수혜자다. 에너지저장장치(ESS)는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저장하는 핵심적인 장치다. ESS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신재생에너지의 활용도도 커진다.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낮에 생산한 전기를 ESS에 담아뒀다가 해가 지고 난 이후에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 lg화학 등 한국 기업의 주도로 ESS 성능은 매년 향상되고 있다.

분산형 발전도 ICT가 아니었다면 먼 미래의 일에 불과했다.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이용하는 발전 방식은 대규모에 중앙집중형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런 대규모 발전 방식은 국가 주도로 이뤄지기 때문에 폐쇄적인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하지만 ICT가 전력 인프라에 적용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성격의 발전 방식이 자리잡았다. 발전 사업자와 송배전 사업자, 전력 수요자가 실시간으로 전기와 정보를 교류할 수 있게 됐고, 전력 수요자는 자신의 집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 등을 통해 생산한 전기를 거꾸로 발전사업자에게 팔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분산형 발전은 대형사고나 유해물질 유출의 위험도 적기 때문에 안전 측면에서도 훨씬 이상적이다. 토니 세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월마트 같은 유통업체들이 전력 소비량을 자체 충당하는 시대가 온다”며 “분산형 발전이 기존 전력회사들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Keyword
에너지 믹스(Energy Mix) 에너지 믹스는 전체 에너지 생산에서 특정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지표다.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에너지원이 다변화되면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믹스는 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에너지 믹스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면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펼친다는 의미다.

plus point

파리기후협약
195개국 온실가스 감축 합의… 신재생에너지 개발 촉진

이종현 기자


2015년 12월 파리기후협약 체결을 기념해 각국 정상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위키피디아>

2007년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발간한 보고서 하나가 전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IPCC의 보고서는 지구온난화의 위협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지구 온도가 섭씨 1도만 올라도 양서류 전체가 멸종하고, 섭씨 2~3도가 오르면 지구 생물의 20~30%가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온도 상승으로 인한 물 부족과 기근 등 끔찍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설명도 함께였다.

지구온난화의 위협에 맞서려는 전 지구적인 노력은 1990년대부터 계속됐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1997년 교토의정서가 잇따라 체결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결과물은 마땅치 않았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명문화했다는 성과가 있지만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었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의 감축 의무를 규정했지만 미국이 비준을 거부했다.


미국 탈퇴 선언으로 무효화 위기

파리기후협약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이다. 2015년 12월 195개국이 파리기후협약 체결에 합의했다.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유지하자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놨다. 특히 주요 선진국뿐만 아니라 UNFCCC에 가입한 개발도상국도 모두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한다. 파리기후협약에 참여한 모든 국가는 5년마다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INDC)를 제출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은 2030년 배출전망치(BAU) 대비 온실가스 37%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BAU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를 뜻한다.

파리기후협약 덕분에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기술개발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전 세계 신재생에너지 투자액은 2005년 730억달러에서 2015년 2860억달러로 10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지만, 당장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파리기후협약의 규약에 따르면 미국은 아무리 빨라도 2020년 11월은 돼야 탈퇴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나마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파리기후협약에 묶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각 주(州) 차원에서 파리기후협약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다른 주요국도 파리기후협약을 지키겠다고 천명했다. 얀 페터르 발케넨더 전 네덜란드 총리는 “에너지 분야에서는 유럽이 미국의 리더십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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