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업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법인세를 대폭 낮췄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맥 트럭’ 공장. <사진 : 블룸버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을 석 달 앞두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나아갈 길(The way ahead)’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을 향해 “‘열심히 일하는 미국인은 발전한다’는 미국의 가치를 회복하려면 가장 먼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 인공지능(AI), 로봇 등 엄청난 기술 발전을 목격하고 있지만 우리 삶을 바꾼 이 혁신이 생산성 향상에는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을 떠나는 순간에도 그 중요성을 강조할 정도로 오바마 전 대통령은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봤다. 오바마 행정부가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술 혁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임기 말 발표된 보고서 ‘AI, 자동화 그리고 경제’는 생산성에 대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고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준다. 보고서는 “AI 발전이 건강, 교육,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가져오고, 현재 인류가 겪는 난제를 풀어낼 잠재력이다”고 진단하며 정부 산하에 AI위원회를 설치해 기술 발전을 지원하도록 권고했다. 민간 주도로 AI 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개발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안전과 윤리 관련 지침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고 강조했다. <사진 : 백악관>

오바마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성장 핵심”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생산성 증가율은 여전히 정체 상태다. 갤럽과 미국 경쟁력위원회는 2016년 12월 발표한 ‘회복은 없었다(No recovery)’라는 보고서에서 “실업률이 하락하고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며 “미국 경제는 심각한 생산성 저하에 신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생산성 증가율은 눈에 띄게 둔화됐다. 미국 노동자 한 명이 1시간 동안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2001년 51.49달러에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6년 57.54달러로 10%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2009년 처음 60달러를 넘은 이 지표는 최근까지 62~63달러 수준에서 정체됐다. 생산성 정체는 노동 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고용 상황은 꾸준히 개선됐지만 임금은 좀처럼 인상되지 않은 것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2009년 10% 수준이었던 미국 실업률은 이후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4% 수준을 기록했다. 2017년 11월 미국 실업률은 4.1%로 2000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아, 완전 고용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최근 5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2% 수준에 불과했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생산성 향상 속도의 저하가 실질임금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산성 정체가 장기적인 미국 경제 전망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열 없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려면 생산성과 노동인구가 더 빨리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세제 개편이다. 법인세를 기존 35%에서 21%로 대폭 인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혁신을 끌어내고 생산성을 높이는 열쇠는 기업의 세(稅) 부담을 낮춰 투자를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를 낮추는 동시에 기업들이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미국으로 들여올 때 부과하는 세금도 35%에서 12~14%로 크게 낮췄다. 올해는 1조달러를 들여 도로·교량·항만 인프라를 건설하는 등 투자 확대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철폐 작업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규제 축소 방안을 공개하며 현재 18만5000페이지에 달하는 연방규제법을 1960년 수준인 2만페이지 분량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 법인세 낮춰 투자 확대 유도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경제 정책이 생산성 증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과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등은 최근 공동 발표한 논문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위한 전망’에서 “기업 감세, 인프라 투자를 핵심으로 하는 트럼프노믹스가 제대로 작동하면 미국 경제의 생산성을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학자들은 “지난 10년간 미국 생산성이 크게 저하된 것은 고율의 세금, 노동 시장 규제, 부채에 의존한 공공 지출, 명확한 통화 정책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지적하며 트럼프노믹스 효과가 전체 생산성을 2%가량 높이면서 정부가 목표로 삼은 경제 성장률 3% 달성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지낸 미국 경제학자 아서 래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 개혁이 미국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동안 미국 생산성은 전반적인 하락 추세”였다며 “이는 미국의 높은 법인세와 관련이 있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무역 장벽 강화, 교육 예산 삭감은 생산성 저하시킬 것”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생산성 향상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사진 : 블룸버그>

트럼프 정부가 무역 장벽을 강화하고 교육에 대한 예산을 삭감한 것은 오히려 생산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무역 장벽은 이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주장한 ‘국경세’ 도입은 무산됐지만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수출국의 장려·보조금 지원을 받은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 같은 미국의 수입 규제가 크게 늘었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보호무역주의 득세는 생산성 향상과 세계 경제 잠재성장률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회계연도 예산안에서 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국방비를 증액한 것 역시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반(反)생산성 정책을 비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국방 산업에 대한 투자의 낙수효과(대기업이 성장하면 그 과실이 중소·서민 경제로 파급되는 것)가 얼마나 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 분야에 더 투자해야 하며 연구·개발에 세제 혜택을 줘 기업의 에너지를 자극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IMF는 무역을 강화하는 것이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라고 믿는다”고도 했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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