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김창환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회장이 이끌던 라인음향은 ‘SM 이전의 SM’이요, ‘YG 이전의 YG’였다. 신승훈·김건모·박미경·노이즈·클론 등 당시 김 회장이 앨범 제작을 맡은 가수마다 ‘대박’이 났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미다스의 손’이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박진영도 라인음향 연습생 출신이다.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핑계’ ‘잘못된 만남’, 신승훈의 ‘날 울리지 마’ ‘오랜 이별 뒤에’, 노이즈의 ‘상상 속의 너’ ‘어제와 다른 오늘’,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이브의 경고’,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초련’, 엄정화의 ‘몰라’ 등은 직접 작사·작곡까지 맡아 크게 히트시켰다. 1995년 발매된 김건모의 3집 ‘잘못된 만남’의 ‘국내 최단시간 최다 앨범 판매 기록(280만장)은 대중음악 시장이 온라인과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게 됐다.

2016년 화제가 된 ‘프로듀스101’의 주제가 ‘픽미(Pick me)’를 만들어 히트시켰고, 기타와 드럼·보컬 등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천재소년’들로 구성된 보이밴드 ‘더 이스트라이트’의 일본과 중국 진출을 준비하는 등 최근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요계의 ‘전설’이 보는 ‘한류 아이돌 열풍’은 어떤 모습일까. 김 회장을 서울 방배동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K팝(K-pop)의 성공을 견인한 한류 아이돌 열풍은 지속 가능할까.
“국내 아이돌 스타들의 경쟁력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다. 어리고 멋지고 춤까지 잘 추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튜브 등 영상 미디어의 확산으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세계 음악의 주류가 바뀐 것도 지속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들이 세계적인 ‘대세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교육과 경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재능 있는 친구들을 뽑아서 5~6년간 트레이닝시켜 데뷔시키는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 서구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재능을 뽐낼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훨씬 많기 때문에 그만큼 무대 경험을 쌓을 기회도 많다. 여기에 더해 국내 음반 시장이 붕괴되면서 전화위복이 된 측면도 있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가.
“90년대는 ‘듣는 음악’의 시대였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 등 아이돌도 있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아이돌은 인기에서, 김건모와 신승훈·이승환 등 음악으로 승부를 건 스타들은 음반 판매에서 더 좋은 몫을 차지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불법 다운로드 확산으로 좋은 음악이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됐다. 반면 일본은 국가에서 불법 음원 유통을 엄격하게 규제했고, 그 결과 세계에서 CD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로 남아 있다. 성장동력을 잃은 국내 대중음악 업계는 유튜브 등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는 음악’ 시대에 적합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 일조한 셈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흥(興)’과도 관련이 있을까.
“과거 우리나라처럼 가난하면서도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나라는 없을 것 같다. 고속버스 안에서 할머니들이 춤을 추는 건 안전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언제 어디서나 ‘놀 준비’가 되어있다고 할까? 어느 정도는 ‘반도’라는 지형 요인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대륙과 섬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문화적으로 다채로워졌을 것이고, 외세의 침입에 시달리면서 임기응변에 능해졌을 것이다. 모방에도 능하지만 완전한 모방과는 또 다르다. 삼성이나 현대차의 성장을 봐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음악 시장이 지나치게 10대 취향으로 쏠리는 건 문제 아닌가.
“대중음악은 언제나 10~20대가 주도했다. 서태지와 김건모는 물론이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에 열광했던 팬들도 대부분 10~20대였다. 화려한 댄스 등 보이는 것의 중요성이 커지니까 더 그렇게 생각되는 것뿐이다.”


올해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인 ‘더 이스트라이트’ . <사진 : 미디어라인>

전성기의 클론이 지금 미국에 진출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클론의 무대는 어디서나 빛났다. 대만을 비롯한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K팝 열풍의 전기를 마련했다. 일본에서도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오사카와 도쿄 공연에서 대박이 났지만 아쉽게도 일본 진출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뭔가.
“1999년 도쿄에서 공연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한국의 밤’ 행사의 일환이었는데 클론 외에 박미경과 엄정화·원타임이 함께 무대에 섰다. 전체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일본 연예기획사인 와타나베 프로덕션 설립자의 미망인도 우리 공연을 보러 왔다. 일본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 중에는 와타나베 출신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와타나베 부인은 공연이 끝나고 우리를 집으로 초청했다.”

그럼 잘된 것 아닌가.
“그런데 와타나베 부인이 대뜸 ‘너희는 일본에 못 들어온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내 인생에서 소름 돋는 공연을 두 번 봤는데 마이클 잭슨 공연과 너희 공연이다. 너희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될 수 있다. 일본보다 후진국인 한국에 문화를 빼앗길 수 없다’고 했다. 거짓말처럼 일본에서 방송 한 번 타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NHK에서 ‘세계 속의 세계인’이란 방송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방송 중에 ‘일본인들은 일본이 아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일본을 몰락시킬 것이다’라고 했고, 그대로 방송을 탔다(웃음).”

대만에서 클론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일례로 1998년 대만 음반 판매 순위에서 클론은 영화 ‘타이타닉’ OST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H.O.T.와 베이비복스는 당시 클론 공연 오프닝 공연에 등장하며 중화권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K팝 열풍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
“불필요한 규제가 너무 많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가수와 소속사 간 전속계약이 7년을 못 넘도록 규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관련 규정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스타를 키우는 게 쉽지 않아졌다. 씨스타와 2NE1, 원더걸스와 포미닛 등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데뷔 7년 차에 해체를 선언하거나 멤버 탈퇴로 내홍을 겪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 김창환
CJ미디어라인 대표, 마이다스이엔티 총괄 프로듀서, 미디어라인 대표 프로듀서(현)



이미지 크게 보기

이용성 차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