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웹툰산업이 불법으로 만화를 복제해가는 해적사이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직장인 이모(25·여)씨는 매일 밤 웹툰 불법 해적사이트 ‘밤토끼’에 접속해 웹툰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편당 200~300원인 유료 웹툰을 이곳에서는 공짜로 볼 수 있어서다. 이씨는 “레진코믹스에서 볼 수 있는 A 만화의 경우 중간중간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구간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를 다 보려면 5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 한다”며 “밤토끼는 아예 공짜이다 보니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쪽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웹툰산업이 해적사이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적사이트는  네이버·카카오·레진코믹스 등 웹툰 서비스 업체들이 신규 콘텐츠를 올리면 평균 2시간 이내에 이를 통째로 훔쳐간 뒤 자신들의 사이트에 공개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돈을 내고 보느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해적사이트를 찾아 공짜로 보는 게 이득이다. 이 때문에 2016년 10월 개설된 밤토끼는 1년 반 만에 국내 최대 해적사이트로 성장했다. 웹툰정보제공업체 ‘웹툰가이드’에 따르면, 밤토끼의 방문건수(PV)는 지난 3월 한 달간 9억3961만건을 기록했다. 네이버웹툰이 같은 기간 9억6012만건인 것과 비교하면 턱밑까지 쫓아온 것이다. 70여개에 달하는 전체 해적사이트의 PV 총합은 3월 기준 약 12억건으로, 지난해 10월 이미 네이버웹툰을 추월했다.

해적사이트에 의한 국내 웹툰산업의 피해는 심각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밤토끼에 따른 피해 규모를 산출한 결과, 매월 약 1390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밤토끼를 비롯해 한국어로 된 해적사이트가 70여개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금액은 2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웹툰가이드는 지금까지 이들에 의한 누적 피해액이 1조864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적사이트 때문에 웹툰 업계 전체가 고사 직전”이라고 말했다.

해적사이트의 공격은 한국에만 국한된 이슈는 아니다. 세계 만화 대국으로 꼽히는  일본 역시 웹툰뿐만 아니라 종이만화의 원판을 복사하거나 촬영한 이미지 파일을 자유롭게 퍼나르는 해적사이트가 커져 해결책을 고민해왔다. 그러다 최근 일본 정부는 만화 해적사이트 ‘망가무라(漫画村·만화마을)’의 접속을 차단하는 강력 조치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콘텐츠 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저작권 보호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저작권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4월 13일 ‘블로킹’ 대상 사이트 목록에 망가무라를 추가하고, 인터넷 서비스 프로바이더(ISP)들에게 망가무라의 블로킹을 자체적으로 실시해 줄 것을 촉구했다. 블로킹은 특정 사이트를 ISP 판단에 따라 연결할 수 없도록 강제로 차단하는 방식이다. 이용자 접근을 감시, 방문한 사이트가 차단 대상이면 경고 사이트로 유도한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조치에 나선 것은 망가무라 등 만화 해적사이트의 이용률이 지난해부터 급증했기 때문이다. 2016년 개설된 망가무라는 만화 외에도 잡지, 소설, 사진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불법 복제해 게재해왔다. 웹사이트 순위 집계 서비스 업체인 시밀러웹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망가무라의 월간 방문자 수는 1억7439만명에 이른다. 일본 콘텐츠해외유통협회(CODA)는 망가무라 등 해적사이트의 복제로 인한 출판사 누적 피해액이 약 4000억엔(약 4조원)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일본 최대 ISP 중 하나인 NTT 그룹이 정부의 뜻에 따라 망가무라에 대한 블로킹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사이트 폐쇄 작업은 급속도로 진전됐다. 4월 17일부터 기존 주소의 접속이 아예 불가능해졌고, 해적판 만화의 이미지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던 별도 서버 역시 접속이 막혔다.


경찰 수사 지지부진…잡혀도 솜방망이 처벌

일본은 망가무라 잡기에 성공한 반면 한국은 여전히 밤토끼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 차이는 먼저 사이트의 보안성 때문이다. 망가무라의 경우 ‘http’ 통신 프로토콜을 사용하는데, 밤토끼는 ‘https’를 사용한다. http가 서버와 웹 브라우저가 주고받는 데이터 신호와 URL 주소 정보 등이 암호화되지 않은 일반 페이지라면, https는 모두 암호화된 보안 페이지다. 현재 한국 기술 수준으로는 https를 사용하는 사이트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 또 일본은 구글에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망가무라를 신고했다. 망가무라가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도록 해 무력화시킨 것이다. 반면 밤토끼는 여전히 구글 검색을 통해 접속할 수 있다.

밤토끼 운영자를 잡기 위해 경찰 등 관계당국이 나섰지만,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가 누군지 파악하려면 해외에 있는 ISP로부터 구매자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데, 한국 경찰이 외국에 있는 기업을 압수수색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저작권법 관련 문제는 국제 공조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저작권법의 경우 마약, 살인 등 중범죄가 아니다 보니 관심도가 떨어져 국제 수사공조가 힘들다”며 “결국 자력으로 밤토끼 운영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밤토끼 외 다른 해적사이트도 국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지만, 한국은 시스템상 웹툰 저작권을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절차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웹툰 서비스 업체들이 해적사이트를 한국저작권보호원에 신고하면 그 안의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가 해당 사이트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한다. 불법 사이트라고 판단되면 이를 문체부에 넘기고, 문체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사이트 차단 여부’ 심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방송통신위원회에 보낸다. 방통위 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사이트 차단 여부가 결정되면 ISP에 시정명령을 내린다. 이 과정에 최소 2개월이 소요된다.

저작권법을 위반할 경우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도 문제다. 레진코믹스 측이 지난해 진행한 형사고소는 모두 6건이었지만, 이 중 5건은 기소중지나 기소유예였고 1건만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문체부는 웹툰 불법 복제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종합 대책을 지난 2일 발표했다. 해적사이트 차단 심의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해당 조치의 전제조건인 저작권법 일부 개정안은 지난해 7월 발의돼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해적사이트 운영자 등에 대한 처벌 강화도 정식재판 청구 확대를 ‘독려’하겠다는 내용뿐이다.

정부의 의지와 실효성 있는 대책이 부재하다 보니 웹툰 서비스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레진코믹스의 경우 지난해 직접 해외 ISP 업체에 요청해 대형 해적사이트 55개 중 33개를 차단했다. 구글, 해외 일반사이트, 소셜미디어 등을 모니터링해 458만건의 불법게시물을 적발하고, 이를 구글 등 운영사에 신고해 434만건을 삭제했다. 네이버웹툰 역시 불법 웹툰을 적발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 ‘툰레이더’를 개발, 만화 유출자를 적발하고 서비스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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