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포포비치 감독(맨 오른쪽)이 경기 도중 마누 지노빌리(맨 왼쪽)와 토니 파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 :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뉴스>

‘인구 기준으로 도내 3위의 중소도시에 본사를 둔 기업이 훨씬 몸집이 큰 대도시 소재 기업들과 경쟁하며 20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핵심 임원들의 국적이 다양한데도 팀워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기업이라면 대략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주식회사 스퍼스’를 굴지의 기업으로 키운 최고경영자(CEO)는 NBA 역사상 최고 명장 중 한 명이면서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다. 물론 구단의 진짜 CEO(구단주)는 따로 있지만, 선수들의 경기력과 성적에 감독이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스포츠계에서 꾸준함으로 포포비치 감독의 경쟁자를 찾기는 어렵다. 1996~1997시즌 중간에 감독을 맡아 이듬해부터 지난 시즌까지 20년 연속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스퍼스는 이 기간에 리그 우승 5번, 서부 콘퍼런스 우승 6번을 차지했고, 포포비치는 3번이나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어떤 선수도 팀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현재 자타공인 NBA 최고 강팀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다. 워리어스는 리그 최고의 슈터 스티븐 커리를 앞세워 지난 3년간 2번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5~2016시즌 사상 처음으로 73승(9패) 고지를 밟으며 역대 최고 승률(0.890)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이끈 시카고 불스가 1995~1996시즌에 세운 72승(10패)이었다.

워리어스를 이끄는 스티브 커 감독도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그래도 아직까지 현역 리그 최고의 감독이 누군지 묻는 질문에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포포비치다. 커 감독은 선수 시절 다섯 차례 우승 가운데 1999년과 2003년 두 번을 스퍼스 소속으로 포포비치의 지도 아래 이뤘다. 공격 전술에서는 커가, 수비 전술에서는 포포비치가 각각 최고 감독으로 꼽힌다.

역대 NBA 감독 중에서 통산 성적으로 포포비치와 견줄 만한 감독은 각각 보스턴 셀틱스와 로스앤젤레스(LA) 레이커스, 시카고 불스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레드 아우어바흐, 팻 라일리, 필 잭슨 정도다. 잭슨은 불스에서 6회, 레이커스에서 5회 등 총 11번의 리그 우승을 일구며 역대 최다 우승 감독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승 횟수만으로 포포비치와 잭슨을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스턴과 시카고, LA는 뉴욕과 더불어 미국 프로 스포츠를 대표하는 ‘빅마켓’ 시장으로, 풍부한 자금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스타급 선수들의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반면 샌안토니오는 같은 텍사스주에서도 휴스턴과 댈러스(미국 프로풋볼 최고 인기 구단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연고지)에 가린 ‘변방’ 이미지가 강했다.

전통적으로 빅마켓 팀들은 마이클 조던(전 불스)과 래리 버드(전 셀틱스), 코비 브라이언트(전 레이커스) 등 수퍼스타의 활약에 크게 의존했다. 반면 스퍼스의 경우 팀 던컨이란 역대 최고 파워포워드의 꾸준한 활약에도 팀의 무게중심은 늘 포포비치 감독의 지도력 쪽으로 기울어졌다.

스퍼스는 전성기가 한참 지난 던컨이 출전 시간과 성적 모두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던 2015~2016시즌에 역대 최고 성적(67승 15패)을 기록했다. 던컨이 은퇴한 지난 시즌에도 정규리그 61승 21패, 서부 콘퍼런스 2위를 기록했다. 포포비치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과 ‘시스템 농구’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포포비치 리더십의 양대 축은 시스템과 소통이다. 스타 플레이어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화려한 농구가 아닌 수비와 리바운드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전술을 바꿔가며 경기를 풀어간다. 2000년대 초반에는 강력한 수비와 골밑 농구로 ‘스퍼스 왕조’를 건설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원활한 볼 흐름을 바탕으로 하는 ‘모션 오펜스’를 토대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포포비치 감독은 어떤 경우에도 수퍼스타라고 특별대우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도 늘 “어떤 선수도 ‘팀’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며 “팀플레이를 할 수 없다면 출전 시간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가 누구건 상관 없다”고 강조한다. 스퍼스 감독으로 부임해 ‘악동’ 이미지가 강했던 리바운드왕 데니스 로드맨을 불스로 트레이드시킨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워리어스의 커 감독은 이와 관련해 “포포비치가 던컨을 대하는 장면을 보면 던컨이 수퍼스타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맡은 임무에 소홀하면 가차 없이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스퍼스의 2002~2003 시즌 우승의 두 주역인 데이비드 로빈슨(오른쪽)과 팀 던컨. <사진 : 트위터 캡처>

선수들 스스로 생각하도록 지적으로 자극

때로는 원칙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보인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체력 안배를 위해 전국적으로 중계되는 중요 경기에 주전 4명을 모두 출전시키지 않아 비난을 사면서 25만달러(약 2억7000만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고, 던컨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면서 그 이유를 ‘나이가 들어서(old)’라고 기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포포비치 감독의 또 다른 강점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 능력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소통 능력이다. 스퍼스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은퇴한 던컨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출신이고 그와 함께 오랜 시간 ‘삼인조’를 형성해 온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빌리는 각각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이렇듯 성장 배경이 다른 선수들을 이끌고 한결같이 좋은 성적을 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성이 강한 다국적 스타들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경기 외적인 유대감 형성이 중요한 이유다. 이를 위한 포포비치만의 노하우가 있다.

포포비치 감독은 오리건주에 있는 와이너리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소문난 와인 애호가이자 푸디(Foodie·식도락가)다. 원정경기가 있을 때면 선수들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지역 맛집 정보를 직접 챙긴다. 와인과 음식은 선수들이나 구단 관계자와의 ‘열린 소통’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다.

경기 운영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아버지처럼 자상하다. 말수는 적지만 적절한 질문을 통해 관심을 표현하며 선수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필요에 따라 지적하더라도 감정을 섞지 않고 요점만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선수들이 머리를 쓰도록 자극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역할이다. 한 번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흑인 인권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며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양한 이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고 대화를 통해 경기 외적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경기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이 같은 리더십 스킬은 성장 및 교육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포포비치는 인디애나주 이스트 시카고에서 세르비아계 아버지와 크로아티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공군사관학교에서 소련학을 전공했고, 첩보원 과정을 이수하며 한때 미 중앙정보국(CIA) 근무를 고민하기도 했다.

포포비치는 미국의 스포츠 기자들 사이에서 인터뷰하기 힘든 감독으로 꼽힌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건 재미 없는 단답형 대답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기자: 첫 쿼터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것 같은데 이유가 뭔가요?
포포비치: 상대편이 앞서고 우리가 지고 있기 때문이죠.
기자: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포포비치: 우리 수비가 형편없어서 골을 많이 먹었어요.

성공적인 세대교체로 내년 시즌까지 21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해 보이는 지금, 포포비치와 스퍼스표 시스템 농구는 물론 이런 괴팍함조차 어느덧 농구팬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됐다.


plus point

농구 대통령을 미국 대통령으로?


포포비치 감독을 대통령 선거에 내보내자는 문구를 담은 티셔츠 디자인. <사진 : 인터넷 캡쳐>

NBA 감독으로 보여준 포포비치의 탁월한 지도력에 감명받아 그가 미국의 차기 대선 후보로 나서주길 바라는 이들도 있다. 포포비치 감독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은 몇 년 전부터 계속 있었다. 지난 미국 대선의 초반 풍향계로 관심을 모은 뉴햄프셔 예비경선(프라이머리) 종료 직후인 2016년 2월 미국 경제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게이는 ‘포포비치 대통령 만들기 운동(The Popovich for President Movement)’ 제하의 칼럼을 통해 포포비치의 리더십과 성과 등을 언급하며 그가 미국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을 두루 갖췄다고 강조했다.

평소 말이 짧기로 유명한 포포비치 감독이지만 인종차별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트럼프가 했던 온갖 외국인 혐오,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 여성 혐오적 발언들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 지금 무슬림, 여성,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 장애인이라면 어떨지 상상할 수 없다”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포포비치는 아직 정계 입문에 대한 생각을 밝히지 않고 있다. 관련 질문을 받으면 서둘러 자리를 뜨거나 화제를 돌리곤 했다. 하지만 NBA를 중심으로 벌써 지지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스티브 커 감독이 나섰다. 그는 포포비치에 대해 “정직하고 순수하다”며 “이것은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인 만큼 그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그가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스티븐 커리도 “포포비치가 후보가 된다면 아마도 NBA를 위해서도 대단한 일이 될 것이며 이 나라를 위해서도 나은 일이 될 것”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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