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뉴욕대학교(NYU) 경제학 박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구원,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뉴욕대학교(NYU) 경제학 박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구원,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

“경제 상황에 대한 트럼프의 잘못된 판단이 무역전쟁을 일으켰다.”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때 ‘미스터 경착륙’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로 이름을 떨쳤다.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아시아 회장을 역임한 그는 미국의 과잉 소비와 부동산 과열의 위험을 경고하고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더블 딥(double-dip·이중 침체)’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도 그다. 예일대에서는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이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에 관한 강의로 인기가 높다.

비관론자인 그도 미국 경제의 현 상황과 성장 잠재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이 무려 102개국과 교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단일 ‘공적(公敵)’으로 지목해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번지수가 틀렸다”고 질타했다.

무역전쟁의 본질적인 요소가 경제가 아닌 외교와 정치라는 건 로치 교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경제적 판단을 전제로 깔고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이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가 우려하는 이유다. 로치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 아닌가.
“트럼프가 그의 방식으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지렛대로 경제 관련 이슈들을 이용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불공정한 무역을 문제 삼고 있지만, 그가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건 중국의 군사력과 첨단기술이다. 그렇다 해도 무역전쟁의 당위성에 대한 미국의 판단이 잘못된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잘못된 계산이라니.
“미국의 경제 상황으로 볼 때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일 최적의 시기라는 오판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을 생각해봐도 쉽게 승부가 가려질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가 승리하려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성장 전략들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독창적인 혁신, 우월한 기술력과 군사력, 지역 리더십 확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트럼프만큼이나 시 주석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정치적 명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국을 얕잡아 봐서가 아니라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상황이 좋은 건 사실 아닌가.
“미국 경제가 좋은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올해 1분기 미국의 순 저축률(가계와 기업·정부 합산)은 전체 수입 대비 1.8%에 불과했다. 20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이 수치가 6.3%에 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심각하게 낮다. 사실 관련 통계가 도입된 이후 다른 어떤 선진국의 순 저축률도 이 정도로 낮았던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교역량을 확대하고 무역 적자를 늘려 해외 자본 투자를 유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1월부터 법인세를 삭감하고 정부 지출을 늘렸기 때문에 교역량 확대와 경상수지 적자 증가는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까지 소득 구간별로 15~35%이던 법인세율을 올해 1월부터 21% 단일 세율로 바꾼 데 이어 최근 다시 20%로 추가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가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 않나.
“미국의 임금 수준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값싼 중국산 수입품은 미국인의 가계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보통 미국인들의 살림은 팍팍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은 미국의 중요한 수출 시장이기도 하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수출 규모가 1300억달러(약 145조1300억원)에 ‘불과’하긴 했지만, 멕시코와 캐나다에 이은 미국의 세 번째 수출 시장인 데다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시장이기도 하다.

미국의 재정 적자를 메우는 데 중국이 한몫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이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기 때문이다. 향후 5년간 미국의 재정 적자 평균이 국내총생산(GDP)의 4.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대규모로 미 국채와 달러화 표기 자산 매각에 나선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미국 재무부가 6월 15일(현지시각) 발표한 자료를 보면 중국의 미 국채 보유 액수는 지난 4월 기준으로 1조1800억달러(약 1320조원)에 달했다.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로 중국이 4월에만 약 58억달러어치의 미 국채를 매각했지만, 여전히 미 국채 최대 보유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의 6월 수출 실적이 지난해 동기 대비 감소하긴 했지만, 분기별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어려운 여건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말 소폭 감소했던 GDP가 1분기에 반등한 것도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다만 중국 위안화 하락이 지속될 경우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악재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미∙중 무역전쟁에 더해 미국과 북한의 관계 변화도 자세히 살펴 적절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 두 가지 위험 요소를 잘 관리한다면 실질 경제성장률 3% 목표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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