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는 상명하달식 의사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모든 임직원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게 했다. 사진은 GE 직원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모습. <사진 : 블룸버그>

117년 전인 1900년 월스트리트저널이 12개의 미국 초우량 기업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제너럴 일렉트릭(GE)뿐이다. 최근 GE는 시대 변화에 맞춰 디지털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경영진은 GE의 생존 비결로 ‘혁신’을 꼽는다. 마크 셰퍼드 GE디지털 아시아·태평양지역 최고커머셜책임자(CCO)는 “스타트업의 성장 비밀에서 생존 해법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은 1%의 작은 개선에서 시작한다”며 “GE는 ‘패스트웍스(FastWorks)’라는 업무 방식을 도입해 혁신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규모와 속도 겸비해야 경쟁 우위”

GE는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패스트웍스’라는 처방전을 내놨다. 패스트웍스는 조직 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스타트업과 같은 민첩함을 갖추기 위한 경영 철학으로 단순한 경영 기법이 아닌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행동양식의 총체다. GE는 패스트웍스 개발을 위해 스타트업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린 스타트업’의 저자 에릭 리스를 영입했다. 잘 짜인 과학적 관리 기법이 아닌 벤처인의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것이다.

패스트웍스의 핵심 요소는 의사결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고객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다. GE는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빠른 의사결정을 내린다. 제품 개발 진행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고객의 반응을 모으고, 이를 제품 개발 및 모든 과정에 수시로 반영함으로써 고객 만족도와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규모와 속도를 겸비하면 규모가 크고 속도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물론, 빠르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보다도 경쟁우위를 갖게 된다”며 “GE는 패스트웍스를 통해 규모, 자본, 기술력 등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오늘날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인 신속함 또한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GE에서는 상명하달 방식으로 사업이 결정됐다. 모든 의사결정권이 관리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향식 의사결정은 GE에서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를 낳았다. 하지만 이제 패스트웍스를 도입해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실무진에 결정권이 주어졌다. 신속하고 유연한 사업 운영이 가능해진 것이다.

패스트웍스 도입에 따라 이제는 모든 임직원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직원들은 사업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3명의 소그룹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프로젝트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 다음 과정으로 진행하면서 팀의 규모를 키운다. 이때도 7명 안팎으로 스타트업 수준이다. 구성원은 각 부서의 핵심 인재들이다. GE 내에서 수많은 벤처기업이 운영되는 셈이다.

직원에게 권한이 주어지면 책임이 따른다. 막대한 책임 부여는 직원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하는 것을 주저하게 할 수 있다. GE의 패스트웍스는 직원들의 책임을 덜어주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을 갖고 있다. 패스트웍스에는 정해 놓은 규칙을 통해 사업을 시작할 때 무엇을 질문하고 파악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추진 중인 사업이 더 이상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판단된다면 중단해도 괜찮다고 직원들을 격려한다. 이는 실패가 아니라 잘못된 가설을 하나 더 알아냄으로써 실패 확률을 줄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패스트웍스 프로젝트 400여개 운영

GE는 패스트웍스를 처음 도입했을 때 20~30개의 프로젝트에만 적용했지만 이제는 400여개의 프로젝트를 패스트웍스로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패스트웍스를 보편적인 작업 프로세스로 확대시켜나갈 계획이다. 패스트웍스를 통한 혁신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에 개발한 동급 최고 효율과 출력을 자랑하는 HA 가스터빈 시리즈다. GE는 HA 가스터빈 개발 당시 패스트웍스를 활용해 신제품 개발 주기를 2년 단축했다. 개발 비용도 과거보다 40% 이상 줄였다. 패스트웍스 기법을 적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터빈 공장인 GE의 그린빌 생산시설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등에서 혁신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GE식 속도 경영은 진화하고 있다. GE는 한발 더 나아가 ‘퍼스트빌드’라는 자회사를 2014년 4월 설립했다. 운영방식은 패스트웍스와 유사하지만 아이디어 발굴 단계부터 외부 전문가와 일반인이 참여한다. 이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퍼스트빌드에 갖춰진 설비로 시제품을 만들었다. 시장 반응이 좋은 제품은 바로 GE에서 대규모로 생산한다.

GE는 혁신하는 기업 문화를 위해 ‘GE 빌리프(GE Belief)’라는 새로운 기업 철학도 선보였다. GE 빌리프는 간소화라는 대전제하에 사내 업무 방식과 제도, 직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등을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기업 이념이다. GE 빌리프는 간소화와 신속함, 고객과 밀접하게 일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직원들이 좀 더 간소화된 관리 체계 속에서 신속하게 움직이고,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과 책임감을 부여해 영업 일선 조직을 강화하는 것이다.

GE는 인재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매년 인재 교육을 위해 10억달러를 투자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예산 삭감이 불가피한 상황에도 인재 양성을 위한 예산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plus point

하위 10% 정리하는 상대평가제 30여년 만에 폐지

GE는 2015년 30년 넘게 고수하던 인사 제도인 ‘10% 룰’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10% 룰은 20세기 경영의 귀재로 불린 잭 웰치가 1981년 GE 경영을 맡으면서 도입한 상대평가제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직원들을 상위 20%(두뇌집단)-중간 70%(중간집단)-하위 10%(꼬리집단)로 나눠 임금과 대우를 차별화하는 것이다. 아이디어와 열정이 있는 상위 집단은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육성하지만 하위 10%는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한다는 게 핵심이다. 명확한 신상필벌을 통해 조직에 활력과 긴장을 주는 방식이다. 이 인사시스템은 잭 웰치식 리더십의 대명사로, 지난 30여년간 세계 수많은 기업이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GE는 새로운 시대 흐름에 잭 웰치식 인사평가제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대신 1년에 한 번 하던 인사평가를 연중 상시 평가로 바꾸고, 상대평가제는 개인별 절대평가로 전환했다. 이를 위해 GE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직원들이 수시로 자신의 성과에 대해 상사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변화는 긍정적이다. 제니스 셈퍼 GE 조직문화혁신팀 총괄부사장은 “피드백 시스템으로 바뀌자 자연스럽게 협업이 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게 됐다”면서 “통상 부하 직원에게 명령하고 평가하던 관리자의 의미도 팀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영감을 부여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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