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지난 7월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7’ 행사에서 비전펀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면에 ‘정보 혁명의 동지적 결합 그룹으로’라고 적혀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지난 5월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인생은 단 한 번뿐이므로 통 크게 생각하고 싶다”면서 “작은 베팅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꿈을 실현시켜줄 무기가 올해 5월 22일 930억달러(약 104조1600억 원·10조엔) 규모로 출범한 ‘비전펀드’다.

비전펀드의 규모는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투자 판도를 바꿀 만한 큰돈이다. 미국의 시장조사회사 CB인사이츠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금액은 총 1077억달러(약 120조원)다. 비전펀드가 모은 자금이 세계 전체 1년 투자 금액과 비슷한 규모라는 뜻이다.

100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손 사장의 시선은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는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0조엔의 비전펀드 1호는 부족하다”며 “펀드 규모를 100조엔까지 불려 10년 후에는 적어도 1000개 기업에 투자금이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사장이 비전펀드로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에 걸친 IT 벨트 조성이다. 그는 “기업이나 기술이 영구히 존속할 수는 없다. 소프트뱅크는 진화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자유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며 “서로 다른 특징과 강점을 가진 기업이 서로를 자극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비전펀드에서 투자한 기업과는 ‘동지적 결합’을 형성하려고 한다. 손 사장은 지난 8월 소프트뱅크 결산 회견에서 비전펀드에 대해 “중요한 것은 ‘정보 혁명’이라는 뜻과 비전을 공유하는 기업가 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동지적 결합은 무리 짓는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이다. 비전펀드는 정보 혁명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전략적 집단이다”라고 했다.


“10년간 1000개 기업에 투자”

현재까지 비전펀드가 투자한 ‘동지’ 사업 분야는 농업·바이오·전자상거래·가상현실 등 다양하다. 공통점은 미래 먹거리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비전펀드가 2억달러를 투자한 ‘플렌티’는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는 농업 스타트업이다. 건물 내부 벽면과 기둥에서 상추 등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수직 농장’ 기술을 갖고 있다. 같은 면적의 농지보다 생산량이 350배 많다. 물 소비량을 99% 줄이면서 고품질 유기농 작물을 대량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1억1400만달러를 투자받은 ‘브레인코프’는 짐을 나르거나 청소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다. 물류 창고나 쇼핑센터에서 사람과 장애물을 피하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 ‘브레인OS’라는 로봇을 움직이는 운영체제(OS)를 독자 개발했다.

혈액 검사로 암을 진단하는 기술 ‘가든트360’을 가진 가든트헬스는 3억50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혈액에 돌아다니는 암 세포를 발견해 분석하는 기술이다. 현재 쓰이는 암 검사보다 훨씬 간단하고 빠르게 진단할 수 있다. 비전펀드의 투자금은 5년간 100만 명에게 테스트해 기술 정확도를 높이는 데 쓰인다.

이 밖에 가상현실(VR) 기술을 가진 임프로버블은 5억달러, 차량 주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인공지능(AI) 분석으로 운전자와 도로 상황을 판단하는 기술을 가진 나우토는 1억59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미국의 사무실 공유 업체 ‘위워크’는 비전펀드에서 30억달러,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합쳐 총 44억달러를 투자받았다. 인도 온라인 쇼핑몰 가운데 점유율 1위인 ‘플립카트’도 25억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투자한 우버에 비전펀드가 추가로 100억달러를 출자할 것이라는 설도 나온다.

‘비전펀드 1호’엔 소프트뱅크가 280억달러를 출자했다. 그중 일부는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인수한 ARM홀딩스의 지분 25%(80억달러 상당)를 넘기는 형태로 채웠다. 나머지 650억달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공공투자기금·PIF) 450억달러, 아랍에미리트(UAE)의 투자회사(무바달라) 150억달러, 애플 10억달러, 퀄컴·폭스콘·샤프는 구체적인 금액을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 기업이 합쳐서 총 40억달러를 출자했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농업 스타트업 플렌티의 수직 농장. <사진 : 플렌티>

소프트뱅크의 투자 자율성 보장하는 구조

그런데 비전펀드는 일반적인 펀드와 달리 상당한 금액이 채권 형태로 조성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80억달러, 아랍에미리트는 90억달러를 채권으로 출자했다. 애플과 퀄컴 등의 기업도 역시 일부는 채권으로 출자했다. 소프트뱅크가 금액을 차입하는 형태다. 게다가 비전펀드는 12년의 펀드 운용 기간에 채권에 대해서 연이율 7%라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전펀드가 특이한 자본 구조를 갖고 있어 업계에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펌 심슨 대처의 제이슨 글로버 파트너는 “25년 동안 펀드 설립 자문 업무를 했지만 이런 구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FT는 비전펀드가 이처럼 특이한 자본 구조를 택한 것은 손 사장이 소프트뱅크의 재무구조에 부담을 추가하지 않고 대형 투자에 나서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비전펀드의 자본 구조가 소프트뱅크에 자율적인 투자 의사 결정을 보장하는 효과도 있다.

정희석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총 930억달러의 비전펀드에서 소프트뱅크는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부담했다. 비전펀드를 하고 싶은 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에서 투자금을 전부 주식 형태로 출자받았다면, 비전펀드에 소프트뱅크의 지분은 30%밖에 되지 않아 연결 자회사로 편입하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금액이 채권 형식이기 때문에, 이 구조로는 소프트뱅크가 비전펀드 주식의 50% 이상을 보유할 수 있다. 따라서 소프트뱅크에 투자 결정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라고 했다.

그는 다만 채권 투자자에게 높은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소프트뱅크가 다소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봤다. 투자 즉시 수익이 창출되고, 주가가 오르는 기업이 투자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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