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컵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직후 테오 엡스타인 컵스 사장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시카고 컵스의 사장(President)인 테오 엡스타인을 미국 대통령(President)으로!’

2016년 11월 2일 미국 메이저리그(프로야구) 우승팀을 가리는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시카고 컵스가 승리하자 등장한 구호다. 그만큼 미국인들이 엡스타인의 리더십에 열광했다는 뜻이다.

테오 엡스타인(Theo Epstein)이 컵스 사장에 부임한 2011년에만 해도 컵스가 몇 년 뒤에 우승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컵스는 2011시즌에 91패를 하며 비전이 없는 팀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엡스타인 사장은 그런 컵스를 불과 5년 만에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컵스가 ‘염소의 저주’를 깨고 10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이듬해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2017 위대한 세계 지도자’ 50명을 발표하며 엡스타인을 1위에 선정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프란치스코 교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등 쟁쟁한 글로벌 리더들이 엡스타인의 뒤에 머물렀다. 염소의 저주란 컵스가 1945년 월드시리즈 경기에 염소와 함께 입장하려 했던 관객의 입장을 거부한 이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징크스를 뜻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수석전략가였던 데이비드 엑셀로드는 미국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레드삭스와 컵스에서 보여준 엡스타인의 매니지먼트 기술이라면 정치판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가 원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통계로 분석하고 인성으로 평가한다

엡스타인은 메이저리그 최연소 단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에 임명된 2002년, 그의 나이는 29세에 불과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보스턴 사람들은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예일대 출신의 풋내기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엡스타인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일할 때부터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분석에 능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통계를 활용해 야구선수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술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이 적극 활용하면서 유행이 됐다. 컵스 사장에 새로 취임한 래리 루치노는 세이버메트릭스를 기반으로 팀을 재건하려 했고, 젊은 피인 엡스타인을 전격 발탁했다.

엡스타인은 세이버메트릭스의 창시자로 불리는 빌 제임스를 고문으로 영입했고, 500만달러 이하의 낮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 위주로 선수단을 개편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데이비드 오티스였다. 오티스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방출됐던 선수다. 하지만 엡스타인은 오티스의 공격력에 주목했고 125만달러에 영입했다. 그해 오티스는 31홈런, 101타점을 기록했다. 오티스는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우승한 2004년 포스트시즌에서 최고의 활약을 했다. 밤비노의 저주란, 레드삭스가 1920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시킨 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을 루스의 애칭인 밤비노(이탈리아어로 갓난아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엡스타인은 컵스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선수 평가에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기술을 쓰고 있다. 예컨대 엡스타인은 선수들의 투구 동작이나 타격 동작을 3D(차원) 영상으로 촬영해서 좋았을 때와 좋지 않았을 때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마커리스 모션 픽처’ 기술을 처음 도입했다.

엡스타인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통계나 과학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선수의 인성도 중요하게 본다고 말한다.

특히 엡스타인은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를 중요하게 본다. 그는 “최고의 타자도 열 번의 타석에 일곱 번은 실패한다”며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한 역량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컵스의 간판 타자인 앤서니 리조다. 리조는 레드삭스 시절부터 타격에 재능이 있는 유망주였지만, 좀처럼 메이저리그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던 리조를 영입한 이가 엡스타인이었다. 이때 엡스타인은 리조의 타격 능력뿐만 아니라 그가 암(호지킨 림프종)을 극복한 점에도 높은 평가를 했다. 리조는 2016년 32홈런, 109타점을 기록하며 팀이 10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팀 화합 해치면 간판 선수도 아웃

엡스타인은 팀의 화합을 해치면 간판 선수라도 가차없이 내친다. 레드삭스 단장 부임 첫해인 2003년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엡스타인은 팀의 문제를 수비에서 찾았다. 그는 수비력 개선을 위해 레드삭스의 태양으로 불리던 간판 타자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트레이드를 추진했고, 2004년 팀에서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 대신 받아온 선수는 수비 스페셜리스트인 올란도 카브레라와 덕 민키에비츠였다. 바로 그해 레드삭스는 86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컵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엡스타인은 팀의 화합을 해치는 간판 선수는 가차없이 쫓아냈다. 대표적인 선수가 2000만달러에 가까운 연봉을 받던 선발 투수 카를로스 잠브라노였다. 잠브라노는 동료 선수와 싸우거나 마무리 투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팀의 조직력을 해치는 언행을 일삼았다. 엡스타인은 사장에 부임하자마자 마이애미 말린스로 잠브라노를 트레이드했다.

엡스타인은 베테랑에게 박한 대신 유망주 육성에는 적극적이다. 엡스타인은 레드삭스와 컵스에서 모두 유망주 발굴을 위해 팜(farm·우수한 신인을 육성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마이너리그 조직) 시스템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엡스타인이 단장에 취임하기 전인 2002년에 레드삭스의 팜 랭킹이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27위에 불과했는데, 2007년에는 2위까지 올라갔다. 2007년 레드삭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더스틴 페드로이아, 자코비 엘스버리 등이 모두 레드삭스 팜 출신이다.


plus point

인재 관리도 과학적 접근 필요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는 한국 기업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비과학적 업무 프로세스와 비합리적 평가 시스템을 꼽은 적이 있다. 조직 운영 전반에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보니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대표적인 분야가 인사다. 한국 기업은 인재 관리에 데이터 등 과학적인 요소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미국 기업들이 인재 풀을 만들고, 인력 양성과 교육, 평가에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평가에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 활용하면서 성과를 낸 것처럼 기업들도 통계를 인재 관리에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백화점 회사인 본톤(Bon-Ton)은 화장품 판매부서의 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인력 평가 회사와 함께 데이터 분석을 했다. 그 결과 인지 능력보다 재무 성과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인사 제도 때문에 이직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본톤은 데이터 분석 결과에 맞춰 인사 제도를 고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바루크 피쇼프(Baruch Fischhoff)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몇몇 의사 결정자의 제한된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해 모든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이 됐다”며 “폭넓게 정보를 수집하고 직관보다는 과학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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