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스케넥터디에 있는 GE 발전사업부 본사 야경. <사진 : 플리커>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에서 시작된 125년 역사의 글로벌 제조 대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General Electric)’이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한 디지털 회사로 다시 태어났다. 16년의 임기를 마치고 8월 1일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제프리 이멜트 회장(회장직은 연말까지 유지)이 GE를 그렇게 바꿨다.

1892년 설립된 GE는 세계 최대의 글로벌 인프라 기업이다. 전력, 에너지 관리, 항공, 헬스케어, 운송 등의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1896년 출범한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에 포함된 12개 상장 기업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멜트 회장 주도로 GE 환골탈태

이런 공룡 기업이 변신한 것은 2009년의 단순한 대화에서 시작됐다. 이멜트 회장은 그해 뉴욕에 위치한 GE글로벌리서치센터에서 과학자들과 제트엔진에 센서를 내장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트엔진은 운항 중 항공기에 필요한 전원과 동력을 제공하고, 수조바이트에 달하는 데이터를 생성한다.

이 데이터는 엔진 상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소중한 정보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엔진 운용을 최적화할 수 있고, GE가 더 좋은 엔진을 만들 수 있다.

이멜트는 이 대화 이후 GE를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종류의 기업으로 바꿨다. 사물인터넷으로 기계를 연결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디지털 산업 기업’이 현재 GE의 모습이다. GE는 ‘디지털 제조업’에 뛰어들었고, ‘산업용 인터넷 운영체제(OS)’를 개발해 보급했다. 제조 대기업 GE에 부족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스코에서 윌리엄 루 현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영입했다. 산업인터넷 분야에서 개인용 컴퓨터(PC) 운영체제 윈도 같은 산업용 인터넷 운영체제 ‘프레딕스’를 개발해 기계가 생산해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다른 기업에도 제공하고 있다. 기계에 센서를 달아 얻은 데이터로 항공기 엔진 성능을 끌어올린 것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멜트가 전임 잭 웰치 회장에게서 넘겨받은 GE는 백색가전과 금융, 미디어에 걸쳐 있는 회사였다. 이멜트는 수익성이 낮거나 핵심 제조업과 관련 없는 사업 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신규 사업을 추가해 영역을 확장했다.

이멜트는 방송사 NBC 유니버설 지분을 컴캐스트에 매각했다. 가전은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다. 기업 리스 사업을 제외한 금융 부문과 플라스틱 사업도 매각했다.

매각해서 얻은 자금으로 이멜트는 풍력 발전 부문을 인수하고, 재생 에너지 부문을 육성했다. 석유·가스 업체와 생명과학 업체를 인수했다. 그 결과 에너지·항공·헬스케어 등 미래 지향적인 기업으로 변신했다. 2008년에 GE의 매출액 중 절반은 금융업과 NBC 방송 등 서비스업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엔 90% 이상이 전력, 헬스케어, 항공, 석유·가스, 에너지 등 제조업 부문에서 발생했다.

잭 웰치 시대와 비교하면 ‘GE’라는 이름만 같고 사업 내용은 완전히 다른 수준이다. 이멜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물려받은 회사의 3분의 2 정도를 매각한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하는 공장’ 만들어 제조업 경쟁력 향상

신흥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이멜트가 공을 들인 결과다. 그가 회장에 취임하기 전인 2000년 GE의 해외 매출 비율은 30%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중국 사업의 영향으로 60%까지 확대됐다. 이멜트는 “GE는 15~16년 전엔 없었던 사업의 경쟁력을 갖췄고, 중국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멜트는 ‘생각하는 공장(Brilliant Factory)’을 만들어 제조업 경쟁력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GE헬스케어 일본 히노(日野) 공장에선 대형 의료 스캐너용 부품과 소형 정밀기기용 부품이 생산된다. 첨단 디지털 정보 기술과 운영 시스템이 결합돼 일반적인 공장보다 예기치 못한 가동 중지 시간이나 오류는 적고 생산 속도는 더 빠르다.

단순히 센서와 RFID(전자태그)를 달았다고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생산 공정에서 즉각적으로 조율할 수 있게 하는 ‘첨단 디지털화’와 제조 과정에서 낭비를 제거하는 ‘린(lean) 생산 방식’이 결합한 덕분이다. 이 공장에서 CT(컴퓨터 단층촬영) 스캐너를 생산하는 데, 1982년엔 1주일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단 몇 분이 걸릴 뿐이다.

생산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공장 내 시스템이 문제가 발생한 시간과 장소,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리자들은 애플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알림을 받는다. 현재 작업자들은 노트북이나 참고 자료를 휴대하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스마트 글라스를 착용하고 원격 지시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다.

GE는 스타트업의 방식을 도입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더 빠르게 내놓기 위한 경영 혁신 도구 ‘패스트웍스(FastWorks)’도 개발했다. 먼저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고, 제품화에 필요한 요구 사항을 조사한다. 이 단계에서 실현 가능한 최소한의 제품(MVP·minimum viable products)을 시제품으로 제작해 고객의 의견을 듣는다. 고객의 피드백은 즉시 개발에 반영돼 제품을 개선시킨다.

패스트웍스의 개념을 보면 최고의 품질이 아닌 제품이 출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하지만 오랜 품질 관리 기법이 체화돼 있기 때문에 패스트웍스를 도입해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패스트웍스는 소형 제품뿐만 아니라 대형 발전용 가스터빈 등에서도 실적을 내고 있다.



GE헬스케어 일본 히노 공장에서 관리자가 손목에 착용한 애플워치로 생산 과정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 GE>

주주 배당 늘었지만 주가는 하락

이멜트는 재임 기간에 GE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았지만 주식시장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사임도 어느 정도 예견됐다. 재임 기간에 9·11 테러와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제에 큰 타격을 준 사건들이 터졌다. 이멜트는 “대규모 불황과 버블,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회사를 이끌었고, 재임 기간 중 세 차례의 ‘블랙 스완(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이멜트가 CEO로 재직하는 동안 GE 핵심사업부의 수익은 3배 증가했고, 지난 10년간 GE의 수주잔액은 3240억달러에서 1500억달러 정도 증가했다. 이멜트의 임기 동안 GE가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이전 110년 동안 지급한 금액을 모두 합한 액수보다 많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GE의 주가수익비율(PER·주식 가격을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40배에서 17배로 떨어졌다. 이멜트 취임 후 GE의 주가가 29%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 500 지수는 2배 이상으로 뛰었다.

GE는 2011년부터 회장 승계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13년에 CEO 교체 시기를 2017년 여름으로 확정했다. 최근에 주가가 하락한 것이 이멜트 회장의 퇴임을 앞당겼다는 분석도 있다. 행동주의 투자가 넬슨 펠츠의 트라이언매니지먼트가 2015년 지분 1%를 확보한 이후엔 실적 개선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이멜트는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가 부진한 것에 대해 “GE의 변혁 작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GE가 만들고 있는 드라마에 최종회는 없다”고 했다.

신임 GE CEO에 GE헬스케어 대표를 역임한 존 플래너리가 취임했다. 다만 이멜트는 연말까지 회장직을 유지한다. 플래너리가 회장에 취임하는 것은 내년 1월이다.

이멜트는 자신의 뒤를 이어 GE를 이끌 플래너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한마디를 해주려고 한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쉬워 보인다”라는 조언을 남겼다.


plus point

이멜트 회장 ‘린 스타트업’ 읽고 GE 혁신 아이디어 얻어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에릭 리스가 쓴 ‘린 스타트업’을 읽고 GE를 혁신시켰다. 린 스타트업은 짧은 시간에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본 다음 제품에 반영하는 것을 반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경영 방법론이다.

도요타의 ‘린 생산 방식(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체의 활동을 낭비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줄여나가는 방식)’,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방법론 ‘애자일(Agile·정해진 계획만 따르기보다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식)’ 등을 접목해 리스가 고안해냈다.

리스는 이미 성장한 대기업도 신생 회사와 마찬가지로 혁신과 새로운 사업 창출을 위해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lus point

GE 초대 사장 찰스 코핀
짐 콜린스가 ‘최고 경영인’ 선정

찰스 코핀 GE 초대 사장. <사진 : GE>
토머스 에디슨은 1878년에 ‘에디슨 전기조명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1890년 인수·합병 후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 컴퍼니’로 재편됐다. 1879년엔 엘리후 톰슨이 ‘톰슨-휴스턴 일렉트릭 컴퍼니’를 세웠다. 1892년 두 회사가 합병해 ‘제너럴 일렉트릭(GE)’이 탄생했다. 합병 후 초대 사장으로 톰슨-휴스턴의 고위 임원이었던 찰스 코핀이 취임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쓴 미국의 유명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2003년 ‘포천’에 역사상 최고의 경영인 10명을 선정해 소개했다. 이 리스트 1위에 오른 사람이 GE의 초대 사장 코핀이다. 콜린스는 “모두가 각자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든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코핀은 직원을 대할 때 한 번도 ‘내 부하(my subordinates)’라고 부르지 않고, 언제나 ‘내 동료(my fellow)’라고 했다. 그는 “성공의 핵심이자 관건은 사람”이라며 GE의 진정한 상품은 전구나 전동기가 아닌 경영 리더라고 생각했다.


plus point

신임 CEO 존 플래너리
30년 전 사원으로 입사해 CEO 오른 ‘샐러리맨 신화’
19조원 규모 전력사업 인수 성공시키며 실력 입증

이용성 차장

8월 1일 CEO에 오른 존 플래너리. <사진 : 블룸버그>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의학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겠지만 그로 인해 개인 정보와 사생활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이런 기술들이 발전해도 최종 결정권은 언제나 의료진이 갖게 될 것이다.”

존 플래너리 GE 최고경영자(CEO)가 GE의 헬스케어 부문 CEO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이코노미조선’과의 독점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국내 헬스케어 산업에 대해 “한국 의학 전문가와 관련 교육기관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GE헬스케어도 기술력 향상을 위해 한국 의료진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플래너리는 지난 6월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의 후임으로 결정됐다. 이멜트는 플래너리에게 8월 1일 그룹 CEO 자리를 넘겨줬다. 내년 1월 1일에는 회장직도 넘겨줄 예정이다.

이멜트는 플래너리에 대해 “강인한 리더십과 탁월한 판단력, 유연성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 것은 아니다.


폭넓은 경험, 위기관리 능력 인정 받아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제프 뵈른슈타인 최고재무책임자(CFO)나 스티브 볼즈 GE 전력 부문 대표, 로렌조 시모넬리 GE 석유·가스 부문 CEO와 ‘4인 경쟁’ 체제에서 밀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내부 평가가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결국 차기 수장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다양한 지역과 사업 분야에서 쌓은 폭넓은 경험과 이를 통해 보여준 리더십과 위기관리 능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래너리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고 1987년 GE 캐피털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한 번도 GE를 떠나지 않은 ‘30년 GE맨’이자 ‘샐러리맨 신화’다.

그의 부친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서 근무했고 1971년 코네티컷주 웨스트 하트퍼드로 이사한 뒤 이곳에서 소규모 은행의 은행장을 지냈다.

플래너리는 은행가의 아들답게 주로 금융 부문 경력을 쌓은 ‘재무통’이다. GE캐피털 근무 초기에는 자산 관리와 사업 리스크 분석 업무를 주로 맡았고 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에서 특히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아르헨티나·칠레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 근무했고 2002년 GE에쿼티 CEO를 거쳐 2005년에는 GE캐피털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본부장에 임명되면서 한국과 일본·호주·인도 사업을 총괄했다.

아·태 본부장 임기 중 한국과 일본에서 GE의 수익은 각각 30%, 100% 늘었고 이는 그가 GE의 차기 리더 후보군으로 눈도장을 받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플래너리는 2015년 GE가 독일 지멘스를 물리치고 프랑스 알스톰의 전력 사업을 인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인수 금액은 170억달러(약 19조5000억원)로 GE의 기업 인수 역사상 최고액이다.

플래너리는 비용 절감 노력을 이어가면서 이멜트 회장이 시작한 사업구조 전환을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는 CEO 취임 직후 GE 직원들과의 회동에서도 “GE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하겠다”며 “절박함을 갖고 깊이 있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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