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 있는 GE 공장에서 직원들이 MRI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제너럴일렉트릭(GE) 인도 지사는 자체 결정으로 푸네에 있는 멀티모달(multimodal) 공장에 자금을 지원하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독일에서 풍력 터빈을 만들고 중국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생산할 때 필요한 주요 의사 결정도 각 지사 주도로 이뤄진다. 다른 기업이라면 본사의 사업 검토와 승인이 필요한 결정이지만, GE에서는 지사의 판단이 최종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지역 조직의 권한을 확대해 그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책임자가 사업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이 전략은 GE가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GE가 세계 전역으로 시장을 넓혀 글로벌화를 이루는 동시에 지역화에도 성공하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GE가 전 세계에 글로벌 표준을 적용하면서 각 지역적 특성도 반영한 것은 진정한 글로벌화는 지역화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한 덕분이다.

GE가 글로벌화와 지역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은 지난 16년간 GE를 이끈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 회장이다. 이멜트 회장을 비롯한 GE 경영진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GE는 사무실 책상이나 회의실에서 170곳이 넘는 해외 시장에서 이뤄지는 사업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기존 시스템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본사에서는 중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상하이·베이징·시안·충칭 등 각 도시마다 환경이 전혀 달랐다.


인도 푸네의 GE 공장. <사진 : GE>


홍콩에 ‘글로벌성장조직’ 설립

GE는 세계 시장을 관찰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고 2011년 ‘글로벌 성장조직(GGO)’을 출범시켰다. 기존 사업부 중심이 아니라 지역과 시장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GE는 이 조직이 미국에 있다면 GE의 글로벌 비즈니스 의지가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자본 거래와 무역이 개방된 아시아 중심 지역 홍콩에 GGO를 세웠다. 그리고 GE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진인 존 라이스 부회장을 GGO 리더로 선임했다.

GE는 거대한 조직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해법을 미국 밖에서 찾고 있다. GGO와 이 조직을 이끄는 라이스 부회장은 GE의 성장 목표를 실현할 행동조직인 셈이다. 성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멜트 회장 취임 직전인 2001년 35%에 불과했던 미국 이외 시장의 GE 매출 비율은 GGO가 설립된 직후인 2012년 52%로 증가했고, 지난해는 57%로 더 늘었다. GE는 2020년까지 이 비율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글로벌 기술과 지역의 수요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동 지역에 판매할 엔진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이 적용되는 것에 더해 뜨거운 온도와 바람, 모래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경쟁사를 이길 수 있는 글로벌 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지역 수요에 맞게 현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수 인재 신흥시장 파견

많은 기업이 글로벌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성숙한 기존 사업의 성공이 새로운 시장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가리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경험하는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E는 조직 관리에서 혁신을 거듭했다. GGO 주도로 글로벌화와 지역화 간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GGO는 우선 지역 조직이 본사 시각에 매몰되지 않고 시장 상황에 따라 판단하도록 지역 관리자들에게 해당 지역의 손익관리와 프로젝트 추진 업무를 전적으로 위임했다. 또 모든 직원이 지역 관리자와 사업부 담당자에게 동시에 사안을 보고하도록 했다.

GGO와 지역 조직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도록 돕는 정책도 마련됐다. GE는 GGO 조직을 책임지는 라이스에게 전권을 부여해 GE 내 우수한 리더를 GGO에 데려가도록 했다. 라이스는 풍부한 경험과 인맥을 가진 리더를 불러들였고, 이들은 GGO 조직이 GE의 성장을 주도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GE는 본사가 아닌 지역에 파견되면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 직원들의 생각을 바꿨다. 신흥시장에서 관리자로 일한 많은 직원을 승진시켜 GE의 주요 직책에 임명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멜트 회장의 뒤를 이은 존 플래너리 신임 CEO다. 플래너리 신임 CEO는 경력의 절반을 미국 이외 지역에서 쌓았다. 올해 그룹 CEO에 선임되면서 지역에서 성과를 내면 중용된다는 GE 인사 정책의 상징이 됐다.

GE는 신흥시장 지사에서 일할 현지 인재가 부족한 문제도 해결하고 있다. 라이스는 지사에 강력한 인사(HR) 조직이 없다면 지역 인재를 양성·채용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GE는 각 지역 조직의 인사·재무·IT·영업·마케팅·커뮤니케이션·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강력한 기능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plus point

글로벌 전략 주도하는 GE 2인자 존 라이스 부회장


존 라이스 GE 부회장 겸 글로벌 성장 운영 부문 CEO. <사진 : 블룸버그>

GE의 글로벌 전략은 GGO를 이끄는 존 라이스 GE 부회장 겸 글로벌 성장 운영 부문 CEO가 주도하고 있다. GE 회장 바로 아래 2인자로 불리는 존 라이스는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GE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해밀턴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1978년 첫 직장으로 GE에 입사한 후 39년째 GE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 본사는 물론 홍콩·싱가포르·캐나다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일했고 GE운송과 GE에너지, GE기술인프라 부문 CEO를 지냈다.

GE가 지역 담당자에게 큰 권한을 위임해 지역화와 균형을 맞춘 성공적인 글로벌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라이스 부회장의 공이 크다는 평가다. 그는 회사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들을 선발해 GGO 조직에 힘을 실었고, 본사 경영진과 직원들에게 지역 조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며 글로벌 사업 비중을 꾸준히 확대해나가고 있다. 라이스 부회장은 매년 40~50개국을 방문해 고객을 직접 만나고 현장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나라에도 여러차례 방문했다. 라이스 부회장은 “미국과 서유럽 성장 속도는 둔화됐지만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감각을 유지하면서 현지 지역의 수요 변화를 포착해 사업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선옥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