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는 올해 1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발전소에서 에너지 연구에 사용하는 풍력 터빈을 선보였다. <사진 : 블룸버그>

“우리가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이 되지 못한다면 가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망할 겁니다.”

제프리 이멜트는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CEO) 재직 시절, 매달 두 차례씩 미국 뉴욕주의 크로톤빌에 있는 GE 연수원 임원개발 프로그램 강연자로 참여했다. 여기서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기술 기업’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플랜B 같은 건 없다. 지금 우리가 가려는 길만이 성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GE는 지난해 10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에 ‘글로벌 오일&가스 리서치센터’를 개설했다. 1300억원을 투입해 만든 새 리서치센터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분리 정제기술을 접목한 시추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이곳에는 깊이가 400피트(약 122m)와 60피트인 테스트용 시추 구멍을 비롯해 GE의 클라우드 기반 산업인터넷 플랫폼인 프레딕스(Predix)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GE는 이곳에서 에너지 분야 협력사인 데본 에너지, 콘티넨털 리소스, 체서피크 에너지 같은 글로벌 기업과 공동으로 시추 장비 개발을 진행 중이다. 빅터 아베이트 GE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새 리서치센터는 새로운 기술과 개념들을 신속하게 개발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설비와 자원을 갖추고 있다”며 “오클라호마시티에 혁신의 뿌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GE는 전 세계 10곳에서 글로벌 리서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리서치센터들은 이멜트 회장이 추진한 GE의 ‘기술 기업화’에서 첨병 역할을 맡았다. GE는 2014년에 전천후 에너지, 생각하는 공장 등 6대 첨단 기술을 차세대 먹거리로 제시했다. 이 6대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핵심 역할을 바로 글로벌 리서치센터가 맡았다. 이곳에서 개발된 기술들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에도 R&D 투자 확대

에어아시아는 GE의 산업인터넷 솔루션인 ‘항공 효율성 서비스’를 적용해 2014년 이후 연료 비용으로만 3000만달러를 절감했다. 미국 동부 최대 철도회사인 노퍽 서던은 GE가 개발한 ‘운행 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해 철도 운행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런 성과는 GE가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GE는 지난 10년 동안 430억달러(약 48조8800억원)를 R&D 투자했는데, 최근 들어 투자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GE의 R&D 투자액은 2012년 45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55억달러(약 6조2600억원)로 늘었다. 이멜트 회장이 CEO에 취임한 2001년과 비교하면 R&D 투자액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GE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R&D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이며 눈치를 볼 때도 GE는 되레 투자를 늘렸다. 예컨대 GE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상용 엔진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두 배로 늘렸다. 이런 적극적인 투자의 결과는 시간이 지나서 나타났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에어쇼에서 GE는 300억달러 규모의 상용 엔진 판매 계약을 맺었지만, 경쟁사들은 20억달러 수준에 그쳤다. 이멜트 회장은 “우리는 GE가 디지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애널리틱스 소프트웨어와 머신러닝 역량을 자체 개발하기 위해 1년에 40억달러를 투입했고, 적층가공(3D프린팅) 장비와 서비스 분야에도 20억달러를 따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멜트 회장은 2015년 “우리의 목표는 디지털 회사”라며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현재 60억달러 수준인 GE의 소프트웨어 가치를 2020년까지 100억달러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을 대표하던 GE의 변신은 소프트웨어 인력 육성에서부터 시작됐다. GE는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인근의 샌라몬(San Ramon)에 소프트웨어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GE 글로벌 리서치센터 산하에 설립된 소프트웨어 연구센터는 에너지·발전·운송·항공 등 여러 산업장비 분야에 특화된 GE의 역량에 소프트웨어 지식을 접목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연구센터가 원활하게 돌아간 건 아니다. 설립 첫해에는 연구센터 인력이 30여명에 불과했다. GE의 기존 이미지와 소프트웨어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을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GE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전문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연구센터 근무 분위기를 실리콘밸리에 어울리게 자유롭게 바꾸고, 대대적인 보상 패키지를 제공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소프트웨어 연구센터 인력은 2013년에 750여명으로 늘었고, 최근에는 1400명까지 빠르게 확대됐다.


하이브리드 기관차 등 친환경 기술로 개발

GE R&D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친환경 분야에 대한 투자가 많다는 점이다. GE는 2005년부터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이라는 이름의 친환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에코매지네이션은 환경을 뜻하는 ‘에콜로지(Ecology)’와 GE의 슬로건인 ‘상상을 현실로(Imagination at work)’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고효율 조명기기인 발광다이오드, 하이브리드 기관차 등이 대표적인 에코매지네이션 제품이다. GE는 매년 에코매지네이션 관련 R&D에 2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R&D 투자 규모가 27억달러에 달했다. 전체 R&D 투자액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에코매지네이션 관련 매출액은 380억달러에 달해 투자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GE 글로벌 리서치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빅터 아베이트 CTO는 “우리의 역할은 발명하고, 정의하고, 기술을 발전시켜서 GE의 사업 모델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 역량과 비즈니스 마인드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lus point

이멜트가 삼고초려해 영입한 윌리엄 루 CDO


윌리엄 루 GE 최고디지털책임자(CDO). <사진 : GE>

“디지털 제조업이 50단계를 거쳐야 한다면, 나는 한두 단계 정도밖에 모른다. 당신이 도와줘야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다.”

윌리엄 루(William Ruh)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2011년 삼고초려 끝에 데려온 인재다. 루 CDO는 디지컬(Digical·디지털과 피지컬의 합성어)로 불리는 GE의 혁신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기존의 산업장비 제조 분야에 소프트웨어를 접목하는 GE의 새로운 도전을 이끈 것이다. 루 CDO는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분야에서 30여년에 걸쳐 경력을 쌓았다. 이멜트  회장이 처음 이직을 제안했을 때는 시스코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루 CDO는 “GE는 소프트웨어의 S자도 모르는 회사”라며 이직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멜트 회장이 10억달러의 예산을 자유롭게 활용해 소프트웨어 연구센터를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등 전폭적인 권한을 주자 마음을 바꿨다. 지금은 GE의 기술 기업화를 이끄는 선봉을 맡고 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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