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원밀리언 댄스스튜디오의 강사가 인도네시아에서 워크숍을 갖고있다. <사진 : 원밀리언 댄스스튜디오>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에는 매일 수백명의 젊은 외국인들이 모여든다. 예전엔 중국·일본인 중심이었지만 최근 미국·유럽 등 서양인 비중이 더 높아졌다. 이곳은 원밀리언 댄스스튜디오(1Million Dance Studio·이하 원밀리언)다. 해외 미디어들에도 점차 알려져, 이젠 K팝(K-pop) 성공의 이유를 찾으려는 외국 기자들도 종종 이곳에 들른다. 지난 5일엔 영국 BBC에서 취재를 나와 동영상까지 찍어갔다.

건물 3·4층에 마련된 교습 공간에 올라가 보면, 보컬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멤버 나얼의 ‘베이비 펑크(Baby Funk)’나 다른 최신 K팝에 맞춰 춤을 추는 전 세계 10대, 20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서양인, 아시아계 외국인, 한국인이 거의 3분의 1씩 차지한다.

원밀리언의 유정민 해외마케팅 매니저는 영국·프랑스·스페인 등에서 직접 K팝 댄스를 배우려고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이들이 늘고 있다”면서 “댄스 수업의 한 반 정원 60명 가운데 한국인이 10~20명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밀리언 내에서 직원들이나 수강생들은 한국어 쓰는 일이 별로 없다. 직원 20여명의 절반이 해외 국적자다. 전문가들은 원밀리언 같은 K팝 댄스 학원이 대성공을 거둔 이유로 ‘흥 경영’을 꼽는다. 댄스를 어떤 대결이나 엄숙하거나 힘든 무엇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즐기고 흥을 북돋워주는 무대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외국의 어떤 댄스학원과도 다른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원밀리언은 올해 1월 일본 도쿄에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가졌다. <사진 : 원밀리언 댄스스튜디오>

“춤은 함께 즐기며 행복감 느끼게 하는 것”

K팝 아이돌을 유튜브 영상 등으로 접한 해외 젊은이들은 영상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는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런 춤을 자신들이 직접 경험해보는 것을 욕망하게 된다. 원밀리언은 그런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최상의 방편이다. 교습생들 중에는 원밀리언에서 댄스를 수강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로테르담대 경제학과 1학년 남학생도 있고 오사카에서 어머니와 함께 온 일본인 중학생도 있다.

미국·유럽의 젊은이들이 K팝 댄스를 배우러 논현동까지 찾아오는 것도 이런 욕망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양인들 역시 K팝 아이돌을 보면, 그들의 춤을 따라 추고 싶어하고 그 문화를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유럽은 춤도 클래식 중심이어서, 제대로 된 K팝 댄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K팝 댄스와 비슷한 춤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곳이라면 LA·뉴욕 정도인데, 이 역시 K팝 본고장 한국과는 분위기·성격이 다르다.

원밀리언은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듯 춤도 서로 응원하고 사기를 북돋워주면서 흥겹게 즐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외국 댄스교습소의 경우 아마추어와 프로 세계가 엄격히 나뉘어 있거나 구성원 간의 경쟁 의식이 심한 곳이 적지 않은데, 원밀리언은 강사들부터 ‘모두가 함께 즐겨야 춤이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원밀리언의 정윤지 실장은 “한국은 K팝 아이돌에게서 보는 완벽한 군무와 쉽고 흥겹게 따라 출 수 있는 교습 환경, 이 두가지를 다 갖추고 있는데, 이런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면서 “한국만이 가진 이런 장점이 더 많이 해외로 전파되고 있고 이 때문에 서양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더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밀리언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댄서·안무가 지카다 리키마루(近田力丸)는 “원밀리언에서 가르쳐주는 댄스는 (강사만 빛나보이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따라 춰도 빛나보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면서 “이 때문에 춤을 잘 못 추는 학생들도 함께 즐기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원밀리언의 시작은 김혜랑(34·영어명 리아 킴) 대표 등이 2014년 서울 논현동에 세운 댄스학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는 안무가이자 이효리·소녀시대·트와이스 ‘춤선생’으로 유명하다. 김혜랑 대표는 2006년 스물둘에 스트리트댄스(브레이크댄스) 세계대회 록킹 부문 우승, 2007년 팝핀 우승, 록킹 준우승을 하며 스트리트댄스 세계의 스타가 됐다. 그러나 이후 스트리트댄스 세계의 지나친 경쟁을 견디다 못해 긴 슬럼프를 겪었다. 학업 열등생이었던 10대 소녀가 이후 댄스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안무가로 전업(轉業)해 살 길을 찾다가 지금의 사업에 안착했다. 그는 2013년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안무로 세상에 알려졌고, 최근에도 트와이스의 ‘TT’, 아이오아이의 ‘너무너무너무’ 안무가로 큰 인기를 끌었다.


plus point

K팝 댄스 안무 강습 ‘온·오프 통합 플랫폼’
댄스 강사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 오기도


원밀리언의 김혜랑 대표가 서울 논현동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초창기 원밀리언의 수익모델은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를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는 것이었다. 코레오그래피는 영어로 ‘안무’를 뜻하지만 댄스계에선 특정 노래에 맞춰 안무를 직접 만들어 추는 춤을 말한다. 비보잉·팝핑 등의 스트리트댄스(브레이크댄스)보다 최근 세계적으로 더 각광받는 장르다. 원밀리언이 다른 학원과 달랐던 것은 강사들이 유튜브에 코레오그래피 영상을 꾸준히 올려 전 세계에 홍보한 것이었다.

원밀리언이 유튜브 채널에 지난 3년 반 동안 올린 코레오그래피 동영상은 950여편에 달한다. 이 가운데 김혜랑 대표가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드 쉬란의 팝송 ‘셰이프 오브 유(Shape of you)’에 맞춰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춤추는 동영상은 올린 지 11개월이 지난 현재 조회 수가 3200만회에 이르며 지금도 월 100만~200만회씩 조회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동영상에 달린 7000여개 댓글 작성자의 90%는 외국인이다. 원밀리언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만 800만명이 넘는다.

원밀리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온라인은 이제 수익 창구로 바뀌었다. 현재 수익 절반은 기존에 하던 일, 즉 학원의 댄스 교습, 연계기획사의 연예인·연습생 댄스 교습 등에서 나온다. 나머지 절반은 유튜브에서 나오는 광고수익, CJ E&M이 운영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인 다이아TV와 광고·협찬계약을 맺어 벌어들이는 수익 등이다. 패션업체, 뷰티업체 등과의 협업을 통한 수익창출도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다.

또 원밀리언은 비즈니스모델 참여자 전원이 공생하는 구조다. 강사들은 유튜브에 코레오그래피를 올림으로써 자신이 춤만 가르치는 기능인이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국내외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자기 브랜드로 활동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이들도 행복하다. 그중 일부는 해당 댄스 강사를 직접 만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학원을 찾은 뒤의 만족도도 높다. 광고주도 원밀리언을 통한 온라인광고·협업을 통해 세계의 젊은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다.

김혜랑 대표는 “댄서·안무가들이 경제적 문제 없이 아티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할 무대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원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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