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 4.0을 활용한 독일의 보쉬 공장에서 노동자가 태블릿PC로 공장 가동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2014년 한 장의 보고서를 냈다.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한 유럽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였는데, 유럽의 저조한 생산성 문제를 꼬집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럽 국가들이 불안정한 금융시스템을 개선하고 고용을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시급한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라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유럽 주요 15개국의 생산성은 1980~95년까지만 해도 미국보다 높았지만, 1995년 이후에는 줄곧 미국보다 낮았다. ITIF는 유럽의 ICT에 대한 투자가 미국보다 적고, 규제와 세제 분야에서도 ICT 산업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 많다고 봤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으로 생산성 높여

ITIF의 지적대로 유럽 전체를 놓고 보면 미국보다 생산성이 낮은 편이다. 탈공업화 현상이 심했던 남유럽 국가들의 생산성이 특히 낮다.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제조업 육성에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모든 유럽 국가의 생산성이 낙제점인 건 아니다. 유럽의 경제 대국 독일은 노동생산성이 2016년 기준 시간당 60달러로 미국(63달러)과 큰 차이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7달러다. 독일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찌감치 ICT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메르켈 정부가 출범한 2005년 이후 제조업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독일 정부는 ‘하이테크 전략’을 수립했고 4년 주기로 기존의 전략을 수정·보완하며 발전시키고 있다.

제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독일의 핵심 전략은 ‘인더스트리 4.0(Industrie 4.0)’이다. 인더스트리 4.0은 기존의 소품종 대량생산 혹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다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인더스트리 4.0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산업 전 분야에 사물인터넷(IoT), 사이버물리시스템(CPS·센서를 이용해 최적화된 상황을 만들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는 시스템), 센서기술 등을 접목해 생산 전 과정을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실시간으로 공장 가동 현황도 파악할 수 있다. 독일 정부의 일차적인 목표는 독일 내 모든 공장을 단일의 가상공장 환경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개별 공장이나 기업 차원의 디지털화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산업 전체를 디지털화해서 비용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원래 독일정보통신산업협회(BITKOM), 기계산업협회(VDMA) 같은 산업협회가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독일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여러 산업협회가 주도할 때는  연구 중심의 프로젝트였다면 정부 주도로 바뀌면서 실용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나서면서 인더스트리 4.0을 활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비트콤이 지난해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정보통신박람회(CeBIT)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인더스트리 4.0을 적용했다’고 답한 기업의 비율이 43%로 2014년(23%)의 두 배에 가까웠다. 마이클 클라인마이어 비트콤 최고경영자(CEO)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인더스트리 4.0은 대부분의 기업에 미래의 일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제조업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독일 정부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로 불리는 중소·중견기업의 디지털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텔슈탄트는 종사자 500명 미만, 매출액 5000만유로 미만의 중간 규모 기업을 지칭한다. 독일 경제의 중추를 맡고 있지만, 대기업에 비해 디지털 전환 속도가 느린 편이다. 독일 상공회의소가 2016년 기업들의 디지털화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원이 499명 이하인 기업의 디지털화 점수는 6점 만점에 3.7점으로 직원이 1000명 이상인 기업의 3.9점보다 낮았다.

독일 정부는 미텔슈탄트의 디지털화를 돕기 위해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과제로 ‘미텔슈탄트 4.0’을 제시했다. 미텔슈탄트의 경영프로세스 표준화를 지원하고, 관련 정보와 노하우를 전수하는 지식센터, 지역사무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OECD는 2015년 발표한 영국 경제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경기가 회복세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이 정체되는 생산퍼즐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며 “영국 경제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정책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英·佛, 스타트업 허브로 거듭나

영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미래 산업전략 보고서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한 응답이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해 초 브렉시트를 공식화하면서 영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산업 전략을 함께 발표했다. 영국의 미래산업전략은 크게 다섯 개의 축으로 이뤄졌다. 우선 산업 혁신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늘린다. 2015년 기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1.7%로 독일(2.9%)이나 미국(2.8%)에 비해 낮았다. 영국 정부는 2027년까지 이 비율을 2.4%로 끌어올리고 장기적으로는 3%까지 높일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의 R&D 지출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고, 혁신 산업에 투자하는 정부 펀드에 7억2500만파운드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이 밖에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인재 육성, 5세대(G) 네트워크 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 중소기업 및 지방 정부의 생산성 향상 지원 등도 영국의 미래산업전략의 주요 내용이다. 그렉 클라그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은 “미래산업전략 보고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영국이 미래 산업의 최전선에 설 수 있도록 도전 과제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스타트업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스타트업이 정체된 산업 생태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영국 정부는 법인등기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서 하루 만에 법인설립을 마칠 수 있게 했고, 자본금 제한도 없앴다. 런던 북동부에 있는 테크시티(Tech City)는 2010년 문을 연 이후 전 세계 핀테크 기업들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미국의 경제매체인 잉크(Inc.)는 런던을 ‘2017년 글로벌 10대 스타트업 허브’ 중 1위에 꼽기도 했다.

프랑스도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7월 파리에 문을 연 ‘스테이션 F’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다. 여의도 공원 15배 크기인 3만4000㎡의 면적에 1000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록산느 바르자 스테이션 F 프로젝트 디렉터는 “스테이션 F는 세계 스타트업 지도에서 프랑스와 유럽을 선두에 두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1인기업 시스템을 도입해 창업자의 사회보장금 부담을 줄여줬고, 첨단기술 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돕는 ‘프렌치 테크’ ‘프렌치 팹’ 같은 산업 정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강도 높은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업이 노동자의 해고와 채용을 쉽게 하는 등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산별노조의 권한을 줄이는 내용의 노동 개혁안을 시행했다. 노동 개혁 이후 프랑스는 실업률이 하락하고,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는 등 경제에 훈풍이 불고 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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