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선 대표는 “미리 투자해 제품을 개발하고, 개발한 제품으로 수익을 낸 뒤 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C영상미디어 이신영

샘표식품은 올해 창립 72주년을 맞았다. 한국 대표 장수 식품 기업으로 국내 간장 시장 1위다. 최고경영자(CEO)는 창업 가문 3세인 박진선(67) 대표. 그는 이력이 화려하다. 아니 독특하다. 오너 3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업을 이을 생각이 없었다. 박 대표는 원래 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73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철학이란 학문에 꽂혔다. 1988년에 오하이오 주립대 철학 박사를 취득한 뒤 오하이오 주립대 철학과 교수가 됐다. 그러나 박 대표는 1990년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로 샘표식품 경영에 참여했다. 권유가 있긴 했지만 이전 그의 삶처럼 결국엔 본인 의지로 결정한 것이었다.

4월 30일 서울 충무로 샘표식품 본사에서 박진선 대표를 만났다. 스스럼이 없었다. 박 대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박 대표를 대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그랬다. 박 대표와 직원들은 격의 없이 솔직하게 일에 대해 대화했다. 박 대표는 “회사를 경영하는 데 소통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회사 성장 방향을 정하고 직원들과 의논하며 전략을 실행한다”고 말했다.

이력만큼 박 대표의 경영 스타일은 독특했다. 1990년 기획이사로 샘표식품에 입사했을 때와 1997년 CEO에 선임된 후 성장 준비 단계(1997~2007년) 때 특히 그랬다. 박 대표가 뭔가를 할 때마다 업계에선 그를 두고 ‘미쳤다’고 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상하다’ ‘이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을 달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의 경영법과 성장 방향이 옳았다. 샘표식품의 매출은 그가 CEO에 오른 1997년 690억원에서 지난해 2678억원으로 10년 만에 약 4배 증가했다.


미국에서 철학 교수로 지내다 입사했다. 단순히 아버지인 박승복 회장이 불러서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샘표식품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다. 미국에서 16년간 살았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사회가 변하는 방향이 보였다. 미국을 따라갔다.

1990년대 미국에선 연구·개발(R&D)과 마케팅이 기업 핵심 전략으로 떠올랐다. 한국은 여전히 제조 중심이었다. 샘표식품 역시 간장 제조공장을 보유한 단순 생산 업체에 머물러 있었다.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군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무엇을 했나.
“1990년 기획이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샘표식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했다. 전자공학과 철학은 열심히 공부했지만 회사 경영에는 거의 무지 상태였다. 직원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배웠다.”

박 대표는 직원들이 하는 일을 유심히 관찰했다. 샘표식품의 제품은 물론 경쟁 업체 등 시장 상황도 분석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하는 일이 샘표식품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잘 맞아떨어지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방향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직원들과 의논하면서 고쳐나갔다. 그가 목표로 한 회사 성장 방향은 두 가지였다. 첫째, R&D·마케팅 중심의 회사로 성장하겠다. 둘째,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제품을 판매하겠다.

R&D, 마케팅 회사로 변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새로운 전략을 실행하려면 새로운 인력이 필요했다. 당시 직원이 200명이었는데 대부분 생산직이었다. 1998년 공채를 시작했다. 신입사원 30명을 뽑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힘든 시기였는데 전체 직원의 15%를 고용하니 주위에선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런데 30명 중 생산 쪽 직원들을 제외하고 모두 회사를 나갔다. 윗사람이 없으니 배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계속해서 인력을 뽑았다. 경력 직원도 영입했다. 제대로 된 인력을 확보하고 R&D와 마케팅 조직을 만드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2007년, 이제는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3년에는 충북 오송에 국내 최초의 발효 전문 연구소 ‘샘표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세웠다. 이때도 주위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다고 들었다.
“매출 2000억원짜리 간장 회사가 300억원을 투자해 연구소를 만든다고 하니 다들 ‘미쳤다’고 했다. 직원들도 내가 왜 이렇게 R&D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공장을 지어 더 많은 물건을 판매하면 되는데, 왜 쓸데없이 돈을 들여 연구소를 짓냐는 것이었다. 당시 공장 하나를 짓는 데 100억원가량 들었다.

그러나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 공급이 못 따라가는 시대였다. 그러다 시장이 변했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역시 까다로워졌다. 시장에 통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답은 R&D밖에 없었다. 미리 투자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생산하고 이 제품으로 충분한 이익을 내고, 또 투자해 제품을 개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목표인 세계화는 아직 시작 단계다. 샘표식품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302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10.5%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장기적으로 보고 꾸준히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2012년 개발한 요리 에센스 ‘연두’가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연두는 샘표식품 발효 기술의 집약체”라며 “콩을 발효해 만든 100% 순 식물성 제품으로, 새로운 맛내기 시장인 요리 에센스 카테고리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두는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진행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 식품 박람회’에서 전 세계 890여 개 후보를 제치고 국내 식품 업계 최초로 차세대 혁신 제품상을 수상했다.

앞으로의 세계화 전략은.
“뉴욕 맨해튼에 ‘연두 스튜디오’를 열고, 미국 시장을 적극 공략할 예정이다. 연두 스튜디오는 즐겁고 건강한 식생활을 골자로 한 연두 브랜드의 가치를 전파하는 참여 공간이다. 연두를 활용한 요리 강좌, 새로운 요리법 제안, 올바른 식생활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지 음식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아시아 식품으로 한정하지 않고, 미국 주류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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