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단은 총 13개(금 4, 은 5, 동 4)의 메달을 획득, 일본 국내에서 열렸던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의 10개(금 5, 은 1, 동메달 4)를 넘어서는 사상 최고 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이 금메달을 거머쥔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과 일본 최초로 동메달을 따낸 여자 컬링이었다. 도약의 키워드는 ‘결속력’과 ‘분석력’이었다.

여자 팀추월은 3명이 팀을 짜 출전하는데, 일본은 새 종목이었던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한 다카기 나나(高木菜那·25)와 1500m 은(銀), 1000m 동(銅) 등 2개의 개인 메달을 딴 다카기 미호(高木美帆·23) 자매를 출전 멤버로 고정했다. 레이스 중에 3회 선두를 교체하는데, 처음과 끝(4번째)의 선두를 다카기 미호, 3번째 선두를 다카기 나나가 담당하는 형태를 계속 유지했다. 2번째 선두는 대표팀의 요한 데이비드(38) 코치가 사토 아야노(佐藤綾·21)와 기쿠치 아야카(菊池彩花·30) 가운데 수시로 바꿔 출전시키는 전략을 썼다. 작년 11~12월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에서는 사토와 기쿠치를 기용한 각각의 레이스 모두에서 세계 기록을 경신, 선수층을 두껍게 한 뒤 평창올림픽에 임했다.

2번째의 선두를 두 명이 나눠 맡는 전략은 적중했다. 준결승과 결승 두 경기가 열린 지난달 21일 데이비드 코치는 준결승에 기쿠치, 결승에 사토를 넣었다. 사토를 준결승에 쓰지 않고 남겨 놓은 것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결승에서 사토의 힘을 살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팀 최연소인 사토는 이번 대회가 올림픽 첫 출전이다. 지난달 10일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에 처음 도입된 3000m에서 8위에 올랐다. 긴장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 첫 레이스에서도 “내 페이스로 탈 수 있었다” “(내게) 100점 만점을 주고 싶다”며 웃는 얼굴로 말하는 등 강심장이 돋보였다. 그렇지만 사토는 스태미너에서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준결승에 기쿠치를 출전시켰고 사토는 만전의 상태에서 결승에 전념했다. 데이비드 코치는 “기쿠치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고, 기쿠치 자신도 “결승에서 (다른 멤버가) 최고의 레이스를 펼치도록 돕겠다”며 준결승에서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네덜란드와의 결승에서는 다카기 미호가 초반부터 가속하며 레이스를 주도했다. 개인 종목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보여준 다카기 미호의 속도에 힘입어 다카기 나나와 사토도 총 6바퀴 중 모든 바퀴에서 28초대를 유지했다. 안정된 기량으로 올림픽 신기록인 2분 53초 89를 기록했다. 후반에 힘을 내지 못한 네덜란드를 1초 59의 큰 차이로 완파했다.


일본 컬링팀의 숨은 주역은 모토하시

각자 역할을 이해하고 레이스에 임하는 자세는 숙식을 함께하는 나날 속에 길러졌다. 팀추월 멤버는 일본 빙상연맹이 소치올림픽 후 출범시킨 국가대표팀에서 선발됐다. 소치올림픽에서 일본 스피드 스케이팅 팀이 딴 메달은 제로였다. 그 반성으로 각 선수가 소속된 실업팀·대학팀 등에 맡기던 체제를 일신해 일본 빙상연맹이 각각의 팀의 울타리를 제거해 통합 운영하는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는 유력 선수 대부분이 국가대표팀에 들어가 있다. 대표팀 활동은 연간 약 300일. 이런 환경 덕분에 특히 팀추월 선수들은 선두 교체의 시기와 서로의 페이스에 맞춰서 경기를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본 빙상연맹은 팀추월이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채용된 역사가 짧은 종목임에 주목하고, 경기 중 멤버 3명의 위치와 간격을 깊이 연구하는 등 다른 나라를 이길 방법을 계획했다. 과학 인력이 중심이 돼 선수의 체력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특히 공기 저항 줄이기에 주력했다. 도쿄의 국립 스포츠과학 센터에 있는 풍동시설(강한 바람을 인공적으로 불게 하는 실험 장치)을 사용해 실제 레이스 중에 받는 풍압을 재현했다. 이를 통해 3명의 선수 줄이 좌우로 40㎝만 어긋나도 강한 공기 저항을 받는 것, 앞뒤 선수 간 거리가 1m 30㎝ 정도까지는 공기 저항이 별로 커지지 않는 것 등을 확인했다. 이런 과학 데이터에 근거해 각 선수가 옆으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따라 달리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 연습의 결과물 정점은 평창올림픽 결승에서 나타났다.

여자 컬링 일본 대표 팀 쾌거의 숨은 주역은 이 팀을 창설한 모토하시 마리(本橋麻里·31)다. 모토하시는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 두 올림픽에 출전해 일본 국내에서 인기를 모은 선수다. 밴쿠버동계올림픽 이후 소속팀을 떠나 고향 홋카이도 기타미(北見)시로 돌아와 일본에서는 드문 컬링 클럽팀 설립에 착수했다.

기타미시는 아시아 최초의 실내 컬링 경기장을 만드는 등 일본 컬링의 발상지라는 홋카이도에서도 특히 컬링 보급이 왕성한 곳이었다. 그러나 모토하시가 어른이 된 이후에는 유력 팀이 없는 상태였고 선수들도 차례차례 다른 지역 팀으로 유출되고 있었다. 모토하시는 “5~10년 갈 팀을 고향에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후원금을 모으러 뛰어다녔다. 그 덕분에 현재는 약 20개 기업이 팀을 후원하고 있다.

모토하시는 지원자 확보뿐 아니라 ‘세계에서 싸울 수 있는 팀’ 만들기를 목표로 선수 영입에 나섰다. 팀 사령탑인 스킵의 후지사와 사쓰키(藤澤五月·26)도 그렇게 영입됐다. 후지사와는 2014년 소치올림픽 출전이 유력시됐던 소속 팀이 올림픽행을 놓쳐 실의에 빠져 있었다. 2014년 봄, 평창올림픽 팀 만들기를 시작한 모토하시가 후지사와를 식사 자리에 불러 “우리와 함께 다음을 준비하자”며 이적을 권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일본 여자 팀추월 선수들의 경기 모습.

해외 초빙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큰 역할

모토하시는 2015년 장남을 출산한 뒤 지원업무에 집중했다. 2016년 세계선수권에서 팀이 은메달을 따내며 평창올림픽 출전의 발판을 굳혔다. 그 뒤 모토하시는 선수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젊은 선수들이 부상했고, 결국 자신의 3번째 올림픽에 선수 대신 코치로 가게 됐다. 그는 자신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설움을 잊고, 얼음 상태 점검이나 하프 타임 때 선수의 영양 보급용 과일이나 과자 준비 등 끝까지 팀 지원에 만전을 기했다.

그의 헌신적 자세는 팀에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리드의 요시다 유리카(吉田夕梨花·24)는 “모토하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얼음 상태에서 경기할 수 있는지에 골몰했다.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기 쉬운 상황에서도 ‘괜찮아’ ‘이렇게 해보면 어때?’라고 말을 걸어주었다”고 감사해 했다.

전술 면에서 팀이 갈고닦은 것은 얼음의 상황을 읽는 ‘아이스 리딩’이었다. 모토하시의 노력으로 스폰서가 늘면서 팀은 지난해 가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몇개월 단위로 원정을 가 링크마다 다른 얼음에서 싸우는 법을 배워 나갔다.

해외에서 초청한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팀의 데이비드 코치는 강국 네덜란드 출신이다. 국가대표팀 출범 이후 일본 빙상연맹은 지도자 선정에 난항을 겪었지만, 2015년 5월 일본 선수 지도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코치가 부임하면서 경기력 강화 방안이 궤도에 올랐다. 체지방 관리와 식사 제한 등 세세한 부분까지 따지는 지도에 처음엔 선수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성적이 향상되면서 반발도 줄어들었다. 100㎞ 단위의 자전거 달리기 등 가혹한 훈련을 부과하는 한편,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효과적으로 건넸다. 이번 대회에서도 다카기 미호를 비롯한 많은 선수가 레이스 뒤 데이비드 코치와 얼싸안고 기쁨을 공유한 광경을 보면 코치·선수 간 신뢰가 강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컬링 국가대표팀의 거점인 훗카이도는 2013년 유력 선수 대상의 ‘컬링 아카데미’를 열면서 컬링 본고장 캐나다에서 제임스 린드(33)를 코치로 초빙했다. 린드는 평창올림픽에도 일본 대표팀 코치로 동행했다. 모토하시는 “그전까지는 해외 정보를 간접적으로밖에 얻을 수 없었지만, 린드 코치가 온 이후 ‘캐나다에서는 이런 것까지 하고 있다’는 등의 상세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며 효과를 인정했다.


▒ 이와카베 슌(岩壁峻)
마이니치신문 스포츠부 기자, 스모·복싱 담당 등을 거쳐 평창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과 컬링을 주로 담당.

이와카베 슌 마이니치신문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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