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석 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객원 연구원은 실리콘밸리에서 5년째 거주하며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2012년 다니던 회사에서 해외 연수 기회를 얻어 이곳에 왔고, 이후 가족과 함께 정착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 대해 연구한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써 최근 출간했다.

황 전 연구원은 1960~70년대부터 실리콘밸리에 형성된 ‘반체제 문화’에 주목했다. 우버, 에어비앤비처럼 기존 체제를 허무는 스타트업이 등장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창업으로 성공한 선배가 후배를 지원하고, 그렇게 지원받은 후배가 성공해서 다시 후배가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되는 시스템이 실리콘밸리에 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가 다른 혁신적인 지역을 압도하는 스타트업의 도시가 된 원인은.
“기존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도전하는 문화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의 표현과 자유를 중시하고, 권력의 통제에 저항하는 것이 실리콘밸리 문화다. 1984년 애플의 수퍼볼(미국 프로풋볼리그 챔피언 결정전) 광고만 해도 그렇다. 애플이 거대 IBM에 맞선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빅 브러더와 싸우는 여전사를 등장시켰다. 바로 그 광고가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저항 문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애플은 다윗, IBM을 골리앗으로 만들었다. 우버가 택시 업계와 싸워온 논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택시 업계의 낡은 기득권에 맞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1960~70년대 미국 사회를 흔들었던 카운터컬처(counter culture·반체제 문화)의 중심지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이다.”

실리콘밸리에서 5년간 살고 있다. 몸으로 느낀 그곳만의 특징은.
“이 지역을 움직이는 힘 중 하나가 ‘선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창업해 성공한 사람이 주변에 있으니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 스탠퍼드대 학생과 대화를 나눠 보면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변에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에 합류한 친구도 있고, 창업한 친구도 있다. 한참 전 구글 초창기에 입사해 스톡옵션으로 20대에 거액을 손에 쥔 뒤 창업한 친구도 있다. 스탠퍼드대는 기업을 낳는 대학이자 실리콘밸리의 인재은행, 두뇌은행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대학에서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레슬리 벌린이 쓴 ‘말썽꾼들(Troublemakers)’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스티브 잡스는 힘들 때 선배 기업가인 인텔의 공동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를 찾아갔고,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힘들 때 잡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으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잡스가 혼자 밥을 먹곤 했던 음식점에서 잡스가 앉았던 자리에 혼자 앉아 식사할 만큼 잡스를 멘토로 여겼다. 창업으로 성공한 선배가 후배를 지원하고, 그렇게 지원받은 후배가 성공해서 다시 후배가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되는 시스템이다.”


애플이 1984년 수퍼볼 경기 때 내보낸 광고의 한 장면. <사진 : 유튜브 캡처>

‘실리콘밸리 스토리’ <사진 : 교보문고>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의 최신 트렌드는.
“역시 인공지능(AI)이다. 모든 분야에 AI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을 빼놓을 수 없다. 구글과 기존 자동차 업체는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세우고 이곳 테크 기업과 협업해 자율주행차 개발에 돈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 우버, 리프트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도 마찬가지다. AI에 매달리는 건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각광받는 직업 중 하나가 데이터 과학자다. 수학, 통계 전공자에 대한 구인 수요가 많다.”

실리콘밸리가 젊은 인재들에게 부여하는 기회와 이점은.
“실리콘밸리는 엘리트 집단이 이끌어가는 곳이다. 대학에서 나름 날고 기던 친구들이 실리콘밸리에 오면 ‘능력 있는 사람들 정말 많다’고 한다. 미국 명문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한 인재들이 주눅 들 정도다. 그래서 보고 배울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다 보면 자신의 능력도 그만큼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또 다들 열심히 공부한다. 50대 엔지니어가 20대, 30대와 스터디 모임을 한다.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단점을 꼽는다면.
“최근 창업한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단점은 임금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막 대학을 졸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연봉이 10만달러(약 1억1200만원) 수준이다. 좀 덜 받는 대신 스톡옵션을 많이 받고 스타트업에 가기도 하지만, 요즘은 스타트업도 일정 수준의 연봉을 주지 않으면 사람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게 큰 단점이다. 미국에서도 다른 지역에선 엔지니어들에게 이곳만큼 많은 임금을 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임금을 더 받아도 더 풍족하게 살지 못한다. 월세와 집값이 워낙 비싸다. 연봉 10만달러를 받아도 세금을 제하고 받는 돈은 6만~7만달러 수준이다. 팰로앨토 같은 곳에선 방 두 칸에 화장실 하나 딸린 아파트 월세가 3500달러(약 392만원) 정도다. 차량 유지비도 적지 않다. 대중교통이 열악해서 자동차 없으면 다니기가 쉽지 않다. 결국 월세가 싼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프라이스드 아웃(priced-out)’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났다는 표현이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회사보다 동료를 더 중시한다. 같은 회사 동료는 물론, 회사가 달라도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유대감이 크다. 채용도, 해고도 쉽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는 창업이 활발한 만큼 망하는 회사도 많다. 하지만 해고를 당해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게 다른 지역보다 쉽다. 직장을 옮길 때 큰 힘이 돼 주는 사람들이 함께 일했거나 그간 사귀어 온 동료들이다. 대다수의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내부 추천(referral)을 받은 지원자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물론 애사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도 역시 동료를 더 중시하는 것 같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실리콘밸리를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기존 제도와 규제의 틀에서 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로 보이는 시도도 많이 한다.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이 걸음마를 뗄 정도가 되면 정부 규제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는 스타트업이 협상으로 규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기본적인 체력을 키운 상태다. 한국에선 스타트업에 대해 규제보다는 일정 기간 지켜봐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사회 안전에 위협이 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면, 초기엔 규제보다 방임하는 게 스타트업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규제부터 걱정하면 곤란하다.”


▒ 황장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동아일보 기자,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객원 연구원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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