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왼쪽에서 두 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2016년 체코 국빈 방문 중 프라하의 대통령 관저에서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트위터 캡처>

동유럽 경제의 빠른 성장은 이 지역에 대한 해외 직접투자(FDI)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사회간접자본(SOC)이 턱없이 부족한 동유럽 시장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독일과 프랑스 등 이 지역 경제에 영향력이 큰 서유럽 선진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라이벌 일본까지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2012년 이후 중국 기업들이 동유럽 인프라 투자에 지난해까지 150억달러(약 16조원)를 쏟아부은 것으로 추산한다.

중국은 특히 서유럽으로 가는 관문인 세르비아, 7개 국가와 국경을 맞댄 내륙 교통의 요지 헝가리를 동유럽 공략의 교두보로 삼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10억달러 동유럽 투자 펀드 조성 계획

중국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건설 중이다. 2013년 시작된 관련 프로젝트의 총비용은 29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 완공되면 8시간이 걸리는 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구간을 2시간 30분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2013년에는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잇는 29억달러(약 3조1000억원) 규모의 고속철 사업에서 헝가리 구간 건설에 참여했고, 이듬해에는 7억달러를 들여 세르비아에 화력발전소를 짓기로 합의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해 11월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7차 차이나-CEEC 경제 무역 포럼’에서 중부 및 동부 유럽(CEE) 16개국에 투자할 10억달러(약 1조700억원) 규모 투자 펀드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2012년 중·동부유럽(CEEC) 16개국과 함께 ‘CEEC+1’ 이니셔티브를 발족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동유럽 시장에 공을 들여왔다.

중국이 동유럽 투자에 열을 올리는 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인건비와 물가가 저렴하고 인프라 개발 여력이 풍부한 이 지역을 지렛대로 활용해 전체 유럽연합(EU)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CEEC 16개국 중 11개국은 EU 회원이다. 모두 2004년 이후 신규 가입했다.

여기에 더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동유럽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도 한몫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시 주석이 2013년 9월과 10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순방 중 처음 언급했다. ‘일대(一帶)’는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중국에서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일대일로 선상에 있는 60여개 연선국가의 인구는 약 44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63%, 경제 규모는 21조달러로 전 세계의 29%를 차지한다.

그중에서 육상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와 중동, 러시아를 거쳐 유럽 대륙까지 이어진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헝가리,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을 거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까지 연결된다.

중국의 동유럽 투자는 전체 유럽 투자의 8%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유럽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동유럽으로서는 중국의 절대 투자금액이 결코 적지 않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지난해 전체 투자 유치 금액 중 중국 투자금이 차지한 비율은 각각 40%, 20%나 됐다.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동유럽이 인프라와 물류에서 서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총 6150억달러(약 655조원) 규모의 관련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 장기불황에 돌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폴란드와 체코를 중심으로 동유럽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은 중국의 적극적인 공세에 당황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5일부터 6일간의 일정으로 동유럽 순방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에스토니아와 사이버 보안 협력 모색

아베 총리는 순방 기간 중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과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루마니아를 차례로 방문했다. 모두 일본 총리로서 첫 국빈 방문이다. 첫 방문지인 에스토니아에서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사이버 보안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30개가 넘는 일본 기업 대표들도 순방에 동행하며 협력 확대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일본 도시바는 이에 앞서 지난 2014년 미국 원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WH)을 통해 불가리아 국영전력회사 원자력발전소와 원전 1기 납입 계약을 체결했다. 수주액은 5000억엔(약 4조7900억원). 일본 기업이 동유럽에 원전을 수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도시바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관련 사업의 중심축을 해외로 옮겼다. 특히 신규 건설과 증설 계획이 많은 유럽에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일본 정부는 2016년에 폴란드와 포괄적 경제협력협정인 ‘전략적 파트너십 행동계획’을 맺고 차세대 원자로인 고온가스로 기술 관련 제휴를 체결하기도 했다.

한편 동유럽 국가 경제 성장의 큰 몫을 담당해온 서유럽 경제 대국들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위상 강화로 ‘하나의 EU’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동유럽 수출의 3분의 2가량은 유로존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해 9월 성명에서 “중국 정부는 ‘하나의 유럽’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국가들에 “우리가 중국에 맞설 단일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면 중국이 유럽을 분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 국제학연구소는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에 “하나의 유럽은 지리적으로나 가능한 개념이며, 정치·경제적으로는 또 다른 이야기”라는 소장 명의의 반박 글을 실었다.

중국의 공격적인 동유럽 투자가 외교에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해 7월 12일 헤이그 주재 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유엔의 해양법 위반이라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국제법 존중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흘 후에야 성명을 발표한 EU는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도 않은 채 평화적 해결만을 강조해 대조를 이뤘다. 당시 로이터통신은 성명서 작성에 참여한 EU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중국의 투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헝가리와 그리스, 폴란드 등이 중국을 거명하는 데 반대했다”고 전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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