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3일 미국 플로리다주 보카러톤에서 열린 ‘2014 GE글로벌리더십 미팅’. 잭 웰치 전 회장 시절부터 지속된 GE의 핵심 행사인 이 미팅은 미국 재계에서 흔히 ‘보카 미팅’으로 불린다. 이날 미팅에서는 GE의 글로벌 임원 650여명이 삼성의 경영 방식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삼성의 경쟁력을 배우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미팅의 주제 중 하나가 ‘스피드 경영’이었는데, 이멜트 회장은 이를 실천하는 기업으로 삼성을 꼽고 특별 강연을 마련한 것이다. 이 강연은 ‘삼성 웨이-글로벌 일류기업 삼성을 만든 이건희 경영학’의 저자인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맡았다. 앞서 2013년 방한한 이멜트 회장이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강연할 때 송 교수가 대담자 역할을 한 것이 인연이 됐다.


“GE 경영진, 삼성의 스피드 경영에 큰 관심”

송 교수는 “삼성전자가 애플의 아이폰에 쇼크를 받고 부랴부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투자한 지 4~5년 만에 애플을 넘어선 사례를 들어 삼성식 스피드 경영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굉장한 응집력을 나타내는 삼성 특유의 문화와 이를 가능케 하는 수직계열화 시스템 등에 대해 GE 임원들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당시 이멜트 회장 등 GE 사장단과 얘기를 나누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멜트 회장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로봇 기술 등을 미국이 주도하면서, 20세기 후반 쇠퇴의 길을 걷던 미국 제조업이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며 “그의 말은 대부분 현실에서 그대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미국이 21세기 제조업을 다시 주도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주저없이 GE의 혁신을 꼽았다. GE는 정보기술(IT)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조업에 접목하고, 스마트공장으로의 변신과 제조·서비스·솔루션을 결합시키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동시에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교수는 국내외에 ‘삼성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논문 역시 삼성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것이다. 또 삼성의 변화와 도약을 다룬 송 교수의 저서 ‘삼성 웨이’는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송재용 교수가 미국 플로리다주 보카러톤에서 열린 2014 GE글로벌리더십 미팅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GE 혁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제조업체에서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통한 산업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시킨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멜트 회장은 2015년 ‘디지털 산업 기업(digital industrial company)’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2020년까지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GE는 2010년부터 항공기 엔진, 발전설비, 의료 장비 등 주력제품에 디지털 센서를 부착하고 빅데이터 등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 고객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GE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멜트 회장이 초기 내부의 반발에도 비즈니스 혁신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이 주효했다. 특히 장기적인 시각에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이멜트 회장의 변혁적 리더십이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그는 구성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조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 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GE의 혁신이 한국 기업에 주는 교훈은.
“자발적·선제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125년 역사의 GE는 2010년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변신을 추진했다. 이에 비해 한국 제조업체들은 4차 산업혁명 대응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너무 더디다.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고도 성장기에 맞춰진 문어발식 사업구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것은 정리하고 핵심 주력 분야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송 교수는 “그동안 한국 기업이 잘해왔는데,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해오던 대로 하면 어느 순간 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패러다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 기업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과거의 성공모델이 앞으로도 유효할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 대기업들도 GE처럼 충분히 변신할 수 있다. 선진 기업에 비해 뒤처져 있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적극적 투자에 나서야 한다. 다만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미흡하기 때문에 글로벌 IT기업과의 협업이나 자체 소프트웨어 역량 확보를 위해 실리콘밸리 등에 연구소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 기업 특유의 돌파력이 필요할 것 같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일류기업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대규모 기업집단으로서 규모의 경제와 시너지를 달성하면서도 의사결정과 실행에서 경쟁사를 능가하는 스피드를 갖췄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의사결정과 실행은 느려지게 마련이다. 2014년 GE가 고민한 것도 스피드를 높이는 방법이었다. 한국 기업에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 빨리’ 문화와 경영자의 리더십 아래 목표가 공유되면 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문화가 있다. 이것이 GE가 벤치마킹하려고 했던 ‘스피드 경영’의 가치였다.”

송 교수는 삼성식 스피드 경영의 이면에는 한국 특유의 비빔밥 문화가 있다고 믿는다. 비빔밥은 서로 이질적인 재료들이 고추장과 함께 절묘하게 섞여서 오묘한 맛을 낸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음식이다. 경영환경이 복잡해지고,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창조적 혁신을 위해서는 융복합화와 통섭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 특유의 비빔밥 문화는 한국식 경영의 원천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삼성이 한국의 문화적 DNA를 바탕으로 글로벌 일류기업이 된 것처럼 다른 한국 기업도 한국식 경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송재용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박사, 컬럼비아대·연세대 교수, 저서 ‘삼성 웨이’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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