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짓눌려 있던 세계 경기가 드디어 분명한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 세계 경제의 회복은 문재인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 개입과 노동정책 등 반시장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수출의 호조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을 3%로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출입이 국내총생산(GDP)의 78%를 차지할 만큼 대외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호황기에는 성장의 대부분을 수출이 견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글로벌 활황과 견조한 경제성장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제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결정 발표에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화들짝 놀란 것은 고용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조선산업에서만 10만명이 일자리를 떠났고 이러한 구조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한국GM 군산공장의 근로자수는 그에 비하면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적다. 하지만 이 사태를 당장의 일자리 보존의 문제로만 바라봐선 안 되는 중차대한 경고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한국의 많은 산업이 끊임없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경쟁력 잃으면, 일자리도 사라져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는 IMF 외환위기가 아니라 그 이전인 1992년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 1992년에서 1997년의 산업별 취업자수의 증감률을 보면 구조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 기간에 섬유, 가죽, 신발제조와 농림어업의 취업자수는 무려 40%나 감소했다. 이에 반해 숙박, 음식서비스, 도소매업에서는 70% 이상 취업자수가 늘었다. 이 시기는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편입된 때였다. 저소득층이 주로 일하던 저임금·저숙련 제조업을 단시간에 중국에 내줬고 그 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인력이 영세 서비스업종으로 이전했다는 의미다.

그 시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고소득 기능공에게 비교적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던 조선, 중공업, 건설 등도 차례로 중국을 비롯한 경쟁자들에게 밀렸다. 경쟁력을 잃은 산업의 종사자들 또한 영세 서비스업이나 자영업자로 편입됐다. 이러한 흐름은 2010년부터 우리나라의 거시경제지표가 일제히 하향하고 있는 현상에서 잘 나타나 있다. 노동 생산성은 계속 감소했고, 제조업 생산자 물가지수와 가계가처분소득 대비 소비의 비중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결함이 오래전 임계점을 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는 위기의식이 없다. 기업들이 정부의 정치적 압력과 개입에 대항하고 정치적 변혁기에 단골로 수사와 구속의 대상이 되면서 기업의 기반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기업들은 정부의 경영권 흔들기에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든 인건비 상승 요인은 기업의 경쟁력 약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하며 무너지고 있다는 데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 전무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GM 사태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잘나가는 산업 2개 중 하나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신호다.

한국GM이라는 부실기업에서 노조가 누려온 혜택과 그들이 구조조정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들에겐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한 위기의식마저 없어 보인다. 이는 노조가 근로자 또는 미래의 노동자들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타락한 조직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노조가 생긴 배경에는 이들에 기생하는 정치권과 부당한 시설 점거 파업을 해도 공권력이 투입되지 않는 법치의 실종이 부역자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한때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비아냥거림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기업은 망해도 정치적 노조 지도자들은 망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산업 구조조정 실패를 수십년째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지금 논란이 되고있는 한국GM의 전신은 대우자동차다. M&A 시장에서 계륵이 돼 버린 대우건설 또한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탄생한 기업이다. 기업이 부도가 나고 그 잔재를 청산하고 정상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었는데, 20년이 지나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형식적으로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세금으로 메우는 구조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손을 놓는 바람에 한진해운은 파산하고 말았다. <사진 : 조선일보 DB>

생산성 담보하는 한국GM 노조 약속 전제돼야

공무원과 공기업의 임직원이 구조조정을 시장의 원리에 따라 해야 할 이유도, 인센티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산업 구조조정은 번번이 정치적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정책협의를 ‘서별관 비밀회의’로 정치화한 야당의 공격에 놀란 지난 정부는 한진해운의 처리과정에서는 손을 놓고 말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천문학적 피해를 내고 파산했다. 앞으로도 우리 경제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급격한 구조조정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될 수 있도록 관련 금융산업을 육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한 기업의 위기가 산업 전체의 위기로 또는 국가의 위기로 전이되기 전에 막을 수 있다.

한국GM이 또 다른 대우조선해양이 안 되게 하려면 구조조정의 정도를 지켜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의회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에 ‘실패한 경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우선 받았다. 그러고 나서도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이후 자금을 투입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GM 경영진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중국 등 경쟁자를 넘는 생산성을 담보하는 노조의 약속이 전제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청산이 정답이다. 정부도 이제 기업을 적폐세력으로 보는 미몽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노조의 파업이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 한국GM 사태가 주는 진정한 교훈이다.

우리는 기존 산업이 혁신하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구조와, 다른 한편으로 경쟁력 상실로 무너지는 산업에서 나오는 실업자를 받아줄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닷컴 버블 시대에 만든 게임 등 인터넷산업과 중국 시장에 편승한 화장품산업 등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성장동력 육성에 실패했다. 한마디로 1960년대 박정희 시대에 만든 중화학공업으로 여태 파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 규제개혁과 혁신성장은 말로만 그쳐선 안 된다.


▒ 이병태
서울대 산업공학과, 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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