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스타일은 지디(사진 오른쪽)가 만들고 있다.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에 한국 아이돌인 빅뱅의 이름이 올랐다.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유명인사 100인’에 포함된 것이다. K팝(K-pop) 스타가 순위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15년 한 해 동안 빅뱅이 벌어들인 돈은 세전 4400만달러(약 478억원)였다. 역대 100위권에 진입한 남성 아이돌 그룹 중 백스트리트 보이즈(미국)와 원 디렉션(영국) 등 최정상 그룹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순위였다. 세계적인 록밴드인 ‘마룬 파이브’보다도 앞섰다.

빅뱅 멤버 중에는 작사·작곡을 직접 하는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지디)의 자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인사의 전체 자산을 추정해 공개하는 미국 웹사이트 ‘셀러브리티 네트 워스’에서는 지디의 자산을 1250만달러(약 136억원)로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빅뱅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빅뱅 고유의 색깔’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빅뱅의 색깔은 지디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 음악평론가 김윤하는 “지디는 고유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아이돌 20년사’ 중 가장 돋보이는 존재”라며 “‘아이돌은 음악성이 없고, 만들어진 음악을 부르는 꼭두각시’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것을 무려 10년간이나 지속하고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팝 멜로디에 통속적 가사로 대중적 인기

지디가 아이돌뿐 아니라 뮤지션으로 인정받게 된 분수령은 2007년이었다. 지디가 작사·작곡한 ‘거짓말’과 ‘마지막 인사’가 소위 대박을 친 것이다. 빅뱅이 데뷔한 지 고작 1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지디가 초반부터 힙합을 기반으로 팝적인 요소를 멜로디에 가미하고 통속적인 가사를 쓰면서 대중적인 인지도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남자 아이돌 대부분이 10대의 팬덤(열광적 추종)에 힘입어 한정적인 세대에서 인기를 모으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거짓말에는 ‘I’m so sorry but I love you(너무 미안해 하지만 사랑해). 다 거짓말이야 몰랐어. 이제야 알았어 니가 필요해’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 뒤에도 지디는 ‘하루하루(2008년)’ ‘하트 브레이커(Heartbreaker·2009년 지디 솔로앨범)’ ‘링가링가(2013년·태양 솔로앨범)’ 등 내놓는 곡마다 줄줄이 히트시켰다.

지디의 목소리와 창법은 특유의 스타일을 만드는 무기다. 그의 랩에는 과장되고 꾹꾹 눌러 말하는 듯한 발음, 건성으로 말하는 듯한 어투가 있다. 언뜻 불편해보이기도 하는 지디의 랩은 꽤 많은 마니아층을 끌어들였다. 영화감독 변영주는 자신의 트위터에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를 처음 들었을 때 전율이 왔는데, 지디의 ‘크레용(Crayon·2012년 지디 솔로앨범)’을 들으며 비슷한 심정을 느꼈다”며 “이 친구는 이제 하나의 시대가 됐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빅뱅 이후 남자 아이돌의 틀’을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아이돌 음악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지디 이후 자작곡을 쓰는 남자 아이돌은 지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며 “이들의 과제는 지디와 어떻게 차별화를 할 것인가다”고 말했다.


지디 ‘피스마이너스원’ 전시회.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패션계 아이콘으로 명품계 러브콜 이어져

지디는 음악의 경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패션·문화계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패션계 교황’으로 불리는 칼 라거펠트(샤넬 수석디자이너)의 초청을 받은 유일한 한국 스타다. 라거펠트는 매 시즌 글로벌 패션 아이콘에게만 주어진다는 패션쇼 맨 앞자리에 지디를 앉힌다. 지디는 글로벌 4대 패션위크 중 하나인 파리 패션위크에 매년 초대된다.

아무에게나 협찬을 해주지 않기로 유명한 명품 업계에서 지디는 협찬 희망 1순위다. 대중명품 브랜드 MCM은 특별 제작한 라이더 재킷을 지디에게 색깔별로 선물했다. 미국 액세서리 브랜드 크롬하츠는 빅뱅이 월드투어로 미국에 갔을 당시 본점 문을 닫고 빅뱅 멤버들이 단독 쇼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단 하나뿐인 신발을 제작해 지디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10대 팬들이 남자 아이돌의 패션이나 아이템을 따라 사는 경우는 흔히 있지만, 아이돌이 전문 패션업계 아이콘으로 깊숙이 들어간 것은 지디가 최초다.

지디는 2015년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의 접점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피스마이너스원’ 전시회에도 나섰다. 이 전시회에는 지디의 개인 소장품을 포함해 설치·조각·사진·페인팅 작품 등 약 200여 점이 전시됐다. 김윤하는 “아이돌 시장은 10대 위주로 돌아가는 ‘마니악(狂)’적인 특징이 많은데, 지디는 음악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plus point

부진하던 브랜드도 지디와 만나면 ‘대박’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2016년 9월 30일 중국 상하이에서 문을 연 중국 1호 ‘에잇세컨즈’ 매장. <사진 : 삼성물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의 브랜드로 통하는 ‘에잇세컨즈(8 Seconds)’는 지디와 만나 대박을 쳤다. 에잇세컨즈는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SPA(제조·유통 통합형 의류 회사)의 대항마로 키우기 위해 이 사장이 직접 기획해 2012년 론칭한 국내 첫 SPA 브랜드다. 이 사장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8’을 의도적으로 브랜드명에 넣어 처음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뒀다. 2016년 하반기 중국 시장 진출 직전 지디를 한·중 광고모델로 영입한 것은 그런 계획의 연장선상이었다.

지디는 에잇세컨즈 디자인에도 관여해 자신의 이름을 건 ‘에잇 바이 지드래곤(8 X G-Dragon)’ ‘에잇 바이 지디스픽(8 X GD’s Pick)’ 라인을 선보였다. 지디를 상징하는 용(龍) 문양이 들어갔고, 평소 지디가 즐겨 입는 스카잔(강렬한 무늬의 자수를 새긴 집업 재킷), 디스트로이드 진(찢어진 청바지), MA1 점퍼(항공점퍼) 등의 아이템들이 대거 반영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론칭 이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에잇세컨즈는 지디가 광고모델로 활동한 1년간 매출이 20~30% 늘었다고 밝혔다. 2016년 9월 30일 중국 1호 매장인 에잇세컨즈 상하이점에는 지디 팬 1000여 명이 오픈 전부터 줄을 길게 늘어서는 장사진이 펼쳐지기도 했다.

허준석 에잇세컨즈 팀장은 “‘에잇세컨즈=지디’ 라는 공식이 생기면서 빅뱅을 좋아하는 20~30대 고객들에게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우정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