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프랑스인들이 철도를 이용해 룩셈부르크로 이동한다. <사진 : SNCF>

벨기에 남쪽 도시 아를롱에는 이웃 국가 룩셈부르크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아를롱은 룩셈부르크 시내보다 집값이 저렴해 룩셈부르크에서 일자리를 잡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아를롱은 룩셈부르크 국경과 불과 2~3㎞ 떨어져 있는 데다 기차 등 대중교통이 발달해 20~30분 만에 룩셈부르크 시내로 들어갈 수 있다. 많은 직장인이 아침마다 국경을 건너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풍경은 아를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룩셈부르크와 인접한 프랑스 북동부, 독일 남서부 마을에서도 매일 룩셈부르크 일터로 향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룩셈부르크는 인구 58만명에 면적(2586㎢)이 서울의 4배 수준으로 작지만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국가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룩셈부르크 노동자 한 명이 1시간에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81달러로, 60달러 수준인 미국·독일보다 훨씬 높다. OECD 자료를 활용해 매년 글로벌 생산성 순위를 발표하는 글로벌 정보업체 엑스퍼트마켓은 룩셈부르크를 생산성 1위 국가로 꼽았다. 룩셈부르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역시 10만달러로 최고 수준이다.

이 작은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를롱 사례처럼 룩셈부르크 밖에서 거주하면서 일은 룩셈부르크에서 하는 외국인이 대거 유입된 덕분이다. 룩셈부르크는 독일·프랑스·벨기에에 둘러싸여 있어, 이곳으로 일하러 오는 외국인 인력은 18만명에 이른다. 룩셈부르크 인구가 58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외국 인력이 룩셈부르크 경제를 함께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룩셈부르크에서 일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만 인구로는 잡히지 않기 때문에 1명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로 측정되는 생산성 지표를 크게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게다가 독일·프랑스·벨기에는 유럽 경제를 이끄는 대표적인 부국(富國)으로, 유럽 GDP의 50%가 룩셈부르크 1일 생활권인 반경 500㎞ 내에 몰려 있다. 이 시장에 있는 소비자만 5억명이 넘는다.



룩셈부르크에 있는 아마존 유럽 본부. <사진 : ICIJ>

룩셈부르크 생활권에 유럽 GDP 절반 집중

하지만 지리적 요건이 바로 생산성 증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일찌감치 작은 국토 면적과 인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요국에 둘러싸인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교통·물류 인프라를 건설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룩셈부르크공항은 유럽 5대 화물·항공의 허브이고, 유럽 최고 운송사 카고룩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룩셈부르크로 진입하는 도로의 정체 문제가 심각하지만 유럽 전역으로 연결된 철도 덕분에 많은 인구가 룩셈부르크를 편리하게 오간다. 탄탄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많은 기업이 룩셈부르크를 찾는 이유다.

룩셈부르크는 또 주요국과 긴밀한 동맹을 통해 외부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룩셈부르크와 스위스는 같은 지리적 요건을 가지고 있지만, 스위스보다 룩셈부르크의 생산성이 크게 높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위스 역시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국과 인접해있고, 룩셈부르크와 마찬가지로 금융업이 크게 발달해있지만 생산성은 룩셈부르크만큼 높지 않다. 두 국가의 차이는 외교 정책과 관련이 있다. 룩셈부르크는 1952년 유럽연합(EU) 창설의 모태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창립멤버로 참여해 일찌감치 주변국과 긴밀한 동맹을 맺었다. 룩셈부르크는 EU 회원국일 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돼 있다. 반면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EU와 NATO 비회원국으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룩셈부르크가 소국의 한계를 국제적 협력을 통해 극복한 대표 사례로 보고 있다.

룩셈부르크 정부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펴는 정책도 생산성을 높인 비결이다. 아마존·맥도널드·이베이·스카이프·페이팔 등 글로벌 기업은 룩셈부르크에 유럽본부를 두고 있다. 이들 기업은 유럽의 중심인 룩셈부르크의 지리적 이점뿐 아니라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활용하고 있다. 룩셈부르크 법인세는 29%로 겉보기에는 프랑스·벨기에 등 주변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룩셈부르크 정부는 각종 공제를 통해 기업의 실효세율을 큰 폭으로 낮췄다. 특히 룩셈부르크 정부는 기업의 지식재산권 수익에 대해서는 80%까지 세금을 감면해준다. 부가가치세는 15%로 EU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룩셈부르크는 또 금융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금융사 자회사 설립 시 자본금 납입 의무와 양도세를 폐지해 글로벌 금융사를 유치했다.


일과 생활 균형 맞춰 생산성 높여

정부가 기업에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한 덕에 기업들은 임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노사갈등이나 파업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글로벌 기업이 모여드는 이유다. 룩셈부르크 공무원들은 기업 지원을 최우선 목표로 업무에 몰두한다. 룩셈부르크 정부 부처에서 임기가 정해진 장관만 바뀔 뿐, 실무 공무원들은 십년 이상 같은 업무를 담당해 전문성이 높다. 한때 룩셈부르크 정부는 다른 유럽 국가처럼 공무원 순환보직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 기업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제도 도입을 접었다.

유럽 중심에 있는 이 작은 국가는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나치게 긴 근로 시간과 높은 노동강도는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 노동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29시간으로, OECD 평균인 34시간보다 짧다.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단위 시간당 생산성이 높다는 의미다. 룩셈부르크는 근로자들이 업무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해 필요한 만큼 업무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EU 일·건강증진 선언’을 통해 근로자의 건강과 복지 향상을 위해 기업, 직원, 사회가 함께 노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OECD는 룩셈부르크 선언을 언급하며 “국가 생산성은 일과 가족, 개인 생활을 성공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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