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경영학과, 동부제철 인사팀 과장, KPMG HR컨설팅그룹 매니저, 다비치안경 경영기획실 상무
김성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경영학과, 동부제철 인사팀 과장, KPMG HR컨설팅그룹 매니저, 다비치안경 경영기획실 상무

주 52시간 근무제의 최대 화두는 ‘생산성’이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기업들 역시 노동시간 단축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는 걸 알고 있다. 6월 22일 서울 여의도의 딜로이트컨설팅 사옥에서 만난 김성진 딜로이트컨설팅 휴먼캐피탈그룹 이사도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딜로이트컨설팅의 인사관리(HR) 분야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는 김 이사는 최근 들어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들어온 컨설팅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며 “주 52시간 시행을 앞두고 기업 문화를 어떻게 바꿔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많이 문의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생산성 관련 프로젝트가 쏟아지면서 김 이사는 최근 몇 달 동안 거의 밖에서 살다시피 했다. 몇 달 만에 본사 사옥을 찾았다는 그에게 ‘주 52시간 시대의 생산성 관리법’에 대해 물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기업들 반응은.
“주 52시간 근무제만 가지고 컨설팅을 요청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컨설팅 수요를 들여다보면 결국 주 52시간 근무제와 연결된 것들이다. 기업 입장에선 고용을 더 늘리지 않으면서 생산성은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로보틱스 같은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묻기도 하고, 조직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편할 방법을 묻기도 한다. 결국에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맞춰서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찾고 싶다는 얘기다.”

생산성을 높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한국 기업은 전형적인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의 사업부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TFT)이나 셀(cell)처럼 소규모의 프로젝트성 조직을 만들어 대응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건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이제는 전체 기업 문화 자체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기업 문화를 바꾸는 데 어떤 것이 중요한가.
“성과 평가 시스템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연간 단위로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노력하는 게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다. 주 52시간 시대에는 근무시간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연간 단위의 성과 평가는 더욱 실제 직원들의 성과를 반영하기 힘들어진다. 연간 단위의 평가 시스템을 상시 평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과거에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과를 제대로 측정하지 않았다. 팀이나 부서의 성과가 좋으면 뭉뚱그려서 좋게 평가하는 식이었다. 이런 식의 성과 평가 시스템으로는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주 52시간 시대에는 업무 강도가 더 타이트해질 텐데, 그럴수록 자신의 업무 성과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커질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연간 단위로 세우던 업무 계획을 최근에는 분기나 월간 단위로 바꾸고 있는데, 이에 맞춰서 보상과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 간격을 짧게 할 필요가 있다.”

상시 평가 시스템을 정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직원들과 소통을 늘리는 데서 그치지 말고 모든 업무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상사가 부하 직원의 업무에 대해서 피드백할 때 말로만 하지 말고 어떤 피드백을 했는지 기록으로 남겨둬야 상시 평가가 가능하다. 또 상사와 부하 직원의 일대일 소통에서 끝나지 말고, 동료나 회사 밖의 업무 파트너들의 평가도 받아야 한다.

평가 방식도 바꿔야 한다. 딜로이트컨설팅은 2015년에 성과 평가 시스템을 개편했다. 딜로이트는 전 세계 직원이 20만 명이나 되기 때문에 이들을 평가하는 데 드는 시간만 매년 200만 시간에 달한다. 복잡한 질문들로 이뤄진 평가 시스템은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확도도 떨어졌다. 그래서 평가 방식을 단 네 개의 질문으로 바꿨다. ‘이 사람과 계속 같은 팀에서 일하고 싶은가’ ‘성과급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이 사람에게 줄 것인가’처럼 단순하고 직관적인 질문으로 평가 방식을 바꿨더니 성과 평가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단 네 개의 질문 가운데 나머지 두 개는 무엇인가.
“더 알려드리기는 좀 곤란하다(웃음). 다만 평가자가 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사무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것도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나.
“딜로이트 캐나다에서 한 가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직원들이 달고 다니는 배지에 녹음 기능을 넣어서 회의실 공간에 따라 직원들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결과를 보면 어둡거나 좁은 회의실에서 회의할 때 훨씬 공격적이고 비협조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넓고 밝은 공간에서 회의할 때는 긍정적이고 협조적인 분위기였다. 회의 공간에 따라서 회의의 생산성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또 같은 전공자가 모인 팀보다 여러 전공자가 섞여 있는 팀의 생산성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보다 적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글로벌 기업이 있다. 그 비결이 뭘까.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근무시간에 몰입하는 정도다. 미국에서는 근무시간 중에 잡담은 생각하기도 힘들고, 소셜미디어를 하는 사람도 없다. 억지로 업무 강도를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근무시간에 사적인 일을 하지 않을 뿐인데, 그것만 가지고도 근무시간 대비 성과가 한국보다 높게 나온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원들도 변할 필요가 있다. 한국 직장인들을 보면 고리타분한 직장 문화가 싫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신은 근무시간에 일에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아직도 준비가 안 된 기업이 많다.
“정부가 기업들의 어려움을 듣고 조금씩 개선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주 52시간 시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사실이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제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회사가 살아남는다. 지금은 한국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지만 베이비부머 세대 자녀들이 한꺼번에 채용 시장에 나온 탓이 크다. 10대 인구가 계속해서 줄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업이 좋은 인재를 구하기 힘든 시기가 곧 닥칠 것이라고 본다. 그때 주 52시간 근무제에 맞는 문화와 조직을 만들어놓지 않은 기업은 좋은 인재가 외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일본 기업들 가운데 특히 구인난에 시달리는 곳들이 바로 그런 사례다. 시간만 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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