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있는 글로벌 IT기업의 본사 사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애플, 구글, 엔비디아, 인텔.

스트라이프(Stripe)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온라인 간편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데, 형제 기업가인 패트릭 콜리슨(Patrick Collison·28)과 존 콜리슨(John Collison·26)이 공동 창업했다. 아일랜드 시골 출신인 패트릭과 존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와 인공지능(AI) 시스템에 재능을 갖고 있었고, 각각 미 최고 명문대인 MIT와 하버드대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났다.


실리콘밸리 경쟁력의 핵심은 ‘사람’

두 형제는 2009년 온라인 결제 대표주자인 ‘페이팔’ 본사 인근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사무실을 차린 뒤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하면 간편하게 신용카드·은행 결제가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페이팔은 계정을 생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개발자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시스템 연동이 가능한데, 이런 약점을 스트라이프가 파고든 것이다. 스트라이프는 애플·페이스북·타깃·메이시 등을 고객사로 유치했다.

이 회사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의 투자를 받았으며,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자인 마이클 모리츠 세콰이어캐피털 회장의 투자도 받았다. 스트라이프의 기업가치는 92억달러(10조3000억원)에 달하며, 두 창업자는 20대의 나이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모리츠 회장은 “아일랜드 시골 마을 출신의 패트릭과 존은 실리콘밸리의 이점을 활용해 인터넷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스트라이프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 근처에 파일 공유 서비스 드롭박스가 사용했던 사무실로 본사를 옮겼다. 3년 전 80명에 불과하던 직원수는 현재 750명으로 늘었다. 스트라이프 최고경영자(CEO)인 패트릭 콜리슨은 이제 이스라엘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자자를 만나고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최고의 인재와 세계적 연구 역량의 대학, 세계 최대 규모의 벤처캐피털(VC) 투자가 한데 어우러져 세계 최고의 혁신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했다.

클러스터는 1990년대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정립한 개념으로 산업집적지를 의미한다. 클러스터는 단순히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 대학, 지원기관이 한 지역에 모여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공간이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구글(인터넷), 애플(스마트폰), 페이스북(소셜네트워킹서비스), 인텔(반도체), 우버(차량공유 서비스) 등 각 분야 글로벌 1등 기업들은 미래 경쟁자인 스타트업과 때론 경쟁하면서, 때론 협력하면서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실리콘밸리’ 따라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혁신 기업의 요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실리콘밸리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비결로 ‘인재’를 꼽는다.


학생들에게 창업 권하는 대학

실리콘밸리에는 클러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탠퍼드대, UC버클리 같은 명문대가 있다. 이들 대학은 ‘미래의 스티브 잡스’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며, 창업을 위한 기업가정신을 독려한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미국의 다른 대학과 달리 스탠퍼드대, UC버클리는 교수·학생의 창업을 권장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의 근간인 스탠퍼드대 동문들이 세운 기업수만 3만9900개(2011년까지 누적 기준)이며, 2조7000억달러(3024조원)의 매출을 창출했다.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대, UC버클리에서 배출되는 인재와 함께 전 세계의 우수 두뇌가 활동하는 무대다. 테크 벤처캐피털리스트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전 세계 인구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5%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의 혁신 아이디어가 한곳에 모인다면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연한 이민 정책은 IT 산업 비중이 절대적인 실리콘밸리에 인재들이 몰리는 역할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해외 국적의 근로자는 미국 본토 출신보다 급여가 낮아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측면에서 유리하다”면서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H-1B(전문직취업) 시스템’과 같은 비자 프로그램을 잘 활용한다”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에선 실력만 있으면 국적·인종 차별 없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아메리칸 드림’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실제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의 공동 창업자, CEO 중 상당수는 이민자의 피가 흐른다.

일론 머스크(테슬라 창업자·남아프리카공화국),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 창업자·러시아), 순다르 피차이(구글 CEO·인도), 피에르 오미디아(이베이 창업자·프랑스), 마이크 크리거(인스타그램 공동 창업자·브라질), 얀 쿰(왓츠앱 공동 창업자·우크라이나), 다라 코스로샤히(우버 CEO·이란) 등은 모두 이민자이거나 이민자 자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민자 출신은 세상을 바꿀 만한 아이디어로 자신이 속한 기업을 ‘게임 체인저’로 변신시켰다.

일례로 구글의 핵심 사업인 광고는 이란·캐나다 이민자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마이크 크리거 인스타그램 공동 창업자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 출신인데, 앱에서 텍스트를 배제한 이미지 기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 대박을 쳤다. 인스타그램은 올 4월 전 세계 가입자 수 7억명을 돌파했다.

글로벌 스타트업들은 실리콘밸리를 ‘투자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스타트업이 창업단계를 지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투자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리콘밸리에선 연중 스타트업 투자 유치 행사를 통해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을 평가받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세계적으로도 VC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이다. PWC·CB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VC들은 올 1~3분기에 210억8403만달러(23조6000억원)를 실리콘밸리에 투자했다. 미국 전체 VC 투자금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애플·구글·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하며 때론 인수·합병(M&A)에 나서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해본 기업가는 ‘세계에서 기업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라고 말한다. 한국의 에너지 빅데이터 회사인 인코어드 테크놀로지스(이하 인코어드)는 2013년 본사를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했다.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선 한국보다 기업가치를 10배 이상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서 “유망 스타트업에 과감하게 베팅하는 ‘큰손’들이 많아 스타트업이 단시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은 임직원의 사내 창업과 연구를 장려한다. <사진 : 구글>

글로벌 벤처캐피탈이 폭발적 성장 ‘자금줄’

일본·독일 등의 글로벌 기업들도 실리콘밸리에 손을 뻗고 있다. 손정의 사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인코어드의 잠재력을 알아본 후 올 8월 일본에 합작사(인코어드재팬)를 출범시켰다.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들은 ‘혁신 문화’를 갖고 있다. 구글은 임직원에게 각자의 업무에만 머물지 않도록 독려한다. 사내 창업과 연구를 장려하는 것이다. 구글 직원이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일에 근무 시간의 20%를 투입하는 ‘20% 타임제’를 활용해 이메일 서비스 ‘지메일’, 광고 프로그램 ‘애드센스’와 같은 핵심 서비스를 창안했다. 구글은 지난해 ‘에어리어 120’이라는 사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구글 직원이 사업 계획을 제안하면 업무시간에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다.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게임회사 나이앤틱은 이런 혁신적인 제도 덕분에 탄생했다. 나이앤틱은 2010년 구글의 사내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는데, 존 행키 CEO가 지도 사업 경험과 위치기반서비스(LBS), 데이터를 접목해 게임을 개발했다. 나이앤틱은 2015년 독자 사업 진행을 위해 구글에서 독립했는데, 일본 닌텐도와 손잡고 포켓몬 고를 출시해 5억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구글은 자사 콘텐츠 장터인 구글플레이에서 포켓몬 고가 인기를 끌자 상당한 콘텐츠 수익을 얻었다. 올라브 소렌슨 예일대 경영대 교수는 “(글로벌 기업의 주역인) 기업가는 기업가 정신과 혁신의 문화가 자리 잡은 곳에서 등장한다”고 말했다.

사옥에서도 혁신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래픽 칩 회사 엔비디아가 최근 완공한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신사옥은 건축 과정에서 가상현실(VR) 기술을 동원했다.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일조량이 어떻게 바뀌는지 시뮬레이션을 한 뒤 245개의 삼각형 채광창을 배치했다. 건물 중앙에는 회의실, 카페테리아 등을 배치해 직원들이 더 많이 소통해 인공지능 시대를 이끌 아이디어를 결집시킬 수 있게 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문화는 하버드대, 예일대 등 미 동부 명문대 경제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연구주제로 다가오고 있다. NYT는 “학자들이 (실리콘밸리에선) 연구실에서 찾을 수 없는 과제에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8년간 교수로 재직한 피터 콜은 2013년 이베이의 글로벌 전략 디렉터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2015년 말에는 에어비앤비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이직했다.


plus point

실리콘밸리 역사
반도체 기업들 창업하며 ‘실리콘밸리’로 불려
스티브 잡스, HP 설립자 만나 창업 꿈 키워

설성인 조선비즈 위비경영연구소 차장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오른쪽)와 스티브 워즈니악. <사진 : 위키피디아>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는 지리적으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灣) 지역 남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실리콘밸리 일대는 지명을 따라 ‘샌타클래라밸리(Santa Clara Valley)’로 알려졌는데, 캘리포니아가 스페인 식민지였던 시절에 붙여진 이름이다. 스페인 원정대는 1769년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이고를 시작으로 1823년 캘리포니아 북부 소노마까지 통치했다.

샌타클래라밸리의 애칭은 ‘한입 물면 입 안 가득 과즙이 터져 나와 가슴 깊이 행복을 주는 곳(Valley of the Heart’s Delight)’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땅이 비옥하고 1년 내내 태양이 내리쬐는 곳이라 체리·자두·살구 등 과일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창업 신화 출발지는 ‘차고’

1971년 1월 11일 당시 캘리포니아 인기 주간지인 ‘일렉트로닉 뉴스’가 ‘실리콘밸리’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반도체 산업을 다루면서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에 빗대어 실리콘밸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벨 연구소 출신이자 트랜지스터(전자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는 1956년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지금의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에 세웠다.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는 1년 6개월 만에 ‘8인의 배신자’로 불리는 핵심인력 8명이 회사를 나가 창업하면서 몰락했다.

이들 8명은 반도체 회사인 페어차일드를 창업했고, IBM에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납품하면서 트랜지스터 상용화에 성공했다. 페어차일드는 실리콘밸리의 씨앗 역할을 했다. 훗날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이끈 인텔, 내셔널세미컨덕터, AMD 등은 페어차일드 출신이 창업한 회사다.

1939년에 창업한 HP도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HP는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차고에서 창업한 회사인데 실리콘밸리의 전형인 ‘차고 문화’의 원조이기도 하다.

과거 실리콘밸리 지역에선 일반 주택의 차고를 사업장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도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잡스는 13세에 HP 공동창업자인 빌 휴렛에게 전화를 걸어 부품을 얻었다고 한다. 잡스의 동업자 워즈니악도 HP가 꿈의 직장이었다고 할 만큼 HP는 후배 기업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애플이 HP로부터 매입한 주차장 부지에 거대한 우주선 모양의 신사옥을 만든 것은 잡스가 유년기 시절부터 동경했던 HP의 도전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스탠퍼드대 근처에 있는 집을 빌려 그 집 차고에서 구글의 씨앗을 틔웠다.

실리콘밸리 기업인에게 스탠퍼드대는 각별하다.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스탠퍼드대에서 잉태됐다. HP를 비롯해 구글·야후·인스타그램·스냅챗 창업자들이 스탠퍼드대를 거쳐갔다. 1891년 개교한 스탠퍼드대는 릴런드 스탠퍼드 부부가 외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며 세운 학교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학교 주변에서 음주를 금지한 것이 오늘날 명문대로 발전한 원동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캘리포니아 지역 대학 졸업생은 미 동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지만 지금은 동부 지역 대학 졸업생이 실리콘밸리의 유명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이다.

설성인 조선비즈 위비경영연구소 차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