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레드먼드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옥의 모습. 점심 시간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레드먼드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옥의 모습. 점심 시간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국내 제약업체인 한독은 온라인 기반의 상시 성과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독의 온라인 성과 평가 시스템인 ‘e-HR 아이패드(IPaD)’의 가장 큰 특징은 평가 대상인 직원과 평가자가 언제든 접속해서 평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독은 직원 개인의 성과를 평가할 때 경영 성과(40%)보다 개인 성과(60%)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개인 성과는 직원이 스스로 설정한 업무 목표와 회사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가치 그리고 역량개발계획·경력개발계획 등을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직원이 직접 자신의 개인 성과에 대한 평가를 올리면 평가자가 이를 확인해서 의견을 반영하는 식으로 성과 평가가 이뤄진다. 백진기 한독 인사관리(HR) 담당 부사장은 “직원이 평가 결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관리가 가능하다”며 “상시 성과 평가 결과를 보상이나 교육 등 다른 인사제도와 연계해 성과 중심의 인사관리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저마다 생산성을 올릴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업무 지원용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당장 투자를 늘리기 어렵다면 인사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성과 평가를 실시하는 단위를 연간이나 반기가 아니라 한독처럼 상시로 전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김성진 딜로이트컨설팅 휴먼캐피탈그룹 이사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대에는 직원들이 일한 만큼 보상해주는 게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업무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일한 만큼 보상해주지 않으면 직원들의 생산성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보다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는 해외 기업들은 성과 위주의 인사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 의류기업인 유니클로는 직급별 연봉 수준을 공개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입사 첫해 연봉은 390만엔, 점장은 630만엔, 성과가 우수한 수퍼스타 점장은 1020만엔(약 1억원)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직원들의 연봉을 비밀로 하는데, 유니클로는 오히려 연봉을 공개해서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독일의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SAP도 전 세계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이 맡은 직무의 연봉 범위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김성진 이사는 “수시 피드백 강화, 투명한 목표 설정·관리,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이 최근 나타나는 성과 평가 시스템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협업 늘리고 업무 방식 유연해져야

미국의 경영컨설팅 업체인 CEB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업무 현장에서 ‘협업이 필요한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67%나 됐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50%였다. 협업이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 요건이 됐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직원들 간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바꾸고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세계 최대 CRM(고객관계관리) 업체인 세일즈포스의 미국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 사옥에는 런치 버튼 터치스크린이라는 장치가 있다. 이 터치스크린에 그날의 관심사를 입력하면 같은 관심사를 고른 직원들을 알려준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직원들이 점심 식사를 함께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것이다.

구글이나 자포스 같은 글로벌 기업도 사무실 안에서 직원들이 더 자주 마주칠 수 있게끔 공간을 설계했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이 172명의 과학자를 관찰한 결과, 업무 공간이나 동선이 겹치는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의 본사 사무실 칸막이를 없앴다. 사무실이 열린 공간으로 바뀌면서 여러 부서의 직원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도 업무의 성격에 따라 일하는 공간을 바꿀 수 있는 ‘스마트 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김인경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공유와 협업, 의사소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고 있다”며 “성과 평가를 할 때도 개인의 성과와 더불어 다른 사람의 성공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근무 제도 자체가 유연해질 필요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시차 출퇴근제 도입률은 22.7%에 그쳤다. 그나마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기업들이 부랴부랴 유연한 근무 제도를 도입하면서 늘어난 수치다. 유럽이나 미국의 시차 출퇴근제 도입률은 70~80%에 육박한다. 천성현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정규직이 사무실에서 정해진 근로시간 내에 일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점차 쇠퇴하게 될 것”이라며 “젊은 밀레니얼 직장인들은 70% 정도가 유연한 근무제도를 선호한다고 답하는 만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하는 문화가 정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근무 제도를 유연하게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실시한 ‘2017년 스마트워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워크 도입·운영의 장애요인으로 ‘근무시간, 근태관리 등 관리상의 어려움’을 꼽은 기업이 39%에 달했다. 스마트워크 구축을 위한 비용 부담이나 해킹 위험 등을 제외하면 가장 큰 장벽이 근무시간 관리의 어려움이었다. 천 수석연구원은 “해외에서 자율적인 근무시간 조정이 가능한 것은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업무와 관련된 일에만 집중한다고 기업들이 믿기 때문”이라며 “업무 관행이나 조직 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스마트워크 같은 유연한 근무 제도가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외에 전문가들은 휴일·휴가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노동자 대표와의 소통을 늘리는 것도 주 52시간 근무제 시대에 빼놓지 말아야 할 인사 제도로 꼽는다. 성과 평가 시스템을 바꾸고 유연한 근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대표와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은 당분간 기업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며 “노동자 대표와 원활한 대화 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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