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 직원은 햄버거를 주문하는 고객에게 “큰 사이즈로 드릴까요?”라고 물어본다. 많은 소비자가 “그렇게 달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주어지는 선택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큰 사이즈 버거는 일반 사이즈보다 비싸다. 맥도널드는 ‘큰 사이즈 버거를 드세요’라는 홍보 없이 직원의 한마디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다.

한 보험회사는 자동차 보험 가입자가 작성해야 할 서류 양식을 조금 수정해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도 했다.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간단한 인적 사항과 전년도 주행거리를 기재해야 한다.

주행거리가 길수록 보험료가 높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주행거리를 실제보다 짧게 적었다. 보험회사는 이 서류 맨 아래 있던 서명란을 맨 위에 배치함으로써 실제에 가까운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서명을 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더 정직하게 답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사진 : 조선일보 DB>

전통 경제학 이론의 한계 보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노력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직원 급여가 오를 때 저축 비중도 함께 늘어나도록 하는 ‘점진적 저축 증대 프로그램(Save more tomorrow)’을 도입해 근로자의 저축률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근로자들의 저축률은 3년 후 평균 10%포인트 증가했지만, 참여하지 않은 근로자의 저축률은 제자리 수준이었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며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가정한 전통 경제학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전통 경제학은 직원이 큰 사이즈 버거를 주문하겠느냐고 물어보든 말든 소비자는 현재 자신이 얼마나 배고픈지, 큰 사이즈를 주문했을 때 얼마나 추가 비용이 드는지,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저축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소득 중 얼마를 저축할지는 현재 소득, 저축에 따른 비용과 기대되는 가치를 고려해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통 경제학자도 인간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를 경제학에 반영하지는 못했다. 정제된 수학 공식에 따라 이론을 증명하려면 인간의 특성을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경제학 이론과 현실의 간극은 점점 벌어졌다. 전통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했고 시장 실패가 심각했지만 적절한 처방은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전통 경제학의 기본 전제를 수정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 심리와 행동을 관찰하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행동의 결과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간의 행동과 행동에 따른 영향, 행동을 변화시키는 정책을 주제로 삼는다.


선진국 정부·기업, 행동경제학 적극 수용

인간 합리성에 대한 행동경제학의 전제는 전통 경제학과 다르지만 연구 목적은 같다. 다시 말해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경제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고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인 셈이다.

행동경제학이 등장하며 전통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했던 일부 현상들이 설명됐고, 이 관점에 기반을 둔 결정들이 성과를 냈다. 유명 행동경제학자 도모노 노리오 메이지대 교수는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많은 자료가 수집되고 쌓였다”고 말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옆구리를 쿡 찌르는(넛지·nudge) 정도의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넛지 열풍’을 일으킨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를 선정했다. 2000년대 들어 행동경제학 분야 연구를 통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는 세일러 교수를 비롯해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우드로윌슨스쿨 명예교수(2002년 수상),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2013년) 등 3명이다.

주요 선진국 정부와 기업들 역시 행동경제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백악관 내에 ‘사회적행동과학팀(SBST)’을 조직해 행동경제학 전문가로부터 정책적 조언을 받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도 ‘행동 인사이트팀(BIT)’을 조직해 이들의 연구와 의견을 정책에 반영했다. 유럽연합은 보건·소비자총국을 중심으로 업무에 행동경제학적 접근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호주 생산성위원회·금융규제완화부와 프랑스 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인 전략분석센터는 행동경제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덴마크 ‘아이넛지유’, 노르웨이 ‘그리넛지’ 같은 비영리 연구기관도 활발한 정책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제너럴모터스(GM)·아마존·우버·혼다 등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기아자동차·아모레퍼시픽·LG유플러스 등 국내 기업도 마케팅과 조직 관리에 행동경제학을 도입했다.

행동경제학이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지만 이 분야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인간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기본 전제다 보니 일부 전문가는 행동경제학의 뿌리를 근대 경제학의 틀을 만든 애덤 스미스와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에서 찾기도 한다. 스미스가 ‘국부론’에 앞서 1759년 출판한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경제적 행동은 다양한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며 경제 행위의 심리적 요인을 주장했고, 벤담 역시 경제 선택에서 심리적 요인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 무렵은 경제학이 정치철학이나 심리학과 나뉘기 이전이다. 당시 경제학에서 심리학이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행동경제학이 스미스나 벤담의 계보를 직접 잇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후 경제학자 중에 심리학을 통찰한 경제학자가 적지 않았다. ‘경제학 원리’를 쓴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학은 일종의 심리과학이자 인간과학”이라고 주장했다. 행동경제학적 용어로 꼽히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처음 사용한 인물은 현대 경제학의 거두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하지만 이들 학자가 심리를 언급한 것은 단편적일 뿐이었다.

심리학을 경제학 영역으로 끌어들여 행동경제학의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은 전통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성을 최초로 비판한 허버트 사이먼이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는 인간이 정보와 시간의 제약 때문에 최적 대신 만족스러운 선택을 한다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이론을 제시했다. 사이먼은 “‘경제인(economic man)’은 세상의 모든 상관관계를 무시하기 때문에 가용한 선택지 중 최고의 것을 선택하지만 ‘관리인(administrative man)’은 충분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행동경제학적 개입을 통해 401(k) 연금 가입률을 크게 높였다.

인간 심리 연구를 경제학에 끌어들여

사이먼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본격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사실 그는 심리학자였다. 그는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와 실험을 통해 행동경제학의 이론적 토대가 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발표해 행동경제학이 이론적인 경제학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의 합리적 선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이 이론을 바탕으로 1990~2000년대 행동경제학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후 행동경제학은 많은 학자들이 내놓은 연구 성과에 힘입어 주류 경제학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의 성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비합리적으로 가격이 급등할 수 없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을 뒤엎고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정치·사회·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고, 시장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카너먼 교수의 권유로 행동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인간은 비합리적이지만 예측 가능하게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세일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을 제시했다.

복잡한 수학 공식을 활용해 이론을 증명하는 전통 경제학자와 달리 행동경제학자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비합리성을 연구한다. 또 전통 경제학은 정부의 역할을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경우 개입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정부의 개입 방법 역시 금전적 보상으로 한정하지만,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사익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타인과 협력하고 심지어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을 돕기도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명제를 인정한다. 이때 정부 역할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이 보다 합리적으로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정부 정책이나 기업 마케팅의 효과를 높일 방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지나친 규제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행동경제학의 주된 성과다.



맥도널드 직원은 햄버거를 주문하는 고객에게 “큰 사이즈로 드릴까요?”라고 물어본다. 큰 사이즈 햄버거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사진 : 맥도널드>

비합리성 간파해 행동 변화 유도하는 ‘넛지’

행동경제학이 30여 년에 불과한 짧은 시간에 영역을 넓힌 비결은 인간의 비합리성에서 몇 가지 정형화된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이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그 비합리성이 일정한 경향을 가지고 있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비합리성이 일정한 경향을 가진 덕분에 행동경제학자는 비합리성을 개선할 정책을 제안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인간의 비합리성을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현상을 유지하려는 심리 때문에 인간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TV 볼 때 시청하던 프로그램이 끝나도 계속 같은 채널의 다음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가 많다. 혜택이 더 좋은 신용카드가 나와도 당장 카드를 바꾸는 대신 지금 쓰는 것을 계속 사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행동경제학자는 제도를 설계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자동으로 적용되는 선택 조건(디폴트 옵션)’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국 정부는 인간의 현상 유지 심리를 간파해 401(k) 연금 가입률을 크게 높였다. 이 연금 제도는 세금 공제가 되는 등 근로자에게 유리한 제도인데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 중에 상당수가 가입하지 않았다. 신청서를 내야만 가입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자동 가입 방식을 도입해 가입 거부 서류를 내지 않는 한 자격이 되는 사람은 무조건 연금에 가입되도록 했다. 이후 연금 가입률이 크게 높아졌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마음속에 있는 특정한 숫자를 기준으로 삼는 것도 비합리적인 인간의 특성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자선단체는 기부를 요청할 때 그 선택지를 1만원, 5만원, 10만원이 아니라 10만원, 30만원, 50만원으로 설정해야 한다. 기부자가 이 선택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자주 접하거나 쉽게 기억나는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는 비합리성을 고려하면 정부가 근절하고자 하는 범죄에 대한 캠페인을 반복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더 큰 ‘손실 기피’ 역시 우리 선택을 비합리적으로 만든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행동을 유도하려면 ‘당신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면 연간 20만원을 절약할 것’이라는 문구 대신 ‘당신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지 않으면 연간 20만원을 잃을 것’이라고 말하는 캠페인 효과가 더 강력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plus point

행동경제학의 연구 기반은 ‘실험경제학’


2002년 대니얼 카너먼과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실험경제학자 버넌 스미스. <사진 : 블룸버그>

실험경제학은 행동경제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실험경제학 없이는 행동경제학의 발전을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2년 대니얼 카너먼과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버넌 스미스도 실험경제학자다. 이 때문에 실험경제학을 행동경제학과 동일하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연구 대상인 ‘행동’에 집중하는 행동경제학과 달리 실험경제학은 방법론을 강조한다.

기존 경제학 연구는 인간의 합리성에 근거한 효용함수와 수학적 모형을 활용해 결과를 도출했다. 실증 분석도 이미 확보된 수량 정보를 이용해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 연구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존 방법론을 채택하기 어려웠다. 그 대안이 피실험자의 행동과 반응을 직접 관찰하는 실험 방법론이다.

실험경제학은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데, 학자들은 실험으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설계한다. 피실험자들에게 특정한 질문을 하거나 거래를 시키기도 한다. 실험경제학자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분석하고 현실에 적합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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