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디지털 산업 기업’이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제조 대기업도 생산 시설을 ‘스마트팩토리’로 만드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GE와 한국 기업의 차이는 아주 크다.

황인경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GE는 아날로그로 짜여진 세상을 디지털로 바꾸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영감을 강조하는 리더십을 도입하고, 패스트웍스를 조직 체계로 도입했고, 연간 단위의 인사 평가 제도도 없앴다”고 덧붙였다.


GE가 말하는 ‘디지털 기업’은 무엇인가.
“이멜트 회장이 ‘디지털 제조업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처음엔 ‘LG CNS나 삼성 SDS 같은 IT 기업을 만들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하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GE의 ‘디지털화’는 그렇지 않다. 기업의 모든 활동을 디지털 기반으로 바꿔나가겠다는 뜻이다. 알고리즘을 짜서 모든 작업이 진행되게 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으로 생산 공정을 일원화해 관리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용해 변신하고 있는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어떤 점이 다른가.
“다른 기업은 대부분 ‘스마트팩토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마트팩토리는 기존 공장 자동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GE의 디지털화는 지향점이 다르다. 아날로그로 짜여진 세상을 디지털로 바꾸는 게 목표다.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1995년에 쓴 책 ‘Being Digital(한국어판 제목 ‘디지털이다’)’에서 사람이 디지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매트릭스’ 같은 공상과학(SF) 영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사람이 디지털 기술과 융합될 것이라는 게 네그로폰테의 생각이다. 실제로 20년 만에 그렇게 되고 있다. 지금도 뇌파를 이용해 생각만으로 로봇을 조종해 초콜릿을 집어 먹고, 다른 사람이 어떤 장면을 보고 있는지 뇌파를 파악해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GE의 디지털화는 단순하게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디지털 세계로 옮겨서 컴퓨터가 움직이게 만들고, 사람은 한곳에 앉아서 모든 것을 조작하고, 필요하면 가상 세계에 들어갈 수도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인터페이스도 다르다. 네그로폰테는 ‘물리적 인터페이스’ 대신 ‘말(언어)’로 조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995년 책에서 ‘이 발상은 너무 낭만적이고 공허하며 실현 불가능하다고 비판받기 쉽다’고 썼는데, 20년 만에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가 나왔다. 디지털 기술은 아주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GE는 디지털 산업 기업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물론 GE가 처음부터 디지털화 역량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멜트도 단순히 IT 인재를 열심히 채용했지만, 그래선 디지털 기업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소프트웨어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무엇인지 고민했고, 바꿔 나갔다. 조직 문화 변화는 ‘단순화 문화(culture of simplification)’로 시작했다. 조직 문화가 바뀌려면 리더십과 제도가 모두 바뀌어야 한다. GE는 오늘날 필요한 리더의 자질은 무엇인지 다시 정의했고, 그것에 따라 리더 교육 프로그램을 바꿨다. 예전 GE 리더십은 잭 웰치식 ‘강한 리더십’이었다. 지금은 참여하는 리더십으로 팀워크를 강조하고, 리더의 일방적 지시가 아닌 ‘영감(inspiration)’을 강조한다. 부하 직원이 의견을 내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어떠냐’라고 리더가 제안을 하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 해’가 아니다.”


GE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상으로 매년 열고 있는 산업인터넷 콘퍼런스 ‘마인드+머신’. <사진 : GE>

GE가 리더의 자질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GE의 리더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념무상’이다. 상대에게 너무 몰입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모든 리더들은 자기가 해 온 방식이 있어서 ‘이렇게 해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GE가 얘기하는 리더십은, 각자의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발전시키려면 리더의 고집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수양이 리더십 교육에서 중요한 세션으로 포함돼 있다.”

패스트웍스는 GE에 얼마나 녹아들었나.
“문화가 바뀌려면 조직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도입한 게 ‘패스트웍스(fastworks)’다. 다른 회사에서 하는 ‘태스크포스(TF)’와 무엇이 다르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GE는 패스트웍스를 주된 조직 체계로 운영하려 한다. 대부분의 회사가 수직적인 계층 구조(hierarchy)를 유지한 채 필요할 때 인력을 뽑아 일시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과 다르다. 지금은 리더가 위에서 의사를 결정하는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는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부하 직원의 의견 제시를 늘려가려 한다. 패스트웍스에서 또 중요한 것은 제품을 ‘대강’ 만들어 보는 것이다. ‘이 정도면 쓸 만하겠다’ 싶으면 빨리 출시해서 고객 반응을 보고 추후에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업무 방식이다.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GE 같은 거대 조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소규모 스타트업이다. 미국은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제품을 많이 내놓는다. 그래서 작은 스타트업처럼 내부 조직을 운영하고, 업무 흐름을 빠르게 하자고 해서 만든 것이 패스트웍스다.”

GE는 인사 제도도 크게 바꾸었다.
“작은 조직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제품 개발 주기가 짧아지기도, 길어지기도 하다. 연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평가하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이멜트가 ‘바보 같은 짓’이라고까지 했다. 그래서 연간 단위 인사 평가 제도를 없앴다.”

다른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디지털 전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디지털화의 핵심은 제품이다. 디지털 기술로 제품을 디지털화하고,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보잉 같은 기업도 GE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센서를 개발해 제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농기계 기업 존디어도 비슷하게 물리적인 장치로 만들던 제품을 소프트웨어로 바꾸고 있다. 테슬라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업그레이드처럼 판매된 자동차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서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의 제조 대기업은 GE의 변신에서 어떤 점을 배워야 할까.
“한국은 인재 부족이 심각한 문제다. 삼성의 경우에도 그룹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실력을 자체 평가한 결과 구글 수준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는 6%밖에 안 된다. 최근엔 실리콘밸리가 국내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은 IT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이 낮다.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낯선 영역의 기업을 인수해 관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AT&T의 방식을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AT&T는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부 인재를 교육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를 제대로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려면, 그 일을 할 사람부터 키워야 한다. 물론 소프트웨어 인재를 제대로 대우해주고,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 황인경
고려대 무역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 석사, 미국 워싱턴대 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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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 지능형 생산 공장. 공장 내 설비와 기계에 사물인터넷(IoT)이 설치돼 공정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데이터에 기반해 의사 결정을 내려 생산성을 높인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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