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한국 문화 콘텐츠가 진출하기 위한 거점이다. 시장 규모는 작지만 국제화된 도시여서 문화 인프라가 발달돼 있다. 해외 아티스트가 아시아 투어를 할 때 들르는 공연 시장의 중심으로, 많은 K팝 스타가 이곳에서 공연했다. 2011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가 열리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소비 시장 규모는 인구에 비해 크다. 하지만 절대적인 내수 규모가 작아 자체 콘텐츠 제작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한류’는 중국 문화 콘텐츠와 함께 중요한 소비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패트릭 윌리엄스 난양공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2008년부터 싱가포르에서 거주하며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K팝과 한국의 아이돌 그룹 그리고 싱가포르의 아이돌 팬덤도 그의 연구 대상이다.


싱가포르 청소년들, K팝으로 정체성 형성

윌리엄스 교수는 지난해 난양공대의 ‘아시아 소비자 인사이트 연구소’가 펴내는 ‘인사이트+’에 기고한 ‘K팝의 어두운 면?’이라는 글에서 K팝을 소비하는 싱가포르의 10대 팬덤을 분석했다. 그는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선 K팝 아티스트가 콘서트와 쇼케이스를 열고 페스티벌에 참가한다”라며 “이런 이벤트는 특히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젊은층에서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열정적으로 소비되는 문화 환경과 맞물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소득수준이 높은 만큼 K팝 팬들도 K팝 문화 소비에 상당한 돈을 쓴다. 싱가포르 공연기획사 ‘러닝인투더선(Running Into The Sun)’의 홍보 담당자는 “팬들이 콘서트를 즐기는 부분 가운데 아이돌 ‘굿즈’ 구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팬들은 콘서트 시작 시간보다 일찍 공연장에 도착해 굿즈를 산다”며 “대부분의 10대 K팝 팬들은 더 나이 많은 팬들보다 아이돌을 물질적으로 후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K팝 아이돌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은 경제적인 소비 측면을 넘어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윌리엄스 교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K팝은 취향과 소비를 공유하는 것을 통해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K팝을 좋아한다는 것이 청소년이 가진 정체성의 한 요소이기 때문에 그 관심이 지나칠 수도 있다. K팝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간혹 잘못된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기 연예인을 계속 따라다니는 ‘사생팬’과 같은 행동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등장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싱가포르는 물론 다른 곳에서도 일부 청소년 팬들이 수백달러를 주고 밴 차량을 빌려 K팝 아이돌이 호텔과 콘서트장을 이동할 때는 물론 그들의 사적인 일정까지 따라다닌다”면서 “그들은 아이돌에게 선물을 주고 후원하면서 아이돌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코노미조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K팝 아티스트가 가진 ‘새로움’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힘”이라면서 “영어 실력이 뛰어나고, 음악성을 갖춘 아티스트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방문한 한국 남성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B1A4)’. 호텔로 이동하는 그들을 싱가포르 젊은 여성 팬들이 둘러싼 채 따라오고 있다. 멤버의 손은 팬들이 건넨 선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 호 샹신 사만다>

싱가포르와 북미에서 K팝 아이돌은 얼마나 인기가 있는가. 팬을 제외한 사람들은 K팝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K팝의 유행을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한다. 개별 뮤지션, 배우,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인식은 나라마다 꽤 다를 수 있다. 싱가포르는 K팝 소비층이 두껍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음악, TV 드라마, 영화가 전부 인기 있다. 북미의 경우 일부 아이돌 그룹만이 인지도가 있다. 물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정말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영어로 부른 원더걸스의 ‘노바디(Nobody)’는 괜찮은 수준으로 방송을 탔다. 그 외에는 현지 미디어에서 K팝을 들려주지 않는다. 강남스타일과 노바디에서 더 나아가 K팝 아티스트에 대해 정보를 찾고 좋아하는 뮤지션을 정하는 것은 청중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K팝 아이돌이 세계 팬을 끌어들이고 더 많은 시장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들은 남성성, 여성성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리고 새로운 콘셉트를 제시한다. 새로운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새로운 스타일의 행동을 팬들에게 선보인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움(newness)’이 K팝 아티스트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K팝 아티스트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인지도를 높였다. 소셜미디어가 해외 시장 진출에 어떻게 도움을 줬을까.
“소셜미디어는 해외에서 음악을 들어줄 청중을 찾아야 하는 아티스트에게 정말로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존재다. 아주 적은 숫자의 한국 방송 프로그램이 아시아 이외의 지역 방송사에 판매돼 전파를 탄다. 반면 소셜미디어의 여러 채널을 이용하면 소비자들은 대중매체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원하는 정보를 구할 수 있다. 가장 성공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콘텐츠를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보고 즐길 수 있게 만들고 배포한다.”

아시아에선 K팝 아티스트가 인기가 높고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선 아직 그렇지는 않다. 세계적인 팝스타처럼 K팝 아티스트도 인지도를 쌓을 수 있을까.
“영어 실력이 뛰어나고, 음악성을 갖춰 아티스트로 우뚝 설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시아에서와 달리 북미에서는 잘 짜여진 안무를 선보이며 부르는 일반적인 K팝 아이돌의 곡이 큰 인기를 끌기 어려울 듯하다. 이런 내용의 뮤직비디오는 미국인 시각에선 덜 흥미롭다. 음악이 아니라 연기라면 배우가 서양 영화에 등장하거나 쇼에 출연해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외국어로 된 작품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북미와 유럽 사람들 가운데 한국어를 배우고 유창하게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K팝 아티스트 덕분이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상승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음악보다는 기술을 보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경의를 갖게 된 외국인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한국이 갖고 있는 세계적인 인지도는 최첨단 기술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기술 기업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어를 직접 배우는 사람이라면 약간 다를 것이다. K팝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어에도 관심을 갖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 패트릭 윌리엄스(Patrick Williams)
테네시대 인류학 학사,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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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Goods) 아이돌,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장르의 팬덤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특정 인물이나 장르, 인물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한 상품을 뜻한다.
사생팬 특정 연예인의 사생활을 알아내려고 밤낮없이 그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극성팬.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뒷전으로 미룬 채 연예인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경우도 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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