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은 조직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늘 선수들에게 “우리는 하나”라고 말한다. 선수 간 소통도 강조한다. 소통이 곧 팀워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진 : C영상미디어>

‘베트남의 별이 되다.’ 최근 박항서(59)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주가를 단번에 보여주는 말이다. 사실 5개월 전만 해도 박 감독은 국내 축구계에서 이른바 ‘밀려난’ 지도자로 여겨졌다. 1부 리그도 아닌 3부 리그 창원시청 감독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25일 베트남 대표팀(성인, 23세 이하 겸임) 감독으로 부임, 단 3개월 만에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냈다. 12월 ‘M-150컵’에 출전, 라이벌 태국을 10년 만에 격파했다. M-150컵은 일본·태국·북한·우즈베키스탄·베트남·미얀마 등 아시아 6개국 대표팀이 참가하는 국제 축구대회다. ‘태국의 박카스’ M-150을 만드는 오솟스파(Osotspa)가 후원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 나가 동남아시아 최초로 결승에 진출했다. 현지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2월 20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호텔 프리마에서 박항서 감독을 만났다. “베트남 축구의 성장을 이끈 리더십을 알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박 감독이 답했다.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이야기해보죠.” 풍부한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동시에 부드러웠다. 팀을 이끌 때 필요한 카리스마와 박 감독 특유의 친화력이 묻어났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축구 대표팀 수석 코치를 맡으며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당시 성적은 4강. 역대 최고였다. 대한민국은 붉은 물결로 물들었었다.

박 감독이 매고 있는 붉은색 넥타이가 눈에 띄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 놓인 ‘금성홍기(베트남 국기)’와 잘 어울렸다. 반면 나란히 있는 태극기는 뭔가 조금 쓸쓸해 보였다. 한국에서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은 지도자가 베트남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어서일까. 우리는 그를 왜 못 알아 봤을까.

‘이코노미조선’은 박 감독이 이룬 성과를 두 가지 포인트로 접근했다. 첫 번째는 감독·리더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최고의 리더십은 무엇인가’다. 박 감독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이란 성과를 냈다. 특히 베트남은 선수층이 얇고, 축구협회의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대회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진정한 리더십이 부족하고 제한적인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 최선의 성과를 내는 것에 있다면,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보여준 리더십만큼 그 정의에 부합되는 사례도 많지 않다.

두 번째는 풍부한 경험을 지닌 감독·리더의 가치다. 박 감독은 월드컵, 한국 프로 리그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축구계에서 밀려났다. 나이가 들면서 기회가 제한됐다. 문제는 축구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경제 전반에서 경험 많은 리더, 전문가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충분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그는 도전 정신을 내세우며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고, 보란 듯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박 감독의 사례는 국내 스포츠계뿐 아니라 모든 산업과 사회 각 분야에 큰 시사점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베트남 거리가 온통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로 물들었다.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한 후 1월 28일 귀국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후 가장 먼저 무엇을 했나.
“(‘손자병법’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라는 말대로, 베트남 감독을 맡은 직후 베트남 축구의 약점을 알아봤다. 베트남축구협회 관계자들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은 모두 똑같았다. ‘베트남 선수들은 체력이 약합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체력이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이터가 하나도 없었다. 선수들에게도 물었다. 선배 때부터 체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고 답하더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나.
“인바디(체성분) 측정을 했다. 크게 세 가지 결과를 얻었다. 첫째, 상체 근력이 약했다. 둘째, 양쪽 다리의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았다. 이럴 경우 부상 위험이 있다. 셋째, 체지방이 부족했다. 너무 말랐다는 뜻이다. 체력이 약하다는 것과 체격이 왜소하다는 것을 헷갈리고 있었다. 선수들의 체력과 기술, 정신력을 강화하고 전술 훈련을 한 번에 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코치들과 회의를 한 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로 했다. 우선 저녁 훈련 시간을 쪼개 하루 40분, 일주일에 4회 상체 근력 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과거 묵었던 호텔이 아닌 축구협회 트레이닝센터를 숙소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트레이닝센터는 시설이 낡아서 대표팀 선수들이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호텔의 편안함보다 선수의 영양 섭취가 먼저라고 판단했다. 협회의 재정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협회에 숙소 비용을 줄이고 고단백질의 식단(우유·두부·생선·스테이크 등)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서 박 감독은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설명했다. 팀·조직에 변화를 줄 때는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박 감독은 “훈련을 할 때나 식단을 바꿀 때 선수들이 왜 이런 훈련을 하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베트남 문화를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했다. 감독이라는 권위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베트남 축구와 선수를 먼저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박 감독은 “베트남 주식인 쌀국수도 함께 먹고, 선수들이 좋아하는 토스트도 즐겼다”며 “선수들과 함께해야 그들을 이해하고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진 수석 코치와 함께 갔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물론이다. 이영진 수석 코치와는 선수 시절부터 함께했다. 지도자 생활도 같이했고,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 함께 팀을 이끌 리더가 필요했다. 더욱이 정보가 별로 없는 베트남에서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이영진 수석 코치가 떠올랐고, 그도 흔쾌히 따랐다. 이후 배명호 피지컬 코치도 불렀다.”

베트남 대표팀 코치진을 보면, 현지 코치도 3명이 있다.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
“내가 원하는 한국 코치 2명을 데리고 갔다. 이후 베트남 현지 코치진을 구성해야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베트남 축구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만으로 팀을 이끌기에는 부족했다. 협회로부터 추천을 받았고, 현지 코치 3명을 추가 영입했다. 현지 코치 중 1명은 베트남 축구와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협회와 소통하는 일도 맡았다. 나머지 2명은 필드 코치와 골키퍼 전문 코치다. 필드 코치는 베트남 리그 감독 출신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며 배운다는 개념이 강했다. 그렇게 5명의 코치진을 구성했다.”

선수 선발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기준이 있나.
“베트남은 10년 전 유소년 축구 육성에 나섰다. 우리 대표팀 중 12명이 바로 이 프로그램으로 성장한 선수들이다. 그렇다고 이 12명 선수를 무조건 뽑은 것은 아니다. 대표팀을 맡기 전 협회와 약속한 게 하나 있다. 선수 선발 전권을 내게 위임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선수를 선발하고, 팀을 이끌 수 있지 않겠나. 우선 내가 생각하는 전술을 이해하고, 그 포지션을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뽑았다. 감독마다 생각하는 전술과 기대하는 포지션별 역할이 다르다. 미드필더를 예로 들어보자. 난 미드필더는 민첩성이 뛰어나고, 공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골키퍼의 경우에는 우직함을 본다. 그래야 함께 뛰는 선수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포지션별로 2배수의 선수를 뽑는 것도 중요하다. 선수가 다치거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 간 경쟁 관계를 만들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를 위한 긍정적인 경쟁 관계여야 한다. 조직력 강화 측면으로 중앙 수비수와 측면 수비수,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등 가까운 포지션끼리 유기적인 역할을 잘할 수 있는지도 체크했다. 팀 공헌도, 사회성도 고려했다. 선수들과 얼마나 친밀하게 훈련하고, 경기를 할 수 있느냐다. 내가 팀을 이끌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우리는 하나’라는 점이다. 동질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팀워크가 살아난다. 같은 기량을 지닌 선수라면 팀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선수를 뽑았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선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

12월 9일 ‘M-150컵’ 미얀마 경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4일 뒤 우즈베키스탄에 패하면서 베트남 현지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럽 감독이 아닌 아시아권 감독을 영입했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처음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냉소적인 여론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유럽 감독이 아니라 아시아권 감독이라는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결과로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표팀을 2017년 12월 1일 첫 소집했고, 8일 만에 ‘M-150컵’에 출전했다. 첫 상대인 미얀마를 4 대 0으로 이겼다. 그런데 두 번째 경기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2 대 1로 졌다. 이후 베트남 현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선수를 많이 못 써봐서 새로운 선수를 테스트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었는데,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이기는 경기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이후 12월 15일 태국을 10년 만에 이기면서 대표팀 감독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태국은 베트남의 앙숙으로, 한국과 일본 (축구)관계라고 생각하면 쉽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선수 훈련, 팀 전술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해당 국가의 축구 인기가 높으면 더 그렇다. 감독이 팀을 이끄는 철학과 방향이 있는데, 처음부터 원하는 성과를 얻기는 힘들다. 패하면서 강해지는 팀도 많다. 특히 베트남 같은 약팀은 더 그렇다. 그럴 때마다 언론의 비판을 받는데, 이때 일관성을 유지하며 팀을 끌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박 감독이 수비 전술을 포백(4back·중앙에 수비 2명과 양측 사이드에 수비 2명을 두는 전술)에서 스리백(3back·중앙 수비 3명)으로 바꿨을 때도 현지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물론 태국 경기 전,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신뢰를 얻기 전이었다.

수비를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바꿨는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밀어붙였다. 그 이유는.
“내가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면서 중점을 둔 것은 조직력 강화다. 이를 위해 수비 전술을 기존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바꿨다. 실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 수비를 두껍게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언뜻 보기에는 포백이 수비가 더 많아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양측 미드필더 2명이 중앙 수비로 내려오기 때문에 수비가 5명이 된다. 스리백을 기본 전술로 하고, 수비를 할 때는 파이브백(5back)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지 언론은 내가 스리백을 고집한다고 비판했다. 베트남 리그에선 대부분 팀이 포백을 사용한다. 스리백을 구시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자원(선수)으로 AFC U-23 챔피언십에서 상대팀과 공격 대 공격 등 단순하게 붙는다면, 이기기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16개 본선 팀 중 베트남은 13·14위 정도의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그렇다고 포백 전술을 아예 버린 것은 아니다. 포백은 각 팀에서 쓰고 있기 때문에 선수 대부분이 포백 전술을 인지하고 있다. 다양한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고, 포백도 함께 연습했다. 전술 훈련 시간 중 80%는 스리백에, 나머지 20%는 포백에 투자했다.”

선수와의 친화력과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트남 선수들과 소통은 어떻게 했나.
“친화력? 사실 언론에서 친화력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난 잘 모르겠다. 우선 내가 한국에서 왔으니 베트남 선수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물론 통역을 해줬지만 내 감정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답은 하나였다. 선수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스킨십이다. 칭찬을 할 때도 단순히 말만 하지 않았다. 볼을 쓰다듬거나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잘못했을 때는 안아주며 토닥거렸다. 그러면 선수들이 이를 느끼고, ‘생큐(Thank you)’ 또는 ‘소리(Sorry)’라고 답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내게 ‘짜(Cha·베트남어로 아빠라는 뜻)’라고 부르기도 한다. 훈련이나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이 의무실에 모이는데, 이곳에 가서 장난도 많이 쳤다.”

선수들을 감싸고, 따뜻하게 대할 수만은 없다. 팀을 이끌려면 엄할 때도 있어야 하고, 규칙도 필요할 텐데.
“선수들에게 집중력과 선수 간 소통을 강조했다. 훈련이든 실전 경기든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첫째, 시간 엄수다. 둘째, 휴대전화를 훈련장, 회의장, 식사 시간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 앞에 테이블을 만들고, 두고 오도록 했다. 훈련을 앞두고 전화를 하는 선수가 많았는데, 이는 집중력을 높이는 데 방해가 된다. 또 식사 시간에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선수 간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팀에 녹아들어 있던 개인주의를 깰 수 있었다.”

또 다른 규칙은.
“통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훈련 시간에 선수나 코치 모두 똑같은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도 만들었다. 물론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에 주장이 유니폼을 정하고 공지하면 모두 그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그러면 선수들은 ‘우리가 한 팀’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긴장감도 유지할 수 있다. ‘오늘은 어떤 유니폼을 입지’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훈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훈련 전 약간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부상도 방지할 수 있고, 집중력도 높일 수 있다. 이런 규칙을 어길 시에는 벌금을 내도록 했다. 나도 두 번 어겨 20만동(약 1만원)과 40만동(약 2만원)의 벌금을 냈다.”

상대팀을 분석, 이를 대비한 전략을 짜는 것도 승리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코치의 비디오 분석 능력이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이란 성과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고 말했지만 AFC U-23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전 조별리그(한국·호주·시리아) 이후 경기는 준비하지 못했다. 팀을 만들면서 동시에 상대팀을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의 1차 목표도 조별리그 통과였고, 2차 목표인 8강 이후는 경기를 치르면서 준비하기로 했다. 이때 다음 상대팀의 90분 경기 전체를 비디오로 촬영하고, 20~30분으로 짧게 분석한 영상을 가지고 전략을 짰다. 이런 방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이영진 수석 코치와 배명호 피지컬 코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분석 영상을 선수들에게 보여주며 우리의 공격 루트와 수비 전술, 상대팀의 약점 등을 설명했고, AFC U-23 챔피언십 본선 토너먼트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 훈련 중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 : DJ매니지먼트>

박 감독은 베트남으로 가기 전 2017년 10월 한국 축구 3부 리그인 창원시청 사령탑을 맡았었다. 국내 축구계에선 이런 박 감독의 행보(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등 1부 리그 감독→3부 리그 감독)를 두고 ‘밀려났다’고 떠들어댔다.

한국은 축구계는 물론 사회·경제 전반에서 경험의 가치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리더가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박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베트남축구협회는 박 감독의 풍부한 경험을 이유로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겼다. 박 감독은 2002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월드컵을 경험했고, 같은 해 대표팀 감독(부산아시안게임)을 맡았다. 물론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면서 초반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성과를 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에 가기 전 경남 FC, 상주 상무 등 한국 프로 축구팀을 이끌었다. 사진은 2013년 7월 상주 상무 감독 시절. <사진 : 조선일보 DB>

2017년 10월 창원시청 감독을 맡았을 당시 축구계에서 ‘밀려났다’는 평을 들었다. 당시 어떤 생각을 했나.
“내게 ‘꼭 3부 리그까지 가야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난 생각이 달랐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축구였고, 계속 축구(감독)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창원시청으로 갔고,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 축구 시장(감독) 흐름을 보면, 젊고 유능한 감독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50대 후반~60대 감독은 밀려나고 있다. 나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프로 축구 감독을 쭉 하다가 3부 리그 감독을 맡게 됐고 ‘그렇게 흐름을 따라가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판단이 섰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축구를 더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해외 축구 시장을 바라봤다. 축구 인생 마지막을 잘 장식해 보고 싶었고,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동료·후배 감독에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고 싶다는 점도 해외진출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축구 감독은 선수로 뛰다가 감독이 된다. 그런데 이 시장이 너무 좁다. 특히 코치는 많은데 감독은 별로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프로 축구팀이 많지 않다는 부분도 있다. 꼭 베트남이 아니더라도 태국·캄보디아·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축구 시장을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영진 수석 코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뭔가 되지 않겠나’라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됐다. 당시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나.
“아팠다. 당시 내겐 엄청난 시련이었다. ‘이제는 끝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큰 경험과 추억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라. 기본적으로 1년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후배 감독들에게도 ‘감독을 계속 하려면 1년 이상 쉴 생각은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나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감독으로서 현장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후 2003년 1월 포항 스틸러스 수석 코치로 갔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감독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젊은 감독과 비교해보자. 그들은 새로운 기법, 트렌드에 잘 적응한다. 정보도 빠르게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장, 즉 풍부한 경험을 지닌 감독은 이와는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축구 경기는 1~2분 안에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전략을 짜며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많다.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는 책으로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실전에서 익혀야 한다. 또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 방안을 찾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들은 주로 실패를 통해 배웠고, 이를 데이터화해 실전에서 활용한다.”


▒ 박항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 럭키금성(현 FC 서울) 선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2002년 월드컵) 수석 코치, 부산아시안 게임 대표팀 감독, 경남 FC·상주 상무·창원시청 감독


plus point

“히딩크에게 많은 것 배웠다”


2014년 7월 열린 한국 프로축구 올스타전에 참석한 박항서(왼쪽) 감독과 히딩크. <사진 : 조선일보 DB>

“성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는 절대로 선수를 만들어서 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있는 선수를 어떻게 활용하고, 팀 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박항서 감독이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에게 들은 조언이다.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에게 지도자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성인 팀을 이끌 때는 선수보다는 팀, 조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고려해 장·단기적인 차원에서 전술과 체력, 기술 부문 훈련 계획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박 감독은 히딩크의 ‘역발상’도 배울 점으로 꼽았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 8강에서 스페인과 붙었다. 0 대 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를 했는데, 히딩크의 역발상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보통 감독들은 승부차기에 나설 선수를 뽑을 때 경험이 풍부한지, 강한 심장을 지녔는지 두 가지를 본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히딩크가 박지성 선수를 승부차기에 나서라고 했다. 박 선수는 당시까지만 해도 승부차기를 한 경험이 없었다. 코치진이 우려를 표했다. 그러자 히딩크가 말했다. “지금까지 승부차기를 한 번도 안 했으니 아무도 실력을 모르지 않나. 그리고 이번에 넣으면 성공률이 100%다. 할 수 있다.” 박 선수는 골을 넣었고 결국 한국은 스페인에 승리했다.


plus point

스포츠 감독과 기업 최고경영자(CEO)
조직 내 신뢰, 비전 제시, 전략 수립 똑같아


이병철(맨 왼쪽) 삼성그룹 창업주는 인재를 고용할 때 못 미더운 사람은 아예 쓰지 않고 쓰거든 믿고 맡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스포츠 감독은 팀·조직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역할과 유사하다.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한 과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선 비전과 목표를 설정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경쟁 상대를 분석하고 시장을 조사한다. 뛰어난 인재도 선발하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개개인이 아닌 조직으로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긴다. 물론 조직 내에선 신뢰·배려·신념이라는 요인이 결합돼 강력한 팀워크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승리하고, 1등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이 과정 중 가장 중요한 3개를 꼽자면 단연 신뢰·비전·전략이다. 리더십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요인은 신뢰다. 신뢰를 받는 리더와 그렇지 못한 리더의 차이는 분명하다. 전자의 경우 조직원에게 지시를 하면 그들은 두말없이 따를 것이다. 좋은 성과도 기대된다. 후자라면 ‘왜 나한테 시키지’라는 불만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리더가 조직원을 신뢰하면 그들은 자신감을 얻고 100% 실력을 발휘한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는 인재를 고용할 때 못 미더운 사람은 아예 쓰지 않고 쓰거든 믿고 맡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리더에게는 비전과 목표도 중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리더가 비전을 제시할 때 단순 회사 성과가 아닌 구성원의 성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전략 수립은 경쟁 상대와 시장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한다. 스포츠의 경우 상대팀의 강점은 물론 약점 등을 치밀하게 분석한 후 전략을 짜고 경기에 나선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강준호 서울대 스포츠경영학 교수는 “감독이 해당 종목의 경쟁 상황과 상대팀에 따라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듯이 CEO도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과 경쟁사의 움직임을 분석해 맞춤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