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유가를 놓고 OPEC 회원국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OPEC 정기총회에 참석한 칼리드 알 팔리(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이 웃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회사인 아람코의 기업공개(IPO)가 내년으로 연기된다는 소식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분열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에 감산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기간이 길어지면서 OPEC 회원국의 단합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국제 유가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감산 기간을 늘리려는 사우디와 지금도 충분하다는 입장의 이란이 맞서고 있다.

지난해 상승세를 탔던 국제 유가는 올 들어 60달러 선에 안착한 모습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 그래프가 언제든 위로 오르거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국제 유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상승과 하락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정중동의 상태라는 설명이다.


OPEC 감산 동맹 언제까지 갈지 미지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일 OPEC이 적정 유가를 놓고 갈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람코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는 국제 유가를 배럴당 70달러까지 높이려고 하고, 이란은 60달러 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WSJ 인터뷰에서 “국제 유가가 70달러까지 오르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증가하게 된다”며 “국제 유가를 60달러 선에 묶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올해 초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가 70달러를 넘어서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급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1월 미국의 1일 원유 생산량은 1036만배럴로 사우디(998만배럴)를 뛰어넘었다.

사우디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지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사우디의 경제 개혁을 위해서는 아람코의 성공적인 상장이 필수다. 사우디가 원하는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2조달러(약 2132조원) 수준. 하지만 국제 유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어 그만큼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람코의 상장이 내년 1~2분기로 연기된 상황이다.

사우디로서는 아람코 상장 작업이 끝날 때까지 국제 유가를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고, 다른 OPEC 회원국들은 가뜩이나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우디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잔가네 장관은 WSJ 인터뷰에서 6월 열릴 예정인 OPEC 정기총회에서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사우디의 감산 정책에 큰 힘을 보탰던 러시아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이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60달러 중반대의 국제 유가에 만족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에너지 기업들이 감산 연장에 불만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러시아가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해 국제 유가 상승을 이끌었던 가장 큰 원동력인 OPEC의 감산 동맹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워런 패터슨 ING그룹 애널리스트는 “OPEC의 감산으로 미국 셰일 업체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감산 동맹이 내년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OPEC의 상황만 보면 국제 유가의 하락에 힘이 실리지만, 다른 산유국들로 시야를 넓히면 상황이 다르다.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이 그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명했다. 폼페이오 지명자는 미국 내에서 대표적인 대이란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에 오르면 미국 정부가 이란 핵협정을 파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더 커지기 때문에 국제 유가는 상승 압력이 커진다.

시리아 내전과 베네수엘라의 정정 불안도 국제 유가 상승 요인이다. 시리아 내전이 심화되면서 중동 지역 전체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커졌고,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경제가 붕괴 직전까지 가면서 올해 1일 원유 생산량이 100만배럴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미국 셰일 영향력 놓고 갑론을박

셰일혁명 이후 미국은 국제 원유 시장의 새로운 리더로 떠올랐다. 2014년까지만 해도 셰일오일 생산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60~80달러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배럴당 40~60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셰일 업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55달러를 넘으면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하반기 들어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증가한 것도 셰일 업체들이 놀고 있던 원유 시추기(오일 리그)를 가동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1일 1003만배럴을 기록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509만배럴이 셰일 같은 비전통적 원유였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친에너지 및 인프라 투자 정책, 원유 수출 규제 완화 등으로 셰일오일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며 “국제 유가가 60달러 이상 수준을 유지하면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원유 생산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의 셰일 영향력이 무뎌졌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셰일오일 수요가 늘었지만 생산 비용이 더 빠르게 늘어나면서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셰일오일 시추에는 수압 파쇄용 모래가 반드시 필요한데 수요가 늘면서 이 모래 비용이 급증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으로 수압 파쇄용 모래 가격이 전년 대비 7.2% 증가했고, 원유 및 가스 시추 비용은 전년 대비 10.5% 증가했다.

여기다 미국이 정책금리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셰일 업계가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plus point

탄탄한 수요가 국제 유가 뒷받침

공급과 수요는 국제 유가를 결정하는 두 축이다. 공급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동맹과 미국 셰일 생산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서 복잡한 상황이지만 수요는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고스란히 원유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세계 원유 수요가 작년보다 1.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2.1%, 인도가 5.9% 증가하는 등 선진국과 신흥국에서 모두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OPEC도 올해 원유 수요가 작년보다 각각 1.3%, 1.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천원창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경기가 개선되고 정유 제품 재고는 부족해지면서 원유 수요가 느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말했다.

다만 올해 하반기에는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하반기부터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수 있고, 선진국 경기 회복세가 한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전기차 등 기술 혁신으로 인해 수송 분야에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으로 2023년에는 1일 원유 소비량이 200만배럴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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