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손정의 소프트뱅크 창업자는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어야 한다. 후계자로 유력했던 니케시 아로라 전 부사장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퇴진해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손 사장은 여전히 현업에서 소프트뱅크를 재탄생시키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를 거대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손 사장은 작년 6월 22일 주주총회에서 은퇴 의사를 번복했다. 그는 “해야 할 일이 좀 더 남아 있다”며 새로운 사업에 대해 의욕을 보였다. 앞서 그는 2014년 “60세 생일(2017년 8월 11일)을 전후해 일선에서 퇴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인도 출신 아로라 전 부사장을 구글에서 영입했다.

은퇴할 생각을 접은 손 사장은 바쁘게 움직인다. 은퇴를 번복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작년 7월 18일, 영국 반도체 회사 ARM홀딩스 인수를 발표했다.


‘60세 은퇴’ 번복한 후 초대형 투자 잇달아 결정

이어 10월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공동으로 1000억달러의 펀드 조성을 발표했다. 12월엔 인도의 IT 산업과 에너지(태양광) 산업에 10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으로 날아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미국 내 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일자리 5만 개 창출을 약속했다. 또 근거리 인공위성 제조 스타트업 원웹에 투자했다. 올해 5월엔 930억달러(약 104조원) 규모의 ‘비전펀드’를 조성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 달 뒤 열린 주주총회에서 “힘이 넘쳐서 차마 은퇴할 수 없다”고 했다.

손 사장은 이처럼 강력한 투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 자신감의 근저엔 소프트뱅크가 지금까지 달성한 경이적인 투자 수익률이 있다. 소프트뱅크는 1996년 미국의 야후와 합작해 일본에 ‘야후 재팬’을 설립했다. 미국에서 야후의 지위는 추락했지만, 일본에선 현재도 최대 포털사이트이자 3위의 전자상거래 업체다. 소프트뱅크는 단 680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올해 5월 야후재팬의 가치는 12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내부수익률이 연 81%나 된다. 2000년 손 사장은 마윈(馬雲) 회장과 5분간 이야기를 나눈 후 알리바바 투자를 결정했고, 알리바바는 소프트뱅크에 연 65%라는 높은 내부수익률을 안겨줬다. 소프트뱅크는 640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현재 가치는 900억달러나 된다. 보다폰재팬을 인수한 일본 통신 사업은 40%, 스프린트를 인수한 미국 통신 사업은 48%의 내부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클래시오브클랜’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모바일 게임 업체 ‘수퍼셀’은 투자금 회수까지 마쳤다. 소프트뱅크는 이 회사를 2013년 10월 인수했고, 총투자금은 30억달러였다. 그리고 2016년 7월 중국 텐센트에 80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3년 남짓 되는 기간에 연 97%의 내부수익률을 기록했다. 해마다 투자 원금에 가까운 수익을 낸 것이다.


작년 당기 순이익 14조원 돌파

투자 성공 덕분에 소프트뱅크는 지난해(2016년 4월~2017년 3월) 매출액 8조9010억엔(약 89조100억원), 영업이익 1조260억엔, 당기순이익 1조4263억엔(약 14조2630억원)의 우수한 실적을 거뒀다. 10년 전보다 매출액은 250%, 영업이익은 279%, 순이익은 4852% 증가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도요타는 연간 순이익이 1조엔을 돌파하는데 67년이 걸렸지만, 소프트뱅크는 그 절반 수준인 36년만에 달성했다.

소프트뱅크는 창업 초창기에 소프트웨어 유통업과 컴퓨터·소프트웨어 전문 잡지를 만들었다. 이후 인수·합병(M&A)에 뛰어들어 주력 사업을 인터넷 포털사이트, 유선 초고속 인터넷,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으로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소프트뱅크를 만드는 핵심 투자는 ARM홀딩스다. 손 사장은 “언젠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서 인수한 회사 가운데 정말 핵심을 꼽으라면, 그것은 ARM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가 변화를 거듭하는 것은 ‘300년 존속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다. 손 사장은 소프트뱅크 30년째를 맞은 2010년 6월 주주총회에서 300년 후의 기술과 라이프 스타일을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컴퓨터가 인간 뇌세포의 기능을 넘어서고 로봇이 자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컴퓨터를 사람이 제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 사장은 “나는 사업가다. 공상과학영화 감독이 아니다”라면서 소프트뱅크가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가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역사적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지원해 주는 회사의 시가총액이 제일 컸다”면서 30년 후 소프트뱅크가 시가총액 200조엔(11월 2일 기준 시가총액 11조2377억엔) 규모의 회사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30년을 넘어 300년 이상 살아남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손정의가 발명한 것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반도체 칩이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가 아닌 30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발명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손 사장이 930억달러를 모아 비전펀드를 만든 것도 300년간 존속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전략이다. 비전펀드의 투자 대상 목록엔 반도체, 차량 공유, 의료, 농업 등 통일성 없어 보이는 다양한 회사가 올라 있다. 이런 회사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시대가 변화하면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있으면 300년이라고 하는 긴 시간 동안 번영하는 기업 그룹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 집중 투자

비전펀드엔 손 사장의 독특한 경영 철학이 담겼다. 그는 올해 8월 비전펀드에 대해 ‘동지적 결합’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정보 혁명’이라고 하는 뜻과 비전을 공유하는 기업가 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전펀드는 정보 혁명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전략적 집단이다”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는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스마트로봇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분야의 기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투자한 기업들을 연결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측면이 많다. 대표적인 회사가 ARM홀딩스와 비전펀드가 지분 4.9%를 확보한 엔비디아다. 정희석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AI, IoT 산업의 성장이 가속화되는 국면에서 사업의 방향성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기업 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며 “소프트뱅크·엔비디아·ARM홀딩스를 중심으로 알리바바·폭스콘·스프린트·퀄컴·테슬라 등이 협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 사장은 930억달러의 ‘비전펀드 1호’에서 멈추지 않고 2~3년마다 후속 펀드를 계속 설립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규모를 단번에 확장할 것”이라며 “자금력을 10조엔, 20조엔, 100조엔으로 키우는 구조를 만들어 10년 내 최소한 1000개 기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뱅크의 앞날이 걸린 비전펀드와 과감한 투자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성공을 점치고 있다.

스티븐 카플란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비전펀드의 규모에 대해 “합리적인 수준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규모”라면서도 “굉장히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카르티크 호사나갈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성공하려면 중국에서 알리바바에 투자했던 것과 같은 성과를 인도에서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 사장이 중국에 투자한 방식을 인도에 적용했지만, 인도에서 소프트뱅크의 성과는 중국보다 떨어진다. 올해 들어 투자한 플립카트에서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소프트뱅크에 인도는 값비싼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타룬 칸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소프트뱅크의 투자가 인도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손 사장과 같은 투자자는 인도 스타트업에 꼭 필요하며, 그가 지금까지 투자를 반복하며 쌓은 경험은 인도 전체의 창업 생태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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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수익률(IRR ·internal rate of return) 투자한 금액과 그 투자로 미래에 돌아올 수익금을 비교해 환산한 수익률. 어떤 투자의 내부수익률이 9%라면 투자 원금이 투자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매년 9%의 복리로 계속 늘어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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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 은색 선’ 로고의 유래

소프트뱅크의 로고(왼쪽)와 가이엔타이의 깃발. <사진 :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1981년 9월 ‘일본소프트뱅크’를 설립(1990년 ‘소프트뱅크’로 상호 변경)했다. 처음엔 개인용 컴퓨터(PC)용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사업을 했다. ‘소프트뱅크’라는 이름은 ‘소프트웨어(software)’와 ‘은행(bank)’을 합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소프트웨어의 은행’이란 뜻을 갖고 있다. 정보화 시대의 사회 기반시설(인프라)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아 소프트웨어에 ‘뱅크’라는 단어를 붙였다.

소프트뱅크의 로고는 두 개의 은색 선으로 구성돼 있다. 손 사장이 존경하는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67)가 만든 ‘가이엔타이(海援隊)’의 깃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카모토 료마는 에도 막부 말기의 인물로, 정치가이자 기업가다. 그는 다른 무사들과 달리 서양을 배척하지 않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사설 해군이면서 무역회사라고도 할 수 있는 ‘가이엔타이’를 만들어 무역과 전투를 함께했다. 소프트뱅크는 “사카모토 료마는 자유로운 발상과 대담한 실행력으로 일본을 근대 국가로 이끌었다”면서 “소프트뱅크는 ‘동지의 배’이고, 돛대에 나부끼는 것은 21세기의 가이엔타이 깃발이다”라고 설명한다.

‘소프트뱅크’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는 2개가 있다. 손정의가 사장을 맡은 회사는 순수 지주회사인 ‘소프트뱅크그룹(약칭 SBG)’이고, 일본 국내에서 통신 사업을 하는 회사는 ‘소프트뱅크(SBKK)’다. SBG는 SBKK의 지분 43%를 갖고 있는 모회사다. SBG는 올해 3월 말 현재 761개의 자회사와 130개의 관련 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plus point

손정의 사장의 역사 공부
‘300년 기업’ 실현 위해 1000년 번영한 로마제국 배워

손덕호 기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동상(왼쪽 사진)과 오다 노부나가의 초상화. <사진 : 위키피디아>

손정의 사장은 소프트뱅크를 ‘300년 존속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300년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손 사장은 역사를 되돌아보고 힌트를 얻었다. 로마제국이 1000년 이상 번영한 이유를 찾고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기업 통치 방법을 모색했다. 일본 전국시대에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사례에서 ‘독점’의 유효성을 인식했다.

300년 대계를 세우는 역할은 2000년대 초 소프트뱅크 사장실 실장으로 손 사장을 보좌한 미키 다케노부(三木雄信)가 맡았다.

손 사장은 2000년대 초반 미키 전 실장에게 “2300년까지 300년간 매출액 목표를 작성해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미키 전 실장은 3세기의 목표를 세우기 전에 세계 각국의 경제 성장 궤적을 조사하고 미래 시장 규모 등을 예측했다. 그런 다음 일정 점유율을 소프트웨어가 장악한다고 가정해 여러 시나리오를 나눠서 ‘복리(複利)’로 성장 곡선을 그렸다.

완성한 그래프를 인쇄해 연결하니 길이가 5m에 달했다. 손 사장은 돌돌 말린 이 긴 그래프를 펼친 뒤 사색에 잠겼다. 일본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이 모습을 본 미키 전 실장이 “손 사장은 진심으로 300년간 존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려 한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미키 전 실장이 소프트뱅크에 입사할 때 손 사장이 던졌던 질문도 ‘300년 존속 기업의 조건’이었다. 그는 이 질문에 ‘다양성’이라는 한 단어로 답했고, 그 즉시 입사가 결정됐다.

손 사장은 300년 존속 기업을 만들려면 300년 이상 존속한 과거 제국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프트뱅크의 후계자 양성 기관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에서도 카이사르나 칭기즈칸, 나폴레옹처럼 대제국을 건설한 사람을 탐구하고 ‘300년 기업’이 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승리 비결 연구

제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미키 전 실장에 이어 2005년부터 8년간 사장실 실장을 역임한 시마 사토시(嶋聰)이다. 손 사장은 그에게 로마 제국의 연구를 지시했다. 1000년 넘게 번영한 제국의 역사에서 손 사장이 배우려 한 것은 세계적 기업이 되기 위한 지혜와 전술이다.

소프트뱅크는 과거 제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종교나 언어를 국가가 탄압하면 민중 저항이 일어나 통치가 어려워진다고 봤다. 이런 논리를 인수·합병(M&A)한 기업에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손정의는 인수한 기업과 자본의 지배가 아닌 ‘동지적 결합’을 지향한다.

가마야 다카유키(鎌谷賢之) 전 소프트뱅크 사장실 경영전략그룹 그룹매니저는 손 사장으로부터 오다 노부나가에 대해 연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가 전국시대 100여년의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라쿠이치 라쿠자(樂市樂座)’와 같은 규제 완화 정책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킨 덕분이다. 자유시장에서 새로운 상인과 기술자들이 등장하도록 장려했다. 또 다른 영주가 다스리는 지역으로 이동할 때 매기던 세금을 철폐해 사람과 물자의 왕래를 활성화시켰다.

손 사장은 전투에 더 관심을 가졌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와 싸운 나가시노(長篠) 전투에서 승리했다. 다케다의 강력한 기마대를 오다의 화승총(조총) 부대가 이긴 역사적인 전투다. 가마야 전 매니저는 오다 노부나가가 당시 일본에 있던 화승총을 끌어 모아 일시적으로 ‘최신 병기의 독점 상태’를 만들어 낸 것이 승리 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손 사장은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화승총’이라는 최신 기술에 빨리 주목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다이아몬드’는 “손 사장이 다가올 사물인터넷(IoT) 혁명에 ARM이 최신 병기에 해당하고, 시장의 룰을 지배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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