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연습생’에 댄스 멘토로 참가한 주결경(왼쪽)과 성소. <사진 : 아이치이>

“방금 뒤에서 자고 있는 거 봤어요. 제가 당신이었다면, 춤을 이렇게밖에 못 추는데 잠을 잘 수는 없을 거예요. 며칠 동안 밤 새고 연습하느라 졸리고 피곤한 것, 고생하는 것 잘 알아요. 그렇지만 무대에 설 때, 관객들은 우리가 못 잤던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무대에 오른 순간만 보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죠. 더 신중하게 임했으면 해요.”

지난달부터 중국의 동영상 회사 ‘아이치이(愛奇藝)’가 제작하는 웹 예능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상연습생(偶像練習生)’이 방영을 시작했다. 이 방송에 댄스 멘토로 출현한 걸그룹 ‘우주소녀’의 중국인 멤버 성소(본명 청샤오·程潇)는 구석에서 졸고 있던 한 연습생을 질책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더 힘을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상연습생’은 2016년, 2017년 국내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끌고, 여성 아이돌 그룹 ‘아이오아이(I.O.I)’와 남성 아이돌 그룹 ‘워너원(WANNA ONE)’을 데뷔시킨 ‘프로듀스 101’과 무대, 연출, 연습생 의상, 콘셉트 등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그러나 우상연습생은 프로듀스101 포맷을 정식으로 구매해 제작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프로듀스 101을 제작한 엠넷은 지난 5일 “‘프로듀스101’은 엠넷이 기획하고 제작한 고유 자산이며 창작자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한다”며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비록 무단으로 프로그램 콘셉트를 따라하긴 했지만, 우상연습생은 K팝(K-pop)을 수입하지 않고 비슷한 아티스트를 자체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역량이 커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성장 가능성 높은 중국 음악 시장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의 1인당 음악 소비 지출은 0.65위안(약 111원)으로 극히 미미하다. 일본의 35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인구가 많아 2014년 기준으로 대중음악 시장 규모는 2851억위안(약 48조9000억원)에 달했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 이용자는 5억명을 넘었다. 몇 년 전부터는 중국 정부가 음원 불법 사용을 규제하고 있어 시장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K팝에 대한 관심도 높다. 중국 매체 ‘TMT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에서 대중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 중 80.4%는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79.8%가 K팝을 선호한다고 대답해, 중국 본토 음악 선호(47.1%)를 크게 앞질렀다. 2016년 3월 기준으로 바이두에 개설된 엑소·빅뱅·소녀시대 등 10개 한국 아이돌 그룹의 팬 카페 가입자는 1299만명이다.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건 2000년대 형성된 한류 붐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중국 시장에 앞다퉈 진출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중국 매출 비율은 10~15% 수준이었지만, K팝 팬이 많고 빠른 성장이 예상됐기 때문에 움직임이 빨랐다. 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중국인 멤버가 포함된 것도 현지 진출을 위해서다.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금한령(禁韓令·한류 금지령)’이 내려지고 한국 연예인의 중국 활동이 타격받으면서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중국 팬들이 음지에서 K팝을 소비하는 것을 제외하면 중국에서 합법적인 대중 매체를 통해 K팝을 들을 수 없게 됐고, 한국 아티스트의 중국 매체 출연이나 콘서트 개최도 어려워졌다. 수익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대신 중국은 한국의 노하우를 배워 자체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우상연습생’에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아이돌이 대거 등장한다.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중국인 멤버 ‘레이(본명 장이씽·張藝興)’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남성 아이돌 그룹 ‘갓세븐(GOT7)’의 중국계 멤버 잭슨(본명 잭슨 왕·홍콩 출신)은 랩 멘토로, 여성 아이돌 그룹 ‘프리스틴’의 중국인 멤버 주결경(저우제충·周潔瓊)은 성소와 함께 댄스 멘토로 출연한다.

중국 최대 연예기획사인 위에화엔터테인먼트(樂華娛樂)는 2016년 2월 한국 법인 ‘위에화엔터테인먼트 코리아’를 출범시켰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전문가인 이상규 대표와 플레디스(한국기획사)에서 손담비, 애프터스쿨 등을 발굴하고 제작한 정해창 대표가 공동으로 경영한다.

위에화는 씨스타를 제작한 국내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 전략적 제휴를 하고 한·중 합작 남성 아이돌 그룹 ‘유니크(UNIQ)’를 데뷔시켰다. 우주소녀도 위에화와 스타쉽이 합작해 중국인 멤버 3명을 포함한 13명으로 구성됐다.


‘우상연습생’ 방송 무대. <사진 : 아이치이 캡처>


중국 가수 연습생, 한국 두 배

위에화엔 한국 남성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에서 탈퇴한 한경(韓庚)도 소속돼 있다. 그는 위에화의 주주이기도 하다. 유명 중국 배우 판빙빙(范冰冰)의 19세 동생 판청청(范丞丞)도 위에화에 소속돼 한국에서 1년째 가수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 육성 노하우를 도입해 중국의 자본으로 데뷔시키면 한·중 관계가 호전되더라도 한국 기업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 있다.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현지화 전략으로 중국에 진출했는데, 지금은 중국이 한국의 대형 기획사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역량을 강화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한다”라고 했다.

한국의 음악 산업은 1990년대까지 일본에 비해 뒤처져 있다가, 2000년대 들어 아이돌 분야에서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의 아이돌들은 K팝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형성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데까지 발전했는데 중국의 약진이라는 리스크가 생긴 것이다.

선진국을 따라잡고 있는 다른 산업처럼 중국의 연예 산업도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상연습생’은 1회 방송이 공개된 지 1시간 만에 조회 수 1억 회를 돌파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년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가수를 지망하는 연습생은 1079명이다. 중국 방송 프로그램 ‘우상연습생’에 참여한 연습생은 1908명이다. 연습생의 재능과 시스템은 한국이 더 우수하더라도 연습생 수는 중국이 한국의 두 배에 가깝다.

이무원 교수는 “후발 주자가 쫓아오는 위기 상황에선 K팝만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강화하고 계속 실험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김영걸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중국 정부가 한국 노하우를 도입해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미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왔다”며 “중국 기업과 협업해서 수익을 나누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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