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K팝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K팝의 세계적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라는 글이 실렸다. ‘HBR’이 이례적으로 개별 국가의 특정 산업을 다룬 것이었다. 필자인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와 작곡가 출신인 오원용 캐나다 캘거리대 교수는 K팝의 성공 요인으로 △전 세계에서 재능 있는 어린아이들을 발굴해 합숙 생활을 하며 역량을 성장시키고 △소셜미디어로 소비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지역 맞춤형 전략으로 현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들었다.

‘HBR’에 K팝에 대한 분석이 실린 뒤 1년 4개월간 K팝 아티스트는 세계 무대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이 교수는 지난 2일 오후 연세대 경영관에서 가진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K팝은 실패해도 용인하는 문화가 있어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K팝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유럽 등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팝(POP) 뮤직이 그렇지만, K팝은 기본적인 속성이 ‘일시적인 유행(fad)’이다. 음원을 발표해도 팬덤이 순식간에 엄청난 규모로 소비를 해야만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한국에선 멜론(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차트에 오른다. 대부분의 곡은 발표 초기에 차트에 오르지 못하면 영원히 오르지 못한다. 순식간에 청중(audience)의 주목을 끌어야 한다. 이런 싸움의 특징은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무엇을 하면 실패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성공은 우연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에 대해 하나는 우연이고, 다른 하나는 K팝이 상당한 기간 축적된 결과 덕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사가 아이돌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획해서 만들기보다는, 실험처럼 음원을 계속 발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음원을 발표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 인기를 끌고, 팬덤이 형성된다.”

K팝 아티스트의 세계적 성공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은.
“연예기획사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여러 번 시도하다가 한두 아티스트만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실패해도 용인하는 문화가 있다. 산업 속성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회 분위기가 실험을 꺼려하고, 그래서 실패한 적도 없어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잔잔한 성공은 거두지만 어떻게 하면 크게 성공하는지도 모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6위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1위다. 그리고 R&D 성공률도 1위다. 좋은 게 아니다. 투자해 성공할 수 있는 과제만 연구해서 그렇다. 성공하지 못하면 회사에선 임원들이 옷을 벗어야 하고, 학교에선 교수들이 돈을 못 받는다. 살아남으려면 1년마다 성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노벨상을 받으려면 10년간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계속 지원해줘야 한다. 당연히 이런 과제는 R&D 투자 대상에 선정되지 않는다. 보통 한국 기업 문화는 한 번 실패하면 조직 구성원이 큰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 자체를 잘 안 한다. 1년이 멀다 하고 시장에 새로운 상품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실험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 기업의 조직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다른 산업에 K팝 성공 방법을 적용한다면.
“음악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유행을 좇는(faddish)’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 패션·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당연하고, 장기간 사용한다고 생각한 내구재(耐久財)도 그렇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아이폰이니까’ 또는 ‘갤럭시니까’라며 스마트폰을 산다. 자동차를 살 때도 예전엔 얼마나 튼튼하고 안전한지를 따졌다면, 요즘은 운전하는 즐거움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내구재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도 이제는 여러 상품을 내놓으며 실험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다 하나가 걸리면 ‘대박’이 난다. 상품 수명 주기가 짧아지는 상황에선 더욱더 많은 실험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 같은 내구재도 품질보다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 아이폰은 팬덤을 형성해 지금처럼 성공했다. <사진 : 블룸버그>

다른 K팝 아티스트와 달리 방탄소년단은 현지화를 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현지화 전략에 대한 생각은.
“K팝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현지화를 모두 잘하기 힘들다. 과거 미국에 진출했던 K팝 아티스트는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완전히 현지화했다. 반면 방탄소년단은 K팝 정체성을 지키면서, 미국에서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가미했다. 미국인들이 보기엔 현지화한 K팝 아티스트는 그저 ‘아시아계 가수’로 받아들여져,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한다. K팝의 정체성을 살리는 게 이 시장에선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수 싸이를 보면 이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처음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떴을 땐 싸이만의 정체성이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러나 한국어 가사가 거의 없고 강남스타일과 분위기도 다른 ‘행오버’는 잘 안됐다. 미국 문화에 맞췄지만 오히려 미국인들은 싸이만의 정체성이 없어지자 듣지 않았다.”

북미·남미·유럽과 달리 일본·중국에선 K팝 아티스트의 현지화 전략이 효과가 있었는데.
“현지화를 할 때는 ‘현지에서 무엇을 좋아할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중국에 진출할 땐 중국어가 필요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그래서 중국어로 곡을 발표했고, 같은 곡을 중국어 버전으로 부르는 ‘엑소엠(EXO-M)’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런 현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빌보드차트에서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된 노래가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가사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음악성을 다른 부분에서 찾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과 싸이에서 그들은 ‘팝과 뭔가 다르다’라고 느꼈다. 다르다고 느낀 부분이 바로 K팝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정체성이다. 현지화를 하면 정체성이 없어진다. 미국·유럽의 K팝 팬들은 일종의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비싼 명품을 구매해 부(富)를 과시하는 게 아니라, 독특한 상품을 구매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과시하는 것이다. K팝을 들으면 ‘무언가 글로벌하고 아시아의 감성을 잘 안다’라는 식으로 주변에서 인정해주는 것이다. 힙합, 록,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각 비슷한 취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청중에게 호소하려면 아시아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청중이 현지화를 선호하는 국가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다. 청중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대처하는 것이 진정한 현지화다.”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현지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한다. K팝의 사례가 시사하는 점은.
“소비자가 어떤 현지화를 좋아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아이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폰만이 갖고 있는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그래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과시적 소비의 한 사례다. 반면 갤럭시 스마트폰은 품질은 좋지만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정체성이 부족했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인들은 자국산 자동차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걸 이용한 게 도요타다. 도요타는 ‘렉서스’라는 고급 승용차 브랜드를 만들어 일제의 흔적을 지우고 미국에 진출했다. 사람들이 렉서스가 일본산인지 잘 몰랐다. 미국인들의 특성을 역이용한 것이다. 중국에 진출할 땐 중국인의 특성에 맞춘 모델을 개발해 현지화해야 한다. 승용차가 크고 높아야 하고, 내장재도 화려해야 한다.”


▒ 이무원
연세대 경영학과, 스탠퍼드대 경영학 박사, 하와이대 경영대 교수, 현대자동차·YSB 석좌교수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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