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툰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미국 팬들이 ‘애니메 엑스포 2017’ 레진코믹스 부스에 줄을 서 있다. / 레진엔터테인먼트

지난해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북미 지역 최대 만화 축제인 ‘애니메 엑스포(Anime Expo) 2017’이 열렸다. 애니메 엑스포는 현장을 방문하는 관람객만 1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의 웹툰 플랫폼 업체인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애니메 엑스포에 처음으로 부스를 만들고 참가했다가 깜짝 놀랐다. 레진엔터테인먼트의 웹툰 플랫폼인 ‘레진코믹스’에 연재되고 있는 ‘킬링 스토킹’과 ‘블러드 뱅크’의 작가 사인회를 열었는데, 수백 명의 팬이 몰렸기 때문이다. 

레진코믹스가 미국에 진출한 건 2015년 말이다.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북미 시장에서 불과 1년 반 만에 적지 않은 팬덤을 만들어낸 것이다. 레진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올해 1분기 미국 구글플레이에서 매출 기준으로 마블의 웹툰 애플리케이션(앱)을 꺾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콘텐츠 시장이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의 전체 콘텐츠 시장 규모가 7009억6900만달러(약 755조9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미국의 만화 시장 규모는 9억8100만달러에 불과하다. 방송(2109억달러), 음악(151억달러), 게임(169억달러) 같은 주류 콘텐츠 시장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다. 미국 만화 시장의 양대 산맥인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는 만화 시장보다는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나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성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 연구원은 “출판만화 수익이 감소하면서 미국 만화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체 만화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지만 웹툰 시장은 2010년대 들어 10% 안팎의 꾸준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2년 7000만달러 정도였던 미국 웹툰 시장이 올해 1억900만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에는 1억3500만달러까지 커져서 전체 만화 시장의 13% 정도를 웹툰이 차지할 전망이다. 스마트폰이나 킨들 같은 스마트 기기가 보급되면서 콘텐츠를 디지털로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고, 출판만화를 디지털화해서 올리는 경우가 늘면서 웹툰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웹툰 플랫폼의 적극적인 미국 진출도 웹툰 붐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에 처음 진출한 한국 웹툰 플랫폼은 타파스미디어다. 타파스미디어는 구글 프로덕트 매니저 출신인 김창원 대표가 2012년 설립한 회사로 2013년 초에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 6명의 작가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작가진이 3만5000명까지 늘었다. 월 방문자는 200만 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60%가 북미 지역에서 접속하고 있다.

네이버의 글로벌 웹툰 플랫폼인 라인웹툰도 2014년 7월에 미국 시장을 겨냥한 영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라인웹툰에 연재 중인 192개 작품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6개 작품을 영어로 서비스하고 있는데, 북미 지역에서만 월 방문자가 300만 명을 넘고 있다.

한국 웹툰 플랫폼이 진출하기 전에도 미국에 웹툰과 비슷한 콘텐츠는 있었다. 북미 지역 최대 디지털 만화 플랫폼인 ‘코믹솔로지(ComiXology)’는 마블과 DC의 코믹북이나 그래픽노블을 PDF로 만들어 전자책처럼 판매했다. 코믹솔로지는 2014년 아마존에 인수됐는데, 그 이후 더 적극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마블과 DC의 콘텐츠에 아마존이라는 지원군까지 등에 업은, 그야말로 북미 웹툰 시장의 공룡 같은 존재다.


모바일 최적화, 현지 작가 발굴로 인기

하지만 한국 웹툰 플랫폼들은 코믹솔로지와의 경쟁을 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 포맷과 현지 만화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지지 속에 웹툰 시장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는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한국 웹툰 특유의 세로 스크롤 방식이 가장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2013년 타파스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는 미국 현지 웹툰 작가들이 세로로 만화를 그리는 걸 어색해했지만, 몇 년에 걸쳐서 작가들을 교육하고 설득한 덕분에 이제는 작가들이 먼저 세로로 작업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콘텐츠 플랫폼의 트렌드는 모바일로 넘어왔다”며 “웹보다는 모바일 앱에서 더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모바일에 최적화된 포맷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웹툰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현지 작가를 발굴한 것도 주효했다.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처럼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 웹툰도 있지만, 소수에 그친다. 김 대표는 “타파스에 올라오는 수만 편의 웹툰 가운데 한국 작품은 100여 편 정도”라며 “현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다른 웹툰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이희윤 네이버 웹툰사업팀 리더는 “한국 웹툰 작품으로 성장의 기반을 쌓고, 이제는 현지 작가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만화 시장은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물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에 여성 만화가가 설 자리가 좁을 수밖에 없다. 타파스 같은 한국 웹툰 플랫폼이 여성 작가들에게도 문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독자들이 유입됐고, 덕분에 웹툰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질 수 있었다. 타파스미디어 관계자는 “미국 콘텐츠 시장에서 소외돼 있었던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성공 비결의 하나”라고 말했다.


plus point

미국 웹툰 앱은 정액제가 대세


미국을 대표하는 웹툰 플랫폼 ‘코믹솔로지’. / 코믹솔로지 캡처

코믹솔로지는 2007년 7월 만화 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마블과 DC, 다크호스 같은 대형 출판사의 만화를 아이패드나 킨들 같은 전자기기에서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2014년 4월에 아마존에 인수되면서 대대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고, 지금은 미국의 웹툰 시장을 이끄는 대표적인 플랫폼이 됐다.

코믹솔로지는 ‘언리미티드(Unlimited)’라는 이름의 월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플릭스처럼 정액제 이용자는 무제한으로 만화를 볼 수 있는 식이다. 정액제 요금은 월 5.99달러다. 다만 마블이나 DC 같은 대형 출판사 작품은 정액제로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도 자체적인 웹툰 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마블은 연 69달러에 마블코믹스 만화 2만여 편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정액제 서비스(Marvel Digital Comics Unlimited)를 운영하고 있다. DC코믹스는 웹툰 앱과 별도로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은 성인 만화를 판매하는 ‘버티고’라는 웹툰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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