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의 제2 판교테크노밸리 공사 현장. 정면에 보이는 대형 건물은 지난 9월 완공된 기업지원 허브다. <사진 : 조선일보 DB>

판교테크노밸리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는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건설 현장이 있다. 2019년 1차 준공을 목표로 조성 중인 제2 판교테크노밸리 건설 현장이다. 이미 완공된 시설도 있다. 지난 9월에는 연면적 7만㎡ 규모의 ‘기업지원 허브’가 공사를 마쳤고 정보 보안, 증강현실(AR), 핀테크 등 첨단산업 분야 스타트업들이 입주를 진행 중이다. 이달 말까지 200여 개사가 입주할 예정이다.

제2 판교테크노밸리 조성 사업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5년 ‘7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경기도 판교에 제2 판교테크노밸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사업을 주도하는 주체가 경기도에서 정부로 바뀌었을 뿐, 판교테크노밸리 조성 사업과 판박이였다.

판교테크노밸리는 경기도가 5조2705억원을 투자해 조성했다. 1996년 판교테크노밸리 조성 계획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정부는 부정적이었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수도권 과밀화가 우려된다며 33만㎡ 이상의 단지 조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경기도와 벤처기업협회가 요구한 330만㎡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결국 정부와 경기도는 수차례 입장을 조율한 끝에 자족형 신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66만㎡ 규모로 합의했다. 이후 판교테크노밸리는 2006년 5월 기공식을 거쳐 2011년부터 기업 입주가 시작됐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작년 말 기준으로 입주 기업이 1306개사, 입주 기업 총매출액이 77조4833억원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첨단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입주 기업 중 IT, 바이오 기술(BT), 문화 기술(CT), 나노 기술(NT) 분야 기업 비율이 96%에 달한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스타트업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입주기업 편의성 고려한 단지 설계

전문가들은 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 요인으로 사업을 주도한 경기도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점을 꼽는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실리콘밸리’나 ‘128번 도로(Route 128)’와 달리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산업 클러스터가 아니다. 계획 단계부터 수도권 신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 관계자는 “판교테크노밸리에 앞서 조성한 5개 신도시는 자족 기능이 약해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며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판교테크노밸리는 첨단지식산업단지를 조성해 자족 기능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는 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을 위해 유치 업종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입주 기업의 편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단지를 설계했다. 우선 판교테크노밸리에 첨단산업 분야의 기업만 유치하기 위해 IT와 IT 관련 연구·개발(R&D) 융·복합 분야만 입주 신청을 받았다. 입주 초기인 2012년에는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 중 IT 분야의 비율이 52.2%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79.5%까지 높아졌다.

입주 기업의 편의를 고려한 맞춤형 단지 설계도 판교테크노밸리의 강점이다. 경기도는 단지 설계 과정에서부터 대규모 블록형, 중규모 블록형, 개별 필지 공급 방식을 적절하게 섞어서 기업이 자신들의 규모와 필요에 맞춰서 부지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도로변에는 대규모 블록형 부지를 배치해서 대기업 컨소시엄이 들어오게 했고, 단지 내부에는 개별 기업이나 협회, 조합 단위의 중소 규모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중규모 블록과 개별 필지를 배치했다. 판교테크노밸리를 외부에서 보면 엔씨소프트, NHN엔터테인먼트 같은 대기업 사옥부터 보이는 것이 이런 부지 배치 때문이다.


“임대업 등 땅장사 하는 기업 규제 필요”

이 밖에도 판교테크노밸리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 당시에 입지 요인이 뛰어난 부지를 원가 수준으로 제공했다. 당시 책정된 공급가는 3.3㎡당 평균 952만원으로 강남 테헤란밸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신분당선이 개통하면서 강남 테헤란밸리와의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판교의 매력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판교테크노밸리의 한계점도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산학연 연계 기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판교테크노밸리 인근에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없다 보니 입주 기업들은 자체적인 R&D 역량에만 의존해야 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하버드대 인근에 자리한 미국의 ‘128번 도로(Route 128)’나 스탠퍼드대, UC버클리를 끼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잦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에는 대학·연구소·벤처기업의 산학 R&D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다”며 “실리콘밸리의 생태계를 참조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늘릴 필요도 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임대료가 비싸 초기 스타트업 입주가 쉽지 않다. 판교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성장한 뒤에 판교로 본사를 옮긴 경우다. 판교에 역동적인 IT 산업 생태계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초기 스타트업부터 대·중소기업까지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문화가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 제2 판교테크노밸리를 스타트업 위주로 조성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입주 기업이 당초 목적과 달리 임대업에 나서는 등 땅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 국정감사에 경기도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 중 유치 업종을 위반한 곳이 198개사에 달했다. 이들 기업은 판교테크노밸리의 조성 목적인 IT나 IT 관련 융·복합 R&D 업종이 아니라 건축업, 상조회사, 도매업, 여행업 등을 위해 사무 공간을 사용하다 적발됐다. 사업계획서상 임대율을 초과한 사업자도 16개사에 달했다. 특히 메디포스트컨소시엄, 동화전자산업컨소시엄, 아름방송네트워크, 코리아벤처타운컨소시엄 등은 임대율이 50%가 넘었다.


plus point

판교밸리 성공하자 벤치마킹 잇따라

판교테크노밸리에 이어 제2 판교테크노밸리까지 기업 입주가 시작됐지만, 경기도에서는 테크노밸리 조성 붐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는 IT·BT·CT·NT 산업 육성을 위해 테크노밸리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판교의 성공에 자극받은 여러 지자체가 경기도의 테크노밸리 조성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고양시가 2023년까지 6800억원을 들여 4차 산업혁명 수요에 맞춰 신산업 플랫폼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광명시와 시흥시도 경기도시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테크노밸리 조성을 진행 중이다. 경기도 북부에서도 새로운 테크노밸리 조성 사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2008년 완공된 수원·광교테크노밸리까지 합치면 경기도에만 여섯 개의 테크노밸리가 조성되는 셈이다. 단기간에 여러 산업 클러스터가 만들어지는 만큼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각 클러스터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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