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킴’의 성공 비결로 팀워크가 꼽힌다. 2009년부터 한 팀, 같은 포지션으로 한솥밥을 먹었다. 김민정(맨 왼쪽) 감독도 김초희 선수가 영입되기 전까지 팀 킴과 한 팀으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 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컬링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여자 컬링 대표팀 ‘팀 킴(TEAM KIM)’은 두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역대 최고 올림픽 성적이었다.

팀 킴이 화제가 된 것은 성과 때문만이 아니었다. 김초희(후보)를 제외한 김은정(스킵·주장), 김영미(리드), 김선영(세컨드), 김경애(서드) 등 주전 4명은 모두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군에서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컬링을 해 온 친구·자매 사이였다. 김영미를 중심으로 영미 친구(김은정), 영미 동생(김경애), 영미 동생 친구(김선영) 넷이 한 팀인 것이다. 팀 킴은 스톤을 던지는 순서대로 화장실에 갈 만큼 팀워크가 생활화돼 있다.

자매·친구가 한 팀으로 국가대표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컬링이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뽑는 다른 단체 국가대표팀 선발 과정과 달리, ‘최고의 팀’을 뽑는 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었다. 윤형기 숭실대 스포츠학부 교수는 “컬링은 던져진 스톤을 스위핑(sweeping·비질)하면서 하우스(과녁판) 안으로 들여보내는 팀워크의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별 기량보다도 팀 조직력이 핵심”이라며 “기술력 외에 심리적 요소도 매우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팀 구성원끼리의 신뢰가 두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컬링은 ‘가족 스포츠’로 통한다. 동계올림픽 컬링 결승전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을 꺾은 스웨덴 컬링팀의 스킵 안나 하셀보리는 부모, 삼촌, 오빠, 사촌이 모두 컬링 선수다. 덴마크 남자 대표팀의 올리베르 두폰트, 여자 대표팀의 마델레이네 두폰트와 데니세 두폰트는 남매·자매 사이다. 이들의 부모인 킴·기테 두폰트 역시 컬링 커플이다.

팀 킴을 만든 지도부 역시 컬링 가문이었다. 팀 킴을 이끈 김민정 감독은 의성에 국내 첫 컬링훈련장을 건립한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의 딸이다. 김 원장은 팀 킴이 속해 있는 ‘경상북도체육회’라는 실업팀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팀 킴을 의성여고 시절 발탁해 훈련시킨 멘토 김경석 신라중 교사(평창동계올림픽 컬링 국제심판)는 김경두 원장의 친동생이다.

팀 킴을 만든 세 주역을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팀 킴 신드롬으로 여러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 데다 방송·광고 일정 등이 겹치면서 인터뷰는 매우 어렵게 성사됐다.



한국과 일본의 여자 컬링 준결승전에서 스킵 김은정이 스톤의 방향을 지시하며 소리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동계올림픽에서 팀 킴이 은메달 쾌거를 이뤘다.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일까.
김민정 경북컬링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팀이 아니다. 10여년간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만든 팀이다. 감독인 나는 1990년대부터 2014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김초희 선수가 2014년에 입단하기 전까지 선수로서 김은정, 김경애, 김영미, 김선영과 함께했다. 컬링팀은 단순히 플레이를 하는 4명의 선수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도자를 포함해 팀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한다. 선수들 간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지도자와 선수 간 조화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팀 플레이가 동계올림픽의 성과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김경석 팀워크가 결정적이었다. 2009년 팀 킴을 처음 구성했을 때도 지금과 같은 포지션이었다. 결정력을 갖추고 있는 은정이에게 스킵을 맡겼고, 성실한 선영이와 적극적인 경애가 각각 세컨드와 서드였다. 리드인 영미는 사실 가장 힘든 포지션이다. 스위핑을 가장 많이 해야 한다. 영미가 워낙 맏언니 같은 성격이다. 넷은 10년 가까이 같은 포지션으로 서로 의지해 왔다. 컬링은 의견 충돌이 많아서 한 팀이 오래가기가 쉽지 않은데, 오래도록 다져진 팀워크가 결국에 성과를 낸 것이다.
김경두 2006년 경북컬링훈련원이 개원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 컬링장이 없던 시절 선수들이 대구빙상장에서 12년간 노력했던 과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컬링은 포지션별로 좋은 선수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좋은 팀을 통째로 뽑는다.
김민정 컬링은 팀 스포츠다. 야구의 배터리(투수와 포수) 같은 관계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서로의 구질(球質)과 특성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성을 알아야 전체 시합을 이끌어갈 수 있다. 경기 중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하루 이틀 손발을 맞춘다고,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해질 수 없다.

지도부도 ‘팀 킴’이다. 컬링이 가족스포츠가 된 배경과 경쟁력을 설명해달라.
김경두 세계적으로도 컬링은 가족 스포츠다. 처음 캐나다에서 컬링을 접했을 때, 컬링의 생활스포츠, 가족스포츠적인 문화가 앞으로 대한민국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했다. 처음 컬링을 시작하면서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아니고서는 같이 시작할 방법이 없었다. 가족의 희생과 친구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의 자제들이 함께 팀을 꾸리게 됐다. 그 팀으로 훈련하고 성적을 내고,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김경석 컬링은 경기 중간중간 선수들끼리 많은 대화를 한다. 스톤을 어디에 놓을까에 대해서도 선수 4명의 의견이 모두 다를 수 있다. 어느 한 사람의 뜻대로 했다고 치자. 성공하면 괜찮지만 실패하면 팀이 분열될 여지도 있다. 그래서 컬링팀을 제대로 만들기가 어렵다. 가족들끼리 하면, 순간적으로는 충돌할 수 있더라도 팀이 붕괴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계에 많은 컬링 명가들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컬링은 팀워크 외에 멘털도 매우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김민정 컬링은 양궁이나 사격 같은 과녁 운동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과녁 운동은 강인한 멘털이 필수다. 컬링은 상대의 샷까지 다 지켜봐야 하고, 그 샷의 결과에 따라 경기 내용이 또 달라진다.

지금의 팀 킴을 만든 훈련은 무엇이었나.
김민정 선수들이 수상인명구조원(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따게 했다. 등산, 조정, 미술치료 등도 했다. 팀워크와 멘털 강화를 위한 훈련이었다. 정기적으로는 캐나다 등 세계를 다니는 월드투어를 했고,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팀을 초청해 훈련 프로그램을 함께하기도 했다.

2012년 이후 신세계가 대한컬링경기연맹에 약 100억원을 후원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 컬링팀이 상향 평준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김경두 다수의 팀들이 훈련 지원금을 받고 실력이 많이 상향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한국 컬링의 중장기적인 청사진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김민정 컬링은 아이스가 생명이다. 빙질(氷質)에 따라서 실력의 편차가 크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의 아이스는 정말 좋다. 큰 대회의 아이스일수록 컬(스톤의 회전력)이 크고 일정하게 나온다. 국내에서는 2012년이 돼서야 세계적인 수준의 아이스를 만들어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한국팀들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생각한다.

팀 킴은 어떻게 발탁됐나.
김경석 컬링 특기교사로 의성여고에 발령받았다. 동계 종목으로 컬링을 육성해보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시골에 선수가 없었고, 선수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1학년 대상으로 체험 수업을 통해 컬링이 무엇인지 접할 수 있도록 했다. 1학년 전교생이 90명이었는데, 이 중 면담을 통해 20명 정도를 선발했다. 여기에 영미·은정이가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중도에 나갔다. ‘운동하느라 성적 관리가 힘들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 와중에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영미 동생 경애가 심부름으로 학교에 왔다가 나와 만났다. 언니가 컬링을 하니 너도 해보라고 권해서 경애도 시작했다. 사람이 더 필요하니 친구를 데리고 오라고 해서 경애 친구인 선영이도 컬링에 입문했다. 경애·선영이가 의성여고에 특기자로 입학하니 영미·은정이는 졸업을 한 상태였다. 고등부와 일반팀을 한 팀으로 묶을 방법이 없었다. 주니어팀은 만 21세 미만이면 한 팀으로 훈련할 수 있었다. 2009년 주니어팀으로 넷을 묶어 연습시킨 게 지금의 팀 킴이 됐다.

당시에는 어떤 훈련을 했나.
김경석 모든 스포츠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기초 기술을 연마시키는 데 거의 70~80%의 시간을 할애했다.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는 연습, 필요한 만큼 미끄러지며 스톤 강약을 조절하는 연습 등을 했다. 2009년에 아이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가기도 했다. 다음 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을 찾아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갓 컬링을 시작한 때라 당시 선수들은 별다른 실감을 느끼지 못했을 테지만, 교실에서 가르칠 수 없는 큰 경험,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오늘날 팀 킴의 초석을 다지는 데 컬링전용경기장 설립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경두 컬링의 성장을 위해서는 컬링전용경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0년 들어 본격적으로 입지 선정을 위해 대구, 경북지역의 각 단체장들과 면담했다. 컬링장(경북컬링훈련원)은 경북컬링협회가 주최가 돼 도와 군의 지원을 받아 건립됐다. 경상북도 11억5000만원, 의성군 3억5000만원, 경북컬링협회 민간자본 16억원 등 총 31억원으로 컬링장을 완공했다. 향후 한국형 컬링클럽을 건립하는 데 참고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을 축적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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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Curling) 컬링은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농부들이 호수 빙판 위에서 돌을 던지면서 즐기던 놀이에서 유래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에 버금가는 인기 스포츠로 유명하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정확한 자세로 스톤을 던지고, 빠르게 스위핑(비질)을 하기 위해선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종류의 샷을 구사해야 해 섬세한 손기술도 요구된다.
컬링 경기 방식 컬링에서는 엔드(총 10엔드)마다 한 선수가 스톤을 2개씩 던진다. 4명으로 꾸려진 각 팀 선수들이 모두 2번씩 샷을 구사해 한 엔드에 스톤이 모두 16개 쓰인다. 각 팀의 주장 격인 스킵(skip)이 엔드의 마지막 샷을 맡는다. 상대 스톤보다 하우스 중심에 더 가까이 있는 스톤 개수가 득점이 된다. 마지막 샷으로 하우스 안의 상대 스톤을 쳐낼 수 있는 후공(後攻)이 유리하다. 이전 엔드에서 점수를 딴 팀이 다음 엔드에서는 선공을 한다.

평창에서 보여준 일본 스포츠의 리더십과 팀워크

日 여자 컬링, 끈끈한 팀워크·배려의 리더십 돋보여
여자 팀추월, 6개월간 합숙하며 최적 컨디션 만들어

박지영 인턴기자(연세대 국제학과 4년)


일본 여자 컬링 대표팀. <사진 : 연합뉴스>

2주간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평창동계올림픽이 지난달 25일, 많은 명장면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CNN 등의 외신에서 꼽은 평창 최고의 순간에는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을 딛고 은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은 대한민국 여자 컬링팀이 어김없이 포함돼 있다. 한국 여자 컬링팀의 평창동계올림픽 예선 성적은 8승 1패, 조 1위였다. 예선에서 세계 랭킹 1위인 캐나다와 컬링의 본고장인 영국 팀을 꺾으며 승승장구하던 한국 대표팀에게 유일한 1패를 안겨준 팀이 바로 일본 여자 컬링팀이었다.

스킵(주장)·리드·세컨드·서드·핍스(후보) 다섯 명의 선수로 구성돼 번갈아 스위핑(비질)과 투구를 하며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종목 특성상, 컬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다. 한국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이 각 국가의 올림픽 첫 메달이라는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 또한 오랜 시간 다져온 팀워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팀이 비교적 늦은 고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만난 것과 달리, 일본팀은 만 5세부터 컬링을 시작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평창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고국에 안기게 된 ‘팀 후지사와’의 주장 후지사와 사쓰키와 멤버들 모두 홋카이도 기타미(北見) 출신이며 전원 홋카이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기타미는 일본의 ‘컬링 시티’라고 불릴 정도로 컬링 문화가 발달해 있다. 기타미컬링홀이 유명한 관광명소이기도 할 정도다. 또한 후지사와의 경우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컬링 선수다. 같은 팀 멤버이자, 친자매인 요시다 지나미와 요시다 유리카의 어머니 또한 컬링 선수였다. 어린 나이부터 자연스럽게 컬링을 접했고,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갖추어져 있었을뿐만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서 팀워크를 다질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 대표팀 내의 불협화음으로 논란이 됐던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금메달을 거둔 것 또한 일본 대표팀이었다. 2월 21일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결승에서 일본 대표팀은 2분 53초 89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 경기는 한 팀에 세 명의 선수가 함께 트랙을 총 6바퀴 돈다. 팀 전원이 결승선을 통과한 기록으로 순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최후방 주자의 기록이 중요시되는 게임이다. 특히 공기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세 명의 선수가 한몸 같은 팀워크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대표팀이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네덜란드를 꺾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팀 그 자체였다. 일본의 한 외신에서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로 “팀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카기 미호, 사토 아야노, 다카기 나나 선수는 3년 전부터 함께 연습했으며 최적의 팀 상태를 만들기 위해 6개월간의 합숙과 특수 훈련을 거쳤다. 일본의 한 스포츠 전문지는 “1년간 대표팀에서 쭉 연습을 하는 것이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경기 후 다카기 나나 선수는 “나는 개인 종목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팀추월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면 자신 있고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밝혔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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