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웹툰을 보기 시작하면서 중국 웹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 웹툰 플랫폼 업체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작품과 인프라를 함께 가지고 나가야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방식이 지켜지는데, 유독 중국에서만 불가능하다. 한국 플랫폼은 진출할 수가 없고 작품만 중국 플랫폼이 가져다 쓰는데, 이런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

4월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웹툰포럼’의 기조연설을 맡은 윤태호 작가는 연설 말미에 작심한 듯 중국 웹툰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미생’ ‘이끼’ 등 한국 웹툰을 대표하는 작품을 쓴 윤 작가는 한국만화가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한 명의 작가로서가 아니라 한국 웹툰 작가 전체를 대표해서 중국 웹툰 시장의 폐쇄적인 구조에 쓴소리를 한 것이다.

한국 웹툰 플랫폼은 만화 왕국 일본과 세계 최대 콘텐츠 시장인 미국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는 발도 못 붙이고 있다. 자국 정보기술(IT) 기업의 플랫폼을 먼저 육성하는 중국 정부의 폐쇄적인 정책 때문이다. 네이버, 카카오, NHN엔터테인먼트 등 한국의 주요 웹툰 플랫폼 업체들이 중국 시장 진출을 검토했지만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진 경우는 없다. 다음웹툰과 카카오페이지를 운영하는 포도트리의 차상훈 최고전략책임자(CSO)는 “(국내 업체들이) 몇 차례 중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규제가 너무 강하고 장벽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철옹성을 쌓는 사이 중국 웹툰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웹툰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다. 아이리서치에 따르면 2013년에만 해도 웹툰 서비스에 가입한 중국인은 2257만 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9725만 명으로 늘었다. 불과 4년 만에 웹툰 이용자가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중국 웹툰 소비는 ‘95세대(95後)’가 이끌고 있다. 95세대는 1995~99년에 출생한 중국의 청년을 말한다. 이들 세대는 스마트폰의 발전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모바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익숙하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서 유료 결제에도 거침이 없다. 95세대와 함께 2000년 이후 출생한 ‘00세대(00後)’도 웹툰을 즐기면서, 웹툰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두터운 이용자층 덕분에 중국 웹툰 시장 규모는 2012년 2000만달러에서 올해 9600만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규모는 아직 일본이나 미국보다 작지만 1억 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확보한 만큼 성장 가능성은 어느 나라보다 크다.

중국 웹툰 플랫폼은 정부의 보호와 많은 독자에 힘입어 규모 면에서는 이미 한국을 뛰어넘었다. 중국 IT 기업 텐센트가 세운 ‘텐센트둥만(騰迅動漫)’은 월 이용자가 9000만 명에 달하고, 중국의 인기 만화가가 세운 ‘콰이칸(快看漫画)’도 3000만 명에 가까운 월 이용자를 기록하고 있다. 텐센트둥만의 대표 웹툰인 ‘시형(尸兄)’은 누적 조회 수만 40억 뷰가 넘고, 게임으로 제작돼 5000만위안(약 85억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웹툰 서비스 업체들은 중국 플랫폼에 한국 웹툰 작품을 공급하기만 할뿐 플랫폼 자체는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웹툰 플랫폼 해외 진출 시간 문제

문제는 중국의 웹툰 플랫폼이 결국에는 한국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아직은 텐센트둥만이나 콰이칸이 중국에 머무르고 있지만, 웹툰 업계에서는 머지않은 시점에 이들 플랫폼의 해외 시장 진출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레진코믹스 관계자는 “최근 3~4년 사이에 중국에서 웹툰 플랫폼이 130여 개 정도 생겼다”며 “지금은 중국 안에서 시장 규모를 키우면서 서로 경쟁하는 단계지만, 경쟁이 마무리되면 영어 서비스를 내놓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스타트업은 자국 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시장을 키운 뒤에 마지막에 살아남은 두세 개 업체가 나머지를 흡수하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웹툰 플랫폼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중국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어오면 한국 플랫폼이 상대하기 버거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중국은 한국 게임을 수입해 가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중국 게임 플랫폼이 한국 게임사를 쇼핑하듯 사들이고 있다. 황현수 포도트리 부사장은 “중국 작품의 경우 1년 전만 해도 연출이나 색감이 한국 작품과 경쟁이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좋아졌다”며 “이제는 한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plus point

미국보다 큰 유럽 시장 한국과 다른 화풍이 장벽


올해 열린 45회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수상작들. /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유럽은 전통적으로 출판만화가 강하다. 매년 1월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리는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은 관람객만 25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만화 축제다. 프랑스나 독일의 만화 시장 규모는 미국에 비해 작지만 유럽 전체로 보면 미국을 한참 앞선다. 웹툰 시장도 마찬가지다. 2016년 기준으로 세계 웹툰 시장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율은 25.3%로 북미(11.1%)의 두 배가 넘었다.

하지만 한국 웹툰 플랫폼들은 아직까지 유럽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웹툰 플랫폼인 ‘델리툰’을 통해 몇몇 한국 웹툰이 연재되고 있지만, 큰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유럽 최대 웹툰 플랫폼인 ‘이즈니오(Izneo)’는 프랑스나 벨기에 작품이 중심이다.

유럽에서 한국 웹툰이 힘을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럽 만화 시장의 성격이 아시아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 만화 시장을 분석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웹툰은 아시아나 북미 지역의 웹툰과 차별화되는 스토리와 화풍을 가지고 있다. 또 아시아 지역에서는 로맨스나 판타지 장르를 즐겨 보는데, 유럽에서는 액션이나 어드벤처 장르가 인기가 많다. 작화에 신경을 쓰고, 웹툰도 예술성을 강조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웹툰 시장과 성격이 다르다. 한국 웹툰 플랫폼들도 당장은 일본과 동남아시아·북미 시장에 집중할 뿐, 정서적인 거리감이 큰 유럽 시장은 뒤로 미루고 있다.

다만 발전 가능성이 큰 스패니시 시장 공략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스페인 시장을 활용하는 경우는 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6월부터 스페인에서 웹툰 플랫폼 ‘코미코’의 베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장현수 NHN코미코 대표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없지만 영어 다음으로 세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스패니시”라며 “스페인 시장에서 가능성을 본 뒤에 스패니시 언어권인 남미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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