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티아이는 AI, 빅데이터 기술 개발을 맡는 ‘디티랩’ 사무실을 위워크 역삼역점에 뒀다. 사진 C영상미디어 조현호
하나금융티아이는 AI, 빅데이터 기술 개발을 맡는 ‘디티랩’ 사무실을 위워크 역삼역점에 뒀다. 사진 C영상미디어 조현호

서울 테헤란로에는 페이스북·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한국 사무소가 모여 있다. 테헤란로를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떠서 ‘테헤란밸리’로 부르는 이유다. 판교 테크노밸리와 함께 테헤란밸리는 한국 테크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이 테헤란밸리라고 하면 테헤란로를 둘러싸고 가로수처럼 뻗어 있는 고층빌딩을 떠올린다. 그런데 최근 들어 테헤란밸리의 풍경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고층빌딩 곳곳에 글로벌 공유 오피스 기업인 ‘위워크’의 지점이 들어선 것이다. 위워크는 2016년 8월 강남역 근처에 ‘강남역점’을 낸 것을 시작으로 3㎞ 남짓한 테헤란로에 5개(선릉점은 오픈 예정)의 지점을 냈다. 5개 지점 모두 2호선 지하철역 근처의 목 좋은 자리에 들어가 있다.

지난 18일 방문한 위워크 역삼역점도 그중 하나다. 역삼역 3번 출구를 나오자 바로 앞에 24층짜리 고층빌딩인 ‘캐피탈타워’가 나타났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탁 트인 로비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거나 업무 미팅을 진행하고 있었다. 보안 때문에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느 테헤란로 고층빌딩들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로비 한편의 스타벅스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자 위워크의 오피스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워크의 오피스 공간은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자본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조직개편이 이뤄지는 기업들의 집합체와 같다. 위워크도 마찬가지로 늘 순환한다. 입주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공간을 재배치하고, 입주 기업의 직원들은 사무실 안팎에서 과제를 수행한다.”

위워크 역삼역점에서 만난 김정한 하나금융티아이 부사장은 위워크의 장점으로 ‘순환’을 꼽았다. 하나금융그룹의 IT 담당 자회사인 하나금융티아이는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첨단 디지털 기술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작년 말 ‘디티랩(DT Lab)’이라는 독립 기업을 CIC(Company In Company) 형태로 만들었다. 김 부사장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장 출신으로 디티랩에 힘을 싣기 위해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인사다.

하나금융티아이 본사는 인천 청라에 있는데, 디티랩은 위워크 역삼역점에 사무실을 차렸다.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무실을 낸 것이나 공유 오피스에 입주한 것이나 대기업 금융회사로는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묻자 김 부사장은 ‘새로운 시각’이 필요했다고 답했다. 김 부사장은 “위워크에서는 언제든 모여서 토론을 할 수 있는데, 기존에 있는 사무실에서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티랩이 입주해 있는 위워크 사무실은 흔히 생각하는 금융회사의 사무실과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넥타이와 셔츠,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입주 기업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김 부사장의 안내를 받아 위워크 오피스 안쪽에 있는 디티랩 사무실로 향했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우버의 사무실 바로 옆에 디티랩 사무실이 있었다.


공유 오피스에 걸맞은 문화 만들어야

디티랩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스무 명 남짓. 이날 사무실에는 열 명 정도가 있었다. 나머지 인력은 사무실 밖에서 근무를 하거나 외부 전문가와의 미팅에 나가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서서도 일할 수 있도록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원목 데스크에서 반팔 차림으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엔지니어는 선 채로 간간이 스트레칭을 해가며 작업하는 모습이었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황금색 풍선으로 만든 ‘DT LAB’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다. 디티랩이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사무실을 방문한 느낌이었다. 김신웅 디티랩 연구기획팀장은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공유 오피스의 장점”이라며 “외부 기업이나 인력과도 수시로 협업할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스튜디오 블랙’이라는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현대카드
현대카드는 ‘스튜디오 블랙’이라는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현대카드

김 부사장은 단순히 사무실만 위워크로 옮긴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유 오피스에 걸맞은 문화를 만들어야 사무실을 옮긴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위워크에서는 복장 규정도 없고 출퇴근 시간도 따로 정해놓고 있지 않다”며 “디티랩에서 일하는 인력은 대부분석·박사 출신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알아서 자유롭게 할 일을 정하고 수행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티아이 디티랩처럼 공유 오피스로 향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위워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공유 오피스는 업무 공간이 없는 스타트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유 오피스를 신사업 발굴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대기업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대표적인 경우다.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부터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린 스타트업’을 진행하고 있다. 린 스타트업은 도요타의 생산방식을 미국에서 재해석한 ‘린 프로덕션’에서 따온 말로 군더더기를 없애고 효율을 극대화해서 민첩하게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목표다. 린 스타트업의 주된 목표는 뷰티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발굴하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린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자율적인 업무 방식을 도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모두 6개의 린 스타트업이 선발됐는데, 이들은 모두 사업 첫해에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나왔다. 별도의 사무실을 임대한 팀도 있었지만, 대부분 위워크 같은 공유 오피스에 사무실을 차렸다. 2017년 린 스타트업에 선정된 남성전문 화장품 ‘브로앤팁스’ 팀은 국내 공유 오피스 기업인 패스트파이브의 삼성점에 입주했다. 브로앤팁스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홍성해 아모레퍼시픽 차장은 “사옥에서 일할 때는 상부에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고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모됐는데, 공유 오피스에서는 우리 팀이 자율적으로 모든 사항을 결정하다 보니까 업무 처리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화장품 브랜드를 하나 새로 론칭하는 데 보통 1~2년 정도가 걸리는데, 브로앤팁스는 7개월 만에 브랜드 론칭에 성공했다. 지금은 GS리테일의 헬스&뷰티(H&B) 전문 매장인 ‘랄라블라’에서 남성 부문 매출 순위 2위 브랜드로 성장했다. 공유 오피스에서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가능한 성과였다.

브로앤팁스의 타깃인 밀레니얼 세대가 공유 오피스에 많은 건 덤이었다. 화장품 업체는 시제품을 개발하면 회사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회사 직원이다 보니 솔직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공유 오피스에는 브로앤팁스가 타깃으로 하는 밀레니얼 세대 남성 직장인이 많았고, 이들은 시제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제품 개발에 도움을 줬다. 홍 차장은 “공유 오피스에서 스타트업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굳어져 있던 사고방식이 저절로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며 “공유 오피스는 대부분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어서 외부 미팅이 편리한 것도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잇따라 공유 오피스 사업 진출

이외에도 SK홀딩스·처브생명·제너럴일렉트릭(GE)·우버·오포(ofo) 같은 국내외 대기업이 위워크에 사무실을 냈다. 위워크 관계자는 “삼성전자 미주 법인인 삼성전자 아메리카가 위워크와 손잡고 미국 내 위워크에 고객센터를 여는 등 대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위워크와 협력하고 있다”며 “유연하게 업무 공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도 공유 오피스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스튜디오 블랙’ ‘드림플러스’ 같은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가 등장한 것도 대기업의 공유 오피스행을 부추기고 있다. 스튜디오 블랙은 현대카드가 운영하고 있고, 드림플러스는 한화생명이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다. 

현대차그룹의 사내 벤처를 지원하는 ‘H스타트업팀’은 7월에 의왕연구소를 나와 서울 강남의 스튜디오 블랙으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했다.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의왕연구소 대신 열린 공간인 공유 오피스로 향하는 건 현대차그룹이 그만큼 혁신에 목이 마르다는 걸 보여준다.

드림플러스는 한화생명 서초사옥을 공유 오피스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한화생명 서초사옥은 지상 20층, 지하 6층 규모인데, 이 중 15개층을 공유 오피스로 단장했다. 2500석 규모로 강남권에서 가장 큰 공유 오피스다. 드림플러스에는 한화금융·GS칼텍스·잇츠스킨 등 여러 기업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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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오피스식 사무실도 인기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의 사무 공간은 직원 간 소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의 사무 공간은 직원 간 소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위워크 같은 공유 오피스가 인기를 끌면서 아예 사옥을 열린 공간으로 바꾸는 대기업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완공된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칸막이가 없는 개방형 오피스로 지어졌다. 공유 오피스처럼 칸막이가 없는 6인용 오픈형 데스크가 놓여 있고, 상하층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내부에 계단을 마련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협업을 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을 늘리고, 필요할 경우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1인용 ‘워크 포커스’ 공간도 마련했다”며 “업무의 성격이나 개인의 필요에 따라 업무 공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한 환경을 만든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 사내 벤처인 ‘린 스타트업’ 팀들도 공유 오피스 생활을 끝내고 용산 신사옥으로 컴백하고 있다. 남성 화장품 브랜드인 ‘브로앤팁스’ 팀은 작년 말 공유 오피스에서 나와 용산 신사옥에 자리를 잡았다. 브로앤팁스 팀의 홍성해 차장은 “사업 1년 차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공유 오피스에서 일했지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사내 유관 부서와 협력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신사옥에 입주하기로 했다”며 “신사옥의 업무 환경이 공유 오피스와 비슷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말했다.

SK C&C도 분당 사옥을 공유 오피스처럼 꾸몄다. 똑같은 크기와 형태의 사무용 데스크를 나란히 놓는 대신 개인이 원하는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무용 가구를 배치했다. 지난해 완공된 KEB하나은행의 을지로 신사옥도 두개 층을 자유롭게 오가며 일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센터’로 꾸몄고, 지난해 11월 리모델링을 끝낸 라이나생명 사옥도 일반 사무 공간 외에 집중 업무 공간, 협업 공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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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매튜 샴파인 위워크코리아 대표

매튜 샴파인 위워크코리아 대표
매튜 샴파인 위워크코리아 대표

서울역에서 맞은편을 보면, 정면의 거대한 건물 오른쪽 위에 ‘위워크(wework)’라는 흰색 영문 알파벳 명판이 빛나고 있다. 이 건물은 드라마 ‘미생’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다. 지상 23층, 지하 2층의 서울스퀘어에 위워크가 임대한 사무실은 고작 네 개층(4층과 13~15층). 그러나 위워크가 마치 건물 전체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진다.

2016년 8월 서울 강남역에 1호점을 열며 한국에 진출한 위워크는 지난달 강북의 랜드마크 빌딩 중 한 곳인 서울스퀘어에도 들어왔다. 6월 16일 오후 3시 위워크 서울역점에서 매튜 샴파인 위워크코리아 대표와 만났다. 

외모에서 한국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렸을 때 미국에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했다. 그는 2010년 미국 뉴욕에 문을 연 위워크 1호점에 회원으로 입주했다가 오래지 않아 위워크에 아예 합류하게 된 설립 초창기 멤버다.


위워크에 이미 5조원을 투자한 일본 소프트뱅크가 추가 투자를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있다.
투자가 실제로 이뤄지면 위워크 기업가치가 현재의 두 배 수준인 400억달러(약 45조원)에 달한다. 위워크의 폭발적인 성장 비결은 무엇인가.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인도·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에서 위워크는 본격적으로 시작조차 못한 초기 단계에 있다. 위워크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사람을 뽑고, 좋은 입지와 빌딩을 선점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위워크는 입주사들의 성공을 어떻게 도울지 늘 고민한다. 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성공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뿐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위워크는 이런 모든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대기업이 위워크에 입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위워크코리아 전체 매출 가운데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이 갖고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이들과 협업하고 싶어한다. 나아가 위워크는 대기업 직원들에게 기존 사옥이 주지 못하는 유연한 업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지난 5월 1일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에 오픈한 위워크 서울역점. 사진 위워크
지난 5월 1일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에 오픈한 위워크 서울역점. 사진 위워크

사무실 벽이 대부분 유리로 돼 있어 개방성이 지나치다는 느낌도 드는데.
“위워크에 특정 공간을 통째로 임대한 기업들의 경우 외부인이 진입하지 못하게 철저히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위워크 서울역점에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 헬스케어부터, 전 세계 위워크 건물을 활용하는 HSBC나 우버까지 전부 그렇다. 뉴욕 맨해튼 금융가에 위워크를 처음 열었을 때, 많은 금융 종사자들이 ‘사무실 벽이 유리창으로 된 공간에서 어떻게 일하냐’고 비판했다. 지금 맨해튼 금융가에는 위워크 지점이 10여곳으로 늘어났는데, 그런 얘기가 한마디도 안 나온다. 유리로 개방돼 있는 공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투명한 유리로 된 공간은 다른 입주사 사람들과 언제든 얼굴을 마주보고 소통함으로써 더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장치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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