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임직원들이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 GE>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지막한 언덕 위에 숲으로 둘러싸인 건물들이 펼쳐진다. 흔히 ‘크로톤빌(Crotonville) 연수원’으로 불리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리더십개발센터(이하 크로톤빌)’다. GE의 ‘두뇌’이자 ‘혁신의 엔진’으로 불리는 곳이다. 21만3000㎡(6만4000평) 부지에 건물 5개 동으로 이뤄진 크로톤빌은 1956년 개원 후 GE의 기업 문화 변화에 가장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다. 워크아웃, 식스시그마, 린경영 등 GE의 혁신 경영기법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GE의 최고경영자(CEO) 중 95%가 이곳을 거쳐 갔으며, GE는 매년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이곳에 투자하고 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GE가 제조업에서 산업 인터넷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크로톤빌에 있다”고 말했다.


GE 경영진, 인재 양성에 시간 30% 투자

크로톤빌 리더십개발센터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리더십 교육기관이다. GE 황금기를 이끌었던 잭 웰치 전 GE 회장은 GE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재 개발 회사’로 자부했고 그 중심에 크로톤빌이 있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도 바로 크로톤빌이다. GE의 경영진은 직접 인재를 발굴하고 리더로 키우는 데 전체 시간의 30%를 투자한다.

2002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당시 상무보)이 크로톤빌 연수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차세대 CEO 후보군 교육(EDC)’ 과정에 입소했다. GE가 매년 10여 명의 차세대 글로벌 경영 리더를 선발해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부회장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차기 GE의 핵심 경영진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GE 크로톤빌의 출발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랠프 코디너 전 GE 회장은 관리자 교육훈련을 위해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던 호프 경영연구소의 부지를 매입하고,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최초의 기업 사내대학으로 불린, GE 크로톤빌의 시작이다.

크로톤빌이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은 1982년부터다. 잭 웰치 전 회장은 자신이 설정한 GE의 리더십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리더를 길러내는 기틀을 크로톤빌에 구축했다. 그는 1983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연수원에 4600만달러(약 520억원)를 쏟아부었다. 미국 재계에서는 구조조정 때문에 공장을 매각하면서 연수시설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웃음도 나왔다. 하지만 웰치는 단호했다. 그는 막대한 예산안에 사인을 하며 투자에 대한 회수가 얼마나 되겠냐는 항목에 ‘무한(Infinite)’이라고 써 넣었다. 이후 그는 크로톤빌을 GE의 변화를 실행하고 확산하는 주요 도구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이 성공을 거두며 크로톤빌이 GE의 글로벌 리더십 개발의 산실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크로톤빌의 교육과정은 직무 교육, 비즈니스 교육 및 리더십 교육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은 리더십 교육이다. 기간은 1일에서 3주 코스까지, 대상은 사원에서 부사장까지 직급에 맞춰 다양하게 운영된다. 리더십 교육은 크게 필수 리더십 스킬 과정, 초급 리더십 과정, 임원 리더십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임원리더십 과정 참가자는 ‘세션C’로 불리는 엄격하고 철저한 내부 인사평가 절차를 통해서 선택된 직원들에 한정된다. 크로톤빌에서 교육받으면 승진이 보장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임원 리더십 과정의 특징은 GE가 당면한 주요 경영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탐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Action Learning·액션 러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주제에 따라 팀을 구성하고 세계 각국 기업의 경영자를 만나 해결 아이디어를 찾는다. 액션 러닝의 하이라이트는 최고경영진 앞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마지막 단계다. 연수생들이 내놓은 제안을 놓고 현장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경영진들은 이들의 제안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에 옮겨 실행한다. 크로톤빌이 교육을 넘어 철저한 실전 훈련을 통해 글로벌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인 동시에 차세대 리더를 발탁하는 인재 충원 풀인 셈이다.



크로톤빌 연수원. <사진 : GE>

이재용 부회장 등 한국 기업인 200여명 연수

크로톤빌의 또 다른 특징은 GE의 최고 인재들로 구성된 내부 강사진이다. 강의의 절반 정도를 내부 강사진이 맡는다. 특히 GE의 CEO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직원들과의 유대를 강화한다. 잭 웰치 전 회장은 1년에 11차례에 이르는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해 직원들과 소통했다.

크로톤빌은 직원들의 리더십 교육장소이면서 동시에 주요 고객들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GE는 전략적 고객사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연수를 지원한다. GE의 고객 관계 강화 방법 중 하나로 한국 고객사의 경영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2005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KEP(Korea Executive Program)로 불리는 이 연수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200여명의 정부 고위 관료와 한국 기업 고위 경영자가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강신익 전 LG전자 사장, 이종철 전 삼성의료원장, 장원기 삼성전자 사장, 최재원 SK 부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이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GE크로톤빌은 설립된 지 50년이 넘었지만 GE 인재 양성은 지금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GE는 당장의 경제적 성과 못지않게 미래를 이끌어 갈 리더에 대한 투자, 즉 인재를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plus point

GE 벤치마킹한 삼성, 삼성 배우는 GE

인재사관학교로 통하는 크로톤빌의 교육 프로그램은 전 세계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한국 기업들은 GE 핵심인재 교육 모델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한국식 핵심인재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크로톤빌의 체계적인 사내 교육시스템을 적극 벤치마킹해 이를 삼성인력개발원에 적용했다. 삼성인력개발원은 시뮬레이션, 액션 러닝 등 크로톤빌과 유사한 교육 내용을 갖추고 있다. 삼성인력개발원 원장(사장)을 지낸 손욱 전 농심 회장은 “삼성은 크로톤빌의 교육과정을 벤치마킹해 ‘삼성리더십프로그램(SLP)’을 만들어 차세대 리더 양성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손 전 회장은 “SLP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제안으로 크로톤빌의 전문가들과 함께 만든 프로그램으로 삼성이 직면한 각종 이슈의 해결방안을 현장에서 찾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SK그룹이 2006년 만든 ‘EMD(Executive Management Development) 센터’역시 크로톤빌을 벤치마킹한 핵심임원 전문 연수원이다. EMD센터는 미래의 CEO로 육성할 핵심임원을 선발해 개인별 역량 개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벤치마킹 관계가 뒤바뀌고 있다. GE가 한국 기업 배우기에 나선 것이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2014년 ‘GE글로벌리더십 미팅’에서 600여명의 GE 글로벌 임원을 대상으로 ‘삼성의 경쟁력’을 강의했다. 당시 GE는 대규모 기업인 삼성이 빠른 의사결정을 하고, 승부근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삼성의 기업 문화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뒀다.

GE는 2010년에는 제휴관계인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회장을 미국 크로톤빌 리더십개발센터에 초청해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극소수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VVIP 마케팅 기법 등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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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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