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패션쇼. 이 쇼는 버버리 홈페이지는 물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사진 : 버버리>

“버버리(Burberry)의 런웨이(패션쇼)가 진화하고 있다. 패션쇼에서 선보인 제품을 ‘보고 바로 살 수 있는(See now buy now)’ 시스템을 통해서다. 버버리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전 세계 4800만명이 넘는 소셜미디어(SNS)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의 2016년 연간 리포트에 담긴 핵심 전략이다.

버버리는 지난해 9월 16일 런던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이 쇼는 버버리 홈페이지는 물론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핵심 제품인 트렌치코트부터 영국 전통 연대기 줄무늬가 들어간 레지멘털 케이프(망토), 허리가 들어간 필드 재킷, 목주름 셔츠, 파자마 스타일 바지 등이 공개됐다.

다음 날 전 세계 버버리 매장에는 패션쇼에서 선보인 제품이 전시됐다. 매장에 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고객이 패션쇼를 보고 맘에 드는 제품을 바로 살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버버리는 올 2월 열린 패션쇼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동안 명품 브랜드는 패션쇼를 열고 6개월 뒤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2월에 6개월 후의 가을·겨울(F/W) 컬렉션을, 9월에는 이듬해의 봄·여름(S/S) 컬렉션을 공개하는 등 한 시즌 앞서 제품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열었다. 이를 통해 제품 홍보와 주문량에 따른 생산량을 조절했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패션쇼가 열리는 시기와 선보이는 제품 사이의 계절적 간극을 참아야 하는 것도 소비자의 몫이었다.


패션쇼 6개월 뒤 판매하는 낡은 습관 없애

버버리는 이런 명품 브랜드의 오랜 ‘패션쇼-판매’ 관습을 깼다. 패션쇼에 나온 제품을 소비자가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꾼 것이다.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제품이 매장에 나오기 몇 개월 전에 컬렉션을 보여주는 방식은 구시대적이고 명품 시장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패션쇼에 공개된 제품을 즉각 구매하길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패션쇼와 매장을 보다 가깝게 연결했다”고 말했다.

현재 버버리는 9월에 진행할 패션쇼 준비에 분주하다.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매장도 마찬가지다. 버버리는 현재 미국, 유럽, 중동, 아시아 등 전 세계에 500개가량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버버리 관계자는 “패션쇼 후 1~2주 동안 고객이 매장에서 패션쇼를 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버버리는 ‘디지털 혁신’ 전략도 펼치고 있다. 이 혁신은 2006년 시작됐다. 당시 버버리는 루이뷔통 등 경쟁 브랜드에 비해 매출 성장세가 뒤처져 있었다. 해당 업계가 연간 12~13%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버버리의 성장률은 1~2%에 불과했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버버리 경영진은 ‘우리의 비전은 무엇인가’ ‘경쟁 기업과 차별화된 버버리의 특징은 무엇인가’라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버버리만의 특별한 자산과 전략적 위치를 고려한 계획도 세웠다.


매장에 없는 제품 태블릿 PC로 보여주며 설명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버버리는 영국 브랜드이고 트렌치코트에서 시작했다. 경쟁 기업은 부유한 여성 고객을 주요 타깃으로 정하고 있다. 많은 홍보 예산을 가지고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그들과 정면으로 승부하면 승산이 없다.”

버버리 경영진은 소셜미디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며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20대 젊은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마케팅·판매 과정을 디지털화했다. 고액자산가 고객 평균 연령이 기존 시장에 비해 15세 낮은 신흥국도 집중 공략했다.

버버리는 공식 홈페이지를 11개국 언어로 개편했고,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패션쇼를 실시간 중계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론칭하는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쳤다. 한국에선 카카오, 중국에선 위챗과 협력하고 있다.

업계에선 버버리가 소수 부유층을 상대로 폐쇄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쳤던 과거 명품 브랜드 전략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한다. 실적도 증가했다. 버버리는 2013년 매출 23억3000만파운드(약 3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1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에는 매출 27억6600만파운드, 영업이익 4억6200만파운드(약 6700억원)를 달성했다.

버버리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한 안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 전 최고경영자(CEO)는 버버리를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버버리의 핵심가치를 가장 큰 유산인 ‘영국다움(Britishness)’에 두고, 디지털 혁신을 통해 지역과 배경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접근하고 소유할 수 있는 ‘럭셔리 민주주의’를 지향했다.

버버리는 전 세계 매장도 디지털화했다. 우선 매장 내에 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고객에게 패션쇼 등의 동영상을 보여주고,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모든 직원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해 소비자에게 매장에 전시되지 않은 제품을 보여주고, 가격 등 쇼핑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특히 명품은 소량 생산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재고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버버리 매장 직원은 현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없을 때 태블릿 PC로 전 세계 매장을 검색해 제품을 찾아주고 있다.

런던 버버리 매장은 모든 의상에 전자 태그를 삽입해 옷을 들고 특수 거울 앞에 서면 해당 의상과 관련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함께 입으면 좋은 의상도 소개하고 패션쇼에서 모델이 입은 모습도 볼 수 있다.


plus point

버버리 혁신 이끄는 크리스토퍼 베일리


베일리는 패션쇼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001년 버버리에 합류했다. 과거 명품 브랜드 도나카란에서 함께 일했던 안젤라 아렌츠 전 버버리 최고경영자(CEO)가 적극 추천했다. 이후 베일리는 전통적인 버버리 스타일에 특유의 젊은 감각을 접목해 나갔다. 개성 있는 체크 패턴을 도입하고, 코트에 꽃무늬를 넣거나 금색·노랑·핑크·파랑 등 화려한 색상도 사용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버버리의 아이덴티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젊고 신선한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베일리는 명품 브랜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자마자 의상 디자인뿐 아니라 각종 광고 이미지 등 ‘고객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을 통해 외부로 나가는 구조를 만든 이유다.

그는 2014년에는 버버리 CEO도 맡았다. 총괄 디자이너가 경영까지 맡게 된 것은 글로벌 명품 업계에선 매우 드문 일이다. 그는 패션쇼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했다. 인터넷을 통해 패션쇼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고, 지난해에는 패션쇼에서 선보인 제품을 보고 바로 살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베일리는 올 1월 CEO에서 물러나, 현재는 버버리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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