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신흥국 경기가 전반적인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주요국 실업률이 하락하며 고용시장도 개선되는 모습이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 10%까지 올랐던 미국 실업률은 최근 4%로 하락해 자연 실업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일본 실업률은 2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독일과 영국 실업률도 3~4%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고용이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도 임금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의 고민이 커지는 이유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모든 것을 결정”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탄탄해진 노동시장이 임금과 물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임금 상승률이 기대보다 낮다”고 진단했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역시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신호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금 인상을 통해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기 위한 경제정책을 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고민 역시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미국과 일본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2% 수준에 그쳐 경제 회복이 임금 인상과 소비 확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각국 중앙은행에 “임금 상승률이 기대 이하인 상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늘어난 고용에 따라 임금이 올라야 저물가 상황이 개선되고, 물가 상승률이 적정 수준을 회복해야 위기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내놓았던 비상 대책을 거둬들일 수 있다. 그런데 ‘임금 상승’이라는 단추가 꿰어지지 않아 ‘세계 경제 성장’의 완전한 모습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IMF를 비롯한 국제 경제기관은 고용 회복에도 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이유가 노동생산성이 저하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주요국 생산성 증가율은 눈에 띄게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미국 시장조사업체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하락했다. 1995~2005년 연평균 2.5% 수준으로 늘어났던 미국 생산성은 2005년부터 10년간 증가율이 1.0%에 미치지 못했고, 같은 기간 독일 생산성 증가율도 1.7%에서 0.7%로 하락했다. 1995~2005년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이 1.8%였던 프랑스는 이후 10년 동안은 0.7%로 낮아졌고 일본 역시 1.8%에서 0.8%로 생산성 증가율이 크게 주저앉았다. 한국의 생산성 증가율도 둔화세가 뚜렷하다.

노동생산성은 일정 기간 생산에 투입된 노동(노동 인구, 근로시간)에 대한 부가가치(산출량)의 비율로, 노동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OECD는 국내총생산(GDP)과 노동 인구, 근로시간을 고려해 노동자 한 명이 한 시간에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지 따져 각국의 생산성을 측정한다. 생산성 증가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같은 일을 해도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론적으로 국가 경제가 성장하려면 노동·자본 같은 자원이 더 많이 투입되거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경제 성장을 목표로 삼은 각국 정부가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노동이라는 자원 투입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고용률이 높아지고 보니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많은 사람이 일해도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기대만큼의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생산성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체된 생산성이 임금 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이것이 곧 장기적인 경제 성장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난해까지 고용 확대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주요국 정부가 정책 목표의 중심을 생산성 향상으로 옮기고 있다. 앞서 각국 정부는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규제를 완화해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청년과 여성이 고용시장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하는 고용 촉진 정책을 펼쳤다. 이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로버트 고든 교수는 “혁신적인 기술이 부족해 생산성이 정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 : 블룸버그>

“새로운 혁신 없어 생산성 정체”

세계적인 생산성 정체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것은 관련 정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오랫동안 생산성을 연구해온 로버트 고든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게임의 규칙을 바꿀 만한 새로운 혁신이 없기 때문에 생산성이 정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기술 낙관론자들은 로봇과 3D 프린팅,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무인자동차 등 기술 혁신이 생산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하지만, 관련 통계를 보면 이런 기술 혁신의 역할이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생산성이 정체된 원인을 세계 경제가 만성적인 수요 부족으로 구조적인 장기 침체에 빠진 것에서 찾고 있고, 존 코크레인 시카고대 교수는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규제라는 괴물이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도한 규제가 투자 확대, 새로운 기술 채택을 통한 혁신을 가로막아 생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지적하듯 생산성은 기술 혁신, 투자, 정부 정책은 물론 시장 개방도, 인적자본 수준, 기업의 경영 관행, 노동시장 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혁신이 많이 이뤄질수록, 시장 개방도가 높을수록 생산성은 향상된다. 교육을 통한 근로자의 숙련도 향상, 안정적인 노사관계도 노동 투입의 효율성을 높인다.

각국은 다양한 정책을 통해 생산성 높이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기업이 설비 교체·확대,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기업의 세(稅) 부담을 낮춰주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35%였던 법인세율을 21%로 낮췄고, 일본은 법인 실효 세율을 현재 3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지멘스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스마트공장을 통해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사진 : 블룸버그>

주요국, 생산성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

산업 현장에 더 많은 혁신 기술이 활용되도록 지원하는 정책 역시 정체된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구책이다. 일본은 2018~2020년을 ‘생산성 혁명 집중 투자 기간’으로 정하고 임금을 올리거나 사물인터넷(IoT), AI 등 첨단기술을 사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에 법인세를 더 인하해주는 한편 서비스 업종에 로봇이 도입되도록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독일은 AI, IoT 기술을 활용해 부품·기계 등 모든 생산장치를 연결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디지털화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인더스트리 4.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공장이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이다. 독일 경제에너지부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독일 내 스마트공장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 등 경제적 효과가 260조~55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유럽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오랫동안 생산성 저하에 시달린 네덜란드는 근로시간 조정법을 제정해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늘리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고,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다. 업무 효율을 높이도록 주 4일 근무도 장려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국가로 꼽히는 룩셈부르크는 근로자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업무에 매달리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본에서도 최근 몇 년간 주 4일제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8%가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 근무를 장려하는 이유는 장시간 근로가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업무에 몰두하면 일과 관련 없는 인터넷 서핑 등에 시간을 낭비하는 이른바 ‘공허 노동(empty labor)’을 없앨 수 있다.

기업들도 생산성에 주목하고 있다. 창의성을 발휘하고 효율적인 업무가 이뤄지도록 조직문화를 바꾸고, 성과보상 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임금을 높이기도 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조직 내 기업가 정신을 높이고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패스트워크’라는 업무 방식을 도입했고, 직원들의 생산성을 낮추는 것으로 드러난 상대평가제도 폐지했다. 월마트는 직원들의 임금 인상을 통해 매장 매출을 크게 높였다.

주요국 정부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한국은 한발 물러나 있는 모양새다. 한국 노동 인구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0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지만 생산성은 27위로 하위 수준이다. 오랫동안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의미다. IMF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로 가장 먼저 생산성 증가세 하락을 꼽으며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생산성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사진 : 블룸버그>

법인세 올리고 근로시간 단축하려는 한국

이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과도한 근로시간을 줄여 효율적인 근무를 유도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 혁신과 투자 확대를 유도할 정책은 부족한 상황에서 근로시간만 단축해서 생산성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선진국이 기업의 투자 확대를 독려하며 법인세율을 낮추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오히려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렸다.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려는 움직임도 부담 요인이다.

주요국이 생산성 향상에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술 활용 수준이 아직 초기 단계다. 빠른 고령화로 노동 공급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생산성마저 둔화되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한국 정부가 생산성을 높이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강도 높은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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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 물가 상승을 발생시키지 않는 완전 고용상태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장기 실업률을 말한다. 1968년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주장했다.

plus point

생산성과 임금의 상관 관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


임금이 상승해야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근로자 임금 수준이 높았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것에 주목한다. <사진 : 위키피디아>

각국 정부가 생산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고용 상황이 회복되고도 임금이 좀처럼 오르지 않은 원인이 생산성 정체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 성장의 핵심은 생산성 향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낮은 생산성이 임금 인상을 지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임금 수준이 낮아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진보 성향의 미국 싱크탱크 루스벨트인스티튜트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는 아직 잠재성장률에 도달하지 않았고, 실업률이 크게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고용 시장은 더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생산성이 낮아 임금이 오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임금이 상승할 만큼 경제와 고용 시장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고용 상황의 회복 즉, 실업률이 자연 실업률 수준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사용자가 필요한 노동자를 구하지 못할 만큼 노동 수요가 더 커져야만 비로소 임금이 인상되고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논리다.

보고서를 작성한 JW 메이슨 뉴욕시립대 존제이칼리지 경제학과 교수는 “생산성이 정체된 이유는 새로운 혁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 부족의 결과”라며 “고용 시장에 존재하는 유휴자원(slack·완전고용과 현재 고용 수준의 차이)이 임금 상승을 짓누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용 시장이 더 단단하게 호전되고 임금이 더 빠른 속도로 인상된다면 기업은 노동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주세페 베를링기에리 ESSEC경영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을 통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을 높이면 생산성이 낮아 높아진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퇴출될 가능성이 크고, 생존 기업들은 높아진 비용을 낮추기 위해 혁신에 나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이 임금을 높이는 것인지, 아니면 높은 임금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그 역사가 길다. 임금을 높여야 생산성도 향상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18세기 산업혁명이 다른 지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는 당시 영국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높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업이 투자와 혁신에 나서면서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들 전문가는 발명가와 기업가들은 필요하면 언제나 혁신을 이뤄낸다면서, 다만 혁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동력 부족과 높은 임금이라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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