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만화 관련 전문점인 ‘애니메이트’에 코미코에 연재된 웹툰 작품의 단행본을 모아놓은 ‘코미코 섹션’이 생겼다. / NHN엔터테인먼트

작년 1월까지만 해도 일본 웹툰 애플리케이션(앱) 순위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라인(LINE)이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 ‘라인망가’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변함없지만, 그 아래 2~4위는 모두 일본 출판사나 기업이 운영하는 웹툰 앱이 자리했다. 2위 슈에이샤의 ‘소년점프+’, 3위 쇼가쿠칸의 ‘망가원’, 4위는 디엔에이(DeNA)의 ‘망가박스’였다.

하지만 불과 1년 3개월이 지난 올해 4월에는 2~4위에 한국 기업이 만든 웹툰 플랫폼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소년점프+’는 3위로 떨어졌고, 2위를 카카오재팬의 ‘픽코마’가 차지했다. 4위에는 NHN엔터테인먼트의 ‘코미코’가 이름을 올렸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라인망가까지 하면 일본 웹툰 플랫폼의 선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 정보기술(IT) 기업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는 양상이다.

만화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어떻게 한국 IT 기업의 웹툰 플랫폼이 시장을 이끌게 된 걸까. 일본은 오래 전부터 만화 콘텐츠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였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나루토’ 등 수많은 인기 작품이 일본 만화 왕국의 주춧돌이 됐다. 콘텐츠 시장 전체는 미국이 크지만, 만화 시장만 놓고 보면 일본이 미국을 한참 앞서는 이유다.

하지만 일본 만화 시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정체돼 있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일본 만화 시장 규모는 4456억엔이었는데 2016년에도 4454억엔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성장이 멈춘 건 출판만화 시장이 뒷걸음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출판만화는 크게 단행본과 잡지로 나뉜다. 단행본 시장은 ‘원피스’ 같은 히트작 덕분에 아직 시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간 소년점프’ 같은 주간지로 대표되는 잡지만화 시장은 빠르게 판매 부수가 줄고 있다. 코트라 도쿄무역관에 따르면 1990년대에만 해도 ‘주간 소년점프’ 발행 부수가 총 650만 부에 달했는데, 지금은 200만 부 정도로 줄어들었다. 출판만화를 즐겨보던 독자층 자체가 고령화된 데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지 않고 있다. 김재용 카카오재팬 대표는 “일본 사람들은 만화 잡지를 보던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며 출판만화 시장의 부진을 분석했다.

이런 분위기는 일본 현지의 만화 업계 종사자들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일본의 만화 출판사인 아키타쇼텐(秋田書店)의 후지이 히로 라이선싱 디렉터는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출판만화 시장이 작아지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며 “전체 만화 시장 규모가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웹툰이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만화 출판사인 후타바샤(双葉社)의 사이토 마사나오 부장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만화를 판매하는 플랫폼이 종이에서 웹이나 앱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과정에 있다”며 “출판만화 시장이 완전히 없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출판사들의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韓 기업들, 웹툰 전환 과도기 노려 성공

일본의 잡지만화가 주춤한 빈틈을 노린 게 한국 IT 기업들이다. 일본 메신저 시장을 선점한 라인이 2013년 4월 라인망가를 출시하며 한국형 웹툰 플랫폼을 일본 시장에 선보였고, 뒤를 이어 NHN엔터테인먼트의 일본 법인인 ‘NHN코미코’가 2013년 10월부터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레진코믹스는 2015년 7월, 카카오재팬의 픽코마는 2016년 4월 첫선을 보였다. 한국 웹툰 플랫폼이 진출하면서 일본 웹툰 시장도 본격적으로 커졌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2017년도 국외 디지털 콘텐츠 시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에만 해도 일본 웹툰 시장 규모는 1억9100만달러 정도였는데 지난해에는 두 배 가까운 3억6200만달러까지 커졌다. 매년 10%가 넘는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NHN코미코의 장현수 대표는 “2013년에만 해도 일본에서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만화 콘텐츠가 전혀 없다시피 했다”며 “세로 스크롤 보기와 풀 컬러 같은 웹툰만의 특징을 일본 독자들이 낯설게 느끼지 않게 하려고 일본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발굴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웹툰 플랫폼에 맞서 일본 출판사들도 경쟁적으로 스마트폰 앱을 내놨다. 슈가쿠칸, 슈에이샤 등 대형 출판사를 비롯해 중소형 출판사까지 만화 앱 경쟁에 가세했고,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일본에서 만화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앱만 270여 개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 카카오와 네이버, NHN엔터테인먼트 등 한국 IT 기업들은 웹툰 서비스를 10년 넘게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다리면 무료’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했고, 만화를 보지 않던 독자까지 웹툰 시장에 끌어들이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13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라인망가와 코미코는 각각 앱 다운로드 수 1900만 건, 1570만 건을 기록하고 있고, 후발주자인 픽코마도 800만 건의 다운로드 수를 보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레진코믹스도 지난해 일본 시장에서 29억원의 매출(결제액 기준)을 올렸는데 전년 대비 47% 증가한 것이다.

이승한 레진코믹스 일본법인장은 “번역부터 편집까지 전 과정에서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한국인 전문가와 한국어가 유창한 일본인 전문가를 동시에 참가시켜 제목뿐 아니라 의성어나 의태어, 배경, 건물의 이름까지 철저하게 현지화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일본 작가 빨아들이는 한국형 플랫폼


지난 3월 코미코에 연재된 인기 웹툰 ‘리라이프’의 팬미팅이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 NHN엔터테인먼트

일본을 대표하는 웹툰 작품들도 한국형 웹툰 플랫폼에서 나오고 있다. 2013년 10월 코미코에 연재를 시작한 야요이 소우(夜宵草) 작가의 ‘리라이프(ReLIFE)’가 대표적이다. ‘리라이프’는 27세의 남자 주인공이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리라이프 연구소의 직원을 만나 1년간 고교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연재 시작과 동시에 큰 인기를 얻어 2014년 8월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돼 지금까지 150만 부가 팔렸다. 2016년에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고, 작년에는 일본의 인기 배우인 나카가와 다이시(中川大志)와 다이라 유나(平祐奈)가 주연을 맡아 실사 영화로도 제작됐다. ‘리라이프’는 웹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한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했다. 야요이 소우 작가는 “일본에서 웹툰이 생소하던 시절에 연재를 시작했는데 완결까지 할 수 있어서 기뻤다”며 “다음 작품도 코미코에서 웹툰으로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인 ‘미이라 사육법’ ‘난바카’ 등도 한국 웹툰 플랫폼에 연재 중이다. 아키타쇼텐(秋田書店)의 후지이 히로 라이선싱 디렉터는 “매년 서점들이 매출 기준으로 만화 작품의 순위를 매겨 시상식을 여는데, 아키타쇼텐의 경우 웹툰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1위와 2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며 “웹툰 작품들이 좋은 실적을 내면서 출판사들도 웹툰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