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에는 전통적으로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관리 경영의 대가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한 접근 방식은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온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창업자 정신과 자본 주도의 미국, 13억 인구의 거대 시장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에서 기업들이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동안 한때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던 일본 기술 기업들은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트뱅크의 급성장은 전 세계 일본 기업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미국 최고의 일본 기업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윌리엄 쓰쓰이 헨드릭스 칼리지 총장은 “이전의 일본 기업들과 달리 혁신 주도형 산업 분야를 과감하게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며 손정의 사장이 한국계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면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것과 미국 유학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혁신 방식을 일찌감치 경험한 것을 핵심적인 차별화 요인으로 봤다.

일본계인 쓰쓰이 총장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 기업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다. 2014년부터 미국 아칸소주의 신흥 리버럴 아츠 칼리지(학부 중심 대학) 명문인 헨드릭스 칼리지의 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쓰쓰이 총장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에도 소프트뱅크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일본의 다른 주요 기업들이 지나치게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혁신 주도형 산업 분야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특히 무선통신과 전자상거래, 금융 등의 분야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치고 나간 것이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이들 분야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선점자에게 돌아갈 몫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도유망한 사업에 차례로 진출하며 사업을 다각화했고, 기존 사업 영역에서도 혁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오늘날의 소프트뱅크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기존 일본 정보기술(IT) 강자와 차이점은.
“소프트뱅크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일본 기업을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소니가 세계적인 IT 기업이긴 했지만, 소프트뱅크처럼 민첩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했다. 유망 분야를 찾아 꾸준히 투자하는 노력도 부족했다. 소프트뱅크는 기술 기업에 머물지 않고 벤처 투자사나 투자은행 같은 형태로 유연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또한 하드웨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의 기존 IT 기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그런 특징들이 손정의 사장의 리더십과도 관련이 있을까.
“손 사장의 창업자 정신과 과감한 경영 스타일은 일정 부분 그의 출생 배경과 관련이 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일본 기업 문화에서 한국계인 그는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자연히 성공을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UC버클리에서 유학하면서 일찍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도 그가 일본의 다른 경영자들과 확실한 선을 그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소프트뱅크의 기업 문화는 일본 기업보다 미국 기업의 특징에 더 가깝다.”

엄청난 투자 규모 때문에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소프트뱅크의 부채 비율은 일본에서도 높은 편이다. 대규모 투자가 결실을 보게 되면 투자 리스크가 감소할 것이다. 손 사장이 투자한 기업 중에는 스프린트와 우버처럼 의도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설령 큰 손실을 본다 해도 소프트뱅크와 손 사장의 공격적인 전략에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국제적인 금융 협력사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손 사장의 능력 덕분이다.”

소프트뱅크의 부채 규모는 지난 8월 기준 1300억달러(약 144조6600억원)에 이른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부채가 과다하고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이유로 소프트뱅크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에 해당하는 ‘BB+’ 등급으로 평가했다.

손 사장의 투자 원칙은 뭘까.
“나도 궁금하다. 알았다면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언론계와 IT 업계의 전문가 중에 손 사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에 깜짝 놀라는 이들이 많다. 다른 일본 경영자들과 달리 사고가 유연해 틀에 박힌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 성공적인 투자 비결인 것 같긴 하다.”

한때 사업에 실패했던 손 사장이 재기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일본은 실패한 경영자에게 관대한 나라가 아니다. 경영 실패나 각종 스캔들로 신망을 잃은 경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점에서 손 사장의 부활은 이전까지 일본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변화이자 성과다. 이 또한 손 사장의 성장 환경 및 유학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일본과 달리 미국에서는 창업자의 실패를 이후 더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한 경험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의 성장이 일본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됐나.
“소프트뱅크의 성공은 일본에서 창업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점차 (창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끌어안게 됐을 뿐 아니라 파트너십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국제 감각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됐다. 일본처럼 인구가 감소하면서 저성장 기조를 이어 가고 있는 시장에서도 혁신 노력과 과감한 투자로 엄청난 부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 윌리엄 쓰쓰이(William Tsutsui)
미국 하버드대 졸업, 프린스턴대 역사학 박사, 일본 히토쓰바시대 방문교수, 캔자스대 동아시아연구소장


keyword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주창한 개념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편리한 저가 제품을 개발해 밑바닥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란 의미였지만 이후 의미가 확장되면서 ‘해당 산업의 핵심 기술을 통해 비싸고 복잡한 기술을 싸고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용성 차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