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은 국가 산업 생태계에 있어 ‘허리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사례 1. 자동차 관련 부품을 개발·생산하는 중견기업 A는 독자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포기했다. 국내에선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막상 현지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A는 일본 종합상사와 손을 잡았다. 이익이 3분의 1가량 줄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례 2. 국내 중견 주방생활용품 생산·유통 업체의 최고경영자(CEO) B씨는 최근 2세 경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높은 상속세가 부담이었다. 그는 회사를 해외 사모펀드에 팔고 현재 해외에서 다른 비즈니스를 구상 중이다.

중견기업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사이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중간 규모의 기업을 말한다. 중견기업특별법상 자산총액은 5000억원 이상이고, 매출액 기준으로는 3년 평균 400억원(숙박·음식업)에서 1500억원(1차금속·제조업 등)을 초과하는 기업이다.

중견기업은 중소기업과 비교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임금 수준이 대기업의 60~80%에 달한다. 이런 중견기업의 수가 늘수록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소득 양극화 문제(대기업 고소득, 중소기업 저소득)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도 중견기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견기업은 한국 경제의 허리이자 미래 성장 동력”이라며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중견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중견기업의 실상은 ‘부진’이라는 말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위기’ 혹은 ‘참담’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우선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 중견기업은 2015년 기준 3558개로 전체 기업 수의 0.1%를 차지한다. 독일(0.57%), 일본(0.55%)과 비교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견기업의 고용 비율도 전체 고용의 5.5%(115만명)로, 일본(14%)의 3분의 1, 독일(24%)의 4분의 1 수준이다. 특히 2015년 기준 국내 신규 중견기업이 24개에 불과하다는 것은 중견기업의 성장이 정체돼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 중견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이 작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국내 중견기업은 특정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독자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국내 대기업의 하청 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부가가치와 영업이익률이 낮고, 대기업에 종속되는 구조를 보인다.

중견기업의 성장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독일 강소기업 ‘히든 챔피언’이다. 빈프리트 베버 독일 만하임대 교수는 “독일은 미국 등 경제 대국에 비해 대기업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쟁력 있는 히든 챔피언을 통해 국가 경제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 100만 명당 강소기업의 수가 한국은 0.5개인 반면 독일은 16개, 룩셈부르크·스위스·오스트리아는 14개로 한국의 28배에서 32배에 이른다. 이 기업들은 적어도 자신의 대륙에서 시장 점유율 1위, 세계 시장에서는 1~3위의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 대기업이 자본력 기반의 규모의 경제, 즉 설비의 힘에 의존하는 반면 이 기업들은 ‘마이스터’라고 불리는 전문 기능 인력의 높은 기술력을 핵심 역량으로 한다. 당연히 질 좋은 일자리이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독일 강소기업의 특징을 보면, 평균 영업이익률이 10%를 넘고 평균 종업원 수가 2000명이 넘는다. 한국 기준으로는 대기업에 가깝다. 또한 평균 27개의 해외 법인을 갖고 있다. 이 기업들의 평균 업력은 60년이 넘는다. 따라서 한국 중소·중견기업과 달리 직원들의 고용 불안이 훨씬 덜하다. 이런 고수익의 기술 기업은 독일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고용 측면에서도 안전판 역할을 한다.

독일 등 유럽의 강소기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력으로 만들어진 설비 중심 회사가 아니라 오래 축적된 기술력 중심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은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하고, 마이스터를 양성하는 직업 훈련 등 제도적 지원을 받고 있다.


허울뿐인 가업상속 공제제도

해외 강소기업은 장기적 관점으로 경영을 한다. 몇 대(代)에 걸쳐 가족경영을 하며 사업을 키워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일에선 5대 가족기업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가업을 이을 자녀의 경우, 어릴 때부터 경영 수업을 받는다. 학교에선 기초 기술을, 회사 내에선 리더십을 배운다. 미래 주요 사업 지역이 될 수 있는 해외 국가를 돌며 다양한 경험도 쌓는다.

이런 장기적 경영 시스템을 이해한 정부 역시 가업승계(경영권 상속) 시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는 상속세를 최대한 면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물론 고용 수준을 유지하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조건에서다. 독일의 경우 자녀가 기업을 물려받은 후 5년간 고용 수준을 유지하면 상속세의 85%를, 7년간 유지하면 100%를 공제해주고 있다. 기업이 가업승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고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국도 경영 기간과 고용 수준 유지 등을 조건으로 한 가업상속 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매출 3000억원 이하인 기업으로 제한돼 있고, 공제받기 위한 사후 관리(경영) 기간이 길고, 금액도 적다. 가업승계 후 고용 수준을 유지하며 10년간 경영하면 상속세를 200억원 공제받을 수 있고, 20년간은 300억원(공제금액), 30년간은 500억원에 불과하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중견기업연구원 원장)는 “한국에도 가업상속 공제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독일 등 해외 국가에 비해 훨씬 까다롭다”며 “국내 중견기업 대부분이 가족기업이고, 한국 경제에서 중견기업의 중요성을 안다면 공제제도를 더 실효성 있게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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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대기업(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보다 작지만 중소기업보다는 큰 기업을 말한다. 중견기업특별법상 자산총액은 5000억원 이상이고, 매출액 기준으로는 3년 평균 400억원(숙박·음식업)에서 1500억원(1차금속·제조업 등)을 초과하는 기업이다.

 

 

박용선 기자,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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